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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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 앤 패디먼이 남편과 책을 한데 섞기로 결정하면서 결혼을 완성했다고 하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를 결혼시키면서 살갗처럼 친숙한 책들과 두 존재의 지성적 결합을 완성한다고...

그러면서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라는 앤 패디먼의 사랑 고백도 있었는데...

응?

이번엔 '이혼'이라니...

파격적이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더 솔깃했었습니다.

결혼 25년 만에 이런저런 이유로 합쳤던 서재를 나누며 '닮음'의 열망 때문에 '다름'이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지만 궁극적으로 자아를 잃지 않는, 독립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딱 보자마자 오히려 이것이 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녀의 이야기는 어떨지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지지 않는 하루』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작가의

닮음과 다름, 독립과 의존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

"타인이란 구원이 아닌 위로일 뿐,

'자신'을 위탁할 곳은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뿐이다"

서재 이혼 시키기



이 책은 저자 삶의 체험에서 나온 단상과 시선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잃지 않는 독립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은 기질과 취향이 다른 영원한 타인과 고군분투하는 결혼의 일상을 통해 오래전부터 혼자 부딪치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자기를 책임져줄 수 있는 존재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들이,

2장은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을 겪으면서 따뜻한 애착의 습관, 정신적인 탯줄을 끊고 성장하는 부모 이야기를 통해 '자식' 대신 '자신'으로 채우고 살아야 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3장은 타인에게 빌려온 욕망이 아닌 일상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행복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공감되었습니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듯 각자의 취향과 정신세계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미래에서 찾을 것도 알고 있는 '서재'.

책을 같은 공간에 놓는다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일까...



그리고 타인의 취향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타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타인이 배우자일 경우는 더 그러한데...

다른 취향과의 공존은 칫솔을 나눠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어쩔 수 없이 갈등을 피하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한다. 어쩌면 결혼은 이 차이에 대한 감각을 꾸준히 새롭게 하는 것이다.

"왜 맛이 없어?"

올비가 묻는다.

내가 말한다.

"왜 맛이 없냐는 질문은 왜 사랑하냐는 질문처럼 부조리해."

상대의 취향은 이해와 분석의 영역이 아니다. 우선 "왜?"라는 의문사 대신 "아!"라는 감탄사로 바꾸는 것이다.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지만 너 같은 존재, 나 같은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 page 71 ~ 72

함부로 '이해'라 하지 말아야 함을.

그래, '아!' 하며 받아들이자 다짐해 봅니다.

요즘처럼 청량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느지막이 바깥나들이를 하곤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면 짙은 코발트빛으로 바뀐 하늘.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곤 하는데 저자 역시도 그랬습니다.

저녁 풍경과의 내밀한 만남, 문득 세상과 내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 풍경이 주는 감각적인 희열을 음미한다. 이 순간 나는 가장 완벽하게 존재한다.

길모퉁이를 돌자 어슴푸레한 저녁 거리 한가운데 불빛 없는 책방 간판이 또렷하게 보인다. 'Le bonheur', 하나의 행복이 아닌 '바로 그 행복'이다. 이따금 산책은 나에게 바로 그런 행복을 허락한다. - page 257

'Le bonheur'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긴 채 오늘도 산책길에 나서보려 합니다.

결국 '나'를 찾아가는, 자아를 잃지 않고 사는 법을 일러준 이 책.

덕분에 '나'라는 서재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채워나갈 이 서재에 난 어떤 책들로 채울까...

행복한 고민도 해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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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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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을, 타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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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절한 거짓말 - 총리가 된 하녀의 특별한 선택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오현주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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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 이야기일 거란 생각은 1도 하지 못했었는데...

더 늦기 전에 각성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었고 앞으로의 우리 자세 또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2개월간 내린 비로 침수 피해와 수재민은 계속 늘어나고 강의 수위는 도시를 덮칠 듯 높아지는데, 기상예보에는 비가 또 온다고 한다.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지만 별 뾰족한 대책은 없다. 심지어 국가원수는 몰래 도망쳐버렸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당신이 통치자가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단지 소개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낯익은 이 상황은 뭐지?!

이젠 소설도 소설 같지 않은 상황 속 과연 이 소설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지 기대를 해 보며 읽어보았습니다.

재난 앞에서

통치자는 도망가고,

정치인은 권력만 좇고,

언론은 선동하고,

시민은 표류한다

너무 친절한 거짓말



프레스토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저택 안, 하녀 글로리아는 손님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 page 9

북부 지역의 물이 범람한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

2개월간 내린 비로 침수 피해와 수재민이 계속 늘어나고 강의 수위는 도시를 덮칠 듯 높아지는 상황 속...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총리님?"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어요, 코베트 의원님. 도시에 불안을 조장하시게요? 걱정할 것 전혀 없어요. 기상학자들이 곧 우리를 안심시켜줄 겁니다. 이 음산한 비는 곧 그치고 태양이 떠오를 거예요."

총리는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총리님! 오늘 신물을 아직 보지 못하신 건가요? 북부 지역에서 오는 전보는 받아 보셨나요? 강이 범람 직전이란 소식은요? 가옥들이 물에 잠겼다는 얘기는요? 비가 이토록 많이 내리니 강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어요! 신문에 이미 실린 사실입니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성문은 모두 닫아야 합니다. 북부 도시들이 어떤 지경인지 듣기는 하신 겁니까, 총리님?" - page 14 ~ 15

기상학자들이 건넨 봉투를 열어 보고서를 읽어본 총리.

불편한 침묵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곤 슬며시 입을 벌려 말하기를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 일기예보에 따르면 곧 비가 그치고 덥고 건조한 날이 이어질 거라는군요. 강 상류는 벌써 해가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들 기상학협회는 신뢰하시겠지요. 성문을 닫는다? 하! 기차역을 봉쇄한다? 과잉 대응입니다." - page 19

사실 총리는 거짓 발표를 한 것이었고 시찰을 핑계로 도망가게 됩니다.

총리의 부재에 대해 남편 티모르는 하녀 글로리아에게 제안 아닌 제안을 합니다.

"저는 하녀예요! 할 일이 많다고요! 침대 정리! 청소! 주방 일도 봐야 하고... 그건 그렇다 쳐도 누가 저를 총리님으로 믿겠어요."

"총리가 자기 일을 끝까지 해내도록 도와야 해! 그래야 하지 않겠니? 총리가 돌아올 때까지만이야. 알겠지?" - page 53

아팔리아 총리인 척을 하라니.

어처구니없는 상황-계속 내린 비로 불어난 강, 계속 발생하는 침수 피해와 이재민, 대책을 바라는 이들의 압박에 더 내리는 비에 화산활동으로 빙하마저 녹을 이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총리 대역이 되어버린 글로리아.

어쨌든 결국 그렇게 한다 한들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어?!

하지만 어쩐 일인지 누구도 총리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오히려 시민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글로리아의 언행'에 찬사를 보내는데...

"... 안도감.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요. 이름들이 있으면 좋겠군요. 명단 말입니다."

그늘진 곳 어딘가에 있던 티모르가 거들어주었다.

"명단?"

"명단이요. 누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요."

...

"남문을 닫을 때 총리님께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셨는지 감히 말씀드려도 될지요? 총리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첩 속 피스톤의 기름을 살피라고 제안해주신 덕분에, 음, 우리가 모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 외에는 달리 표현할 것이 없습니다. 경이로우십니다." - page 104

지금껏 중요하거나 특별한 취급받은 적 없었던 글로리아는 점차 자신감을 얻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뢰하는 사이가 된 티모르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한편, 넘쳐난 강물로 마을이 잠기고, 결국 지붕으로 대피한 클렘과 그 부모 그리고 잡종견 '하인즈'.

한참 뒤 구조팀이 배를 타고 이들을 구하러 오지만 배에 오를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람뿐이었습니다.

결국 홀로 남겨진 하인즈는 자신이 클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내차야 씨'라는 묘한 개가 탄 자동차에 올라 하류로 떠내려가게 됩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 속-동료를 얻고 잃으며 클렘이라 착각하고 다가간 인간에게 상처를 입지만 다른 인간으로부터 치료와 위로를 받기도 하는 등-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코를 믿으며 멈추지 않고 걸었더니 간신히 클렘과 재회를 하게 되고

개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사이, 클렘이 흘리는 짭조름한 행복의 눈물이 엉겨 붙은 털 위로 떨어졌다. 말도 입으로 하인즈를 툭툭 치고 있었는데,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됐어, 친구. 이제 됐어.' - page 313

다시 글로리아로 돌아오면 도시의 주요 수입원인 '공장'의 침수를 막으려고 그녀가 한 적도 없는 발언을 인용하거나 광견병에 걸린 개들이 돌아다닌다는 거짓 정보로 시민들을 동조시키고 정작 시민들에게 강요했던 자들은 자신만의 탈출 방법을 논의하며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는데...

점점 프래스토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가 쌓여가는 와중에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글로리아는 어떤 선택을 할지...

"나는 총리가 아니다! 난 하녀다."

그녀의 대담하고 짠하며 감동적인 휴먼 블랙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예산이나 재산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작성된 기사와 조작된 정보를 발송하는 언론.

그리고 정치인과 신문의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태도.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다 똑같은 인간인 것을...

나조차도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글로리아를 보면서 같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실제 1928년 미국에서 일어난 홍수(원문은 1928년으로 되어 있지만 정황상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로 추정됨-옮긴이)를 모티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저자는 무려 약 100년 전의 사건을 가져온 것일까?

이에 대해 책의 마지막에서 답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집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은 또한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터넷, 신문, 광고 같은 것을 통해 믿고 있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신문기자들과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을 말하고, 여러분도 그걸 믿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 page 541

지금까지 실수하고 틀리고 놓쳤던 일이라도 우리가 바꿀 수 있음에 희망을, 무엇보다 우리는 지성과 안목을 길러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거짓말.

가볍지만 묵직한 한 방이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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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사무소 -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이락 지음 / 안녕로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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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솔직히 새로웠습니다.

'시'가 단서가 된다고?

시로 심리를 추리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궁금하였습니다.

'시'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기에, 읽으면 꼭 함축된 의미만 찾으려고 하기에 시의 매력을 놓치곤 하였는데 이번 소설을 통해

시를 어떤 방식으로 감상하며,

시와 소설의 문학적 만남이 어떤 매력을 주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를 공부하는 청소년, 시를 읽고 공부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현직 국어 선생님의 본격 시(詩) 추리 소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 어렵지 않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시에 다 숨어 있거든."

시 탐정 사무소



오후 2시 30분.

언제나처럼 응접실 한가운데 놓인 사인용 면피가죽 소파의 왼쪽 끝에서 팔을 기댄 채 왼손엔 시집을 들고 앉아있습니다.

그러다 눈을 감고 10초 뒤 말을 걸어오는데...

"그런데 말이야, 완승 군."

빙고!

"네, 선생님. 무슨 일이신지?"

"밖에 빗소리가 들리는군.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가?"

...

"비도 오고 하니 「우리가 물이 되어」라는 시가 떠오르는군. 좀 읽어 주겠나?" - page 8 ~ 9

시 탐정이자 시 해독 전문가 '설록'이었고 그의 조수 '완승' 군은 그 옆에서 시를 읽으며 시 속 화자의 심리를 알아내고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과 처해 있는 상황을 읽어 냅니다.

그렇게 이곳엔 의뢰인들이 시를 가지고 찾아오면 시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과 진심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제가 하는 이 일이 민아 씨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시를 읽는 건 그 사람을 읽는 거니까요."

"네?"

"사람마다 즐겨 읽는 시가 다르지요. 그건 그들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가 자기 삶에 온전히 들어올 때야 비로소 그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아마 민아 씨는 기형도 시인의 시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시를 통해 민아 씨의 삶이나 고민을 읽어 낼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안토니 씨의 의뢰는 민아 씨의 사생활을 읽어내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민아 씨의 동의 없이요." - page 49

"어떤 시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시에 그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page 85

책 속엔 재벌가 무남독녀의 가출, 매너리즘에 빠진 아이돌, 형의 잠적 의도를 알 수 없는 고백 편지, 취준생의 자살 미수, 금고 절도 사건 등.

사건을 풀 단서는 의뢰인들이 들고 온 '시'였으며

시 탐정 설록으로부터 시 속에 담긴 화자의 마음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과 사정을 추리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감성적으로 다가왔고 그 과정을 통해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시'라는 감성이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시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중독되는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시 한 편쯤 마음속에 품고 있잖아요?"

저는... 아직... 없...

이번을 계기로 서점에 들러 나를 사로잡을 시집을 한 권 사볼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가 어울리는 계절인 만큼...

왠지 이번엔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시 한 편이 제 가슴속에 찾아올 것 같았습니다.

p.s. 이 책에 소개된 시 중 이 시가 유독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내 마음이었을까...?!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문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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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죽음을 안전가옥 쇼-트 21
유재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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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소개 글을 찾아 읽어보니

법망 사이로 빠져나가는 젠더 범죄자, 몸소 단죄에 나선 피해자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일면식 없는 여성을 상대로 한 무차별 폭행과 성폭행, 대낮에 서울 시내 한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의자는 흉기에 의식을 잃고 입원하지만 깨어나지 못했고 그에 따른 피의자는...

결국 이런 흉악범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를 지켜줄 사회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특히 여성들이야 이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에휴...

아무튼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풀어나아갈지 한 번 지켜보려 합니다.

사랑과 욕망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파괴적인 행위들

당신에게 죽음을



설희는 다가올 날을 준비했다. - page 7

도서관 문헌정보실에서 일하던 설희는 휴직 후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되어 총 8회로 구성된 강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악인과 광인》, 인간의 악의와 광기에 관한 질문들

이 강연의 강사로 책의 저자인 '이수혁'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악의나 광기는 분류 기호 없이 뒤섞여 있잖아요. 주로 사회의 도덕률이나 법정에서의 판단에 따라 갈리죠." 이수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 아프면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나쁜 선택을 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나쁜 사람은 여간해선 아파하지 않죠."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나쁜 사람에게 고통을 안길 장치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설희가 추궁하듯 물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설희 씨 주장이 더 매력적이네요. 형벌이 필요하죠. 죗값을 제대로 치르려면." - page 18

그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끌리게 되었고 급기야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이 둘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몇 분 뒤 메시지가 왔다. 안부를 묻는다거나 사과를 한다거나 이혼 저차를 매듭지었음을 전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수혁, 본인의 부고였다. 보낸 이는 이수혁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번호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장례 일정과 빈소 위치를 알려 왔다. 유가족은 이수혁의 아내, 오은수였다. - page 37

장례식장에 간 설희는 그곳에서 이수혁의 부인 오은수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부터 이 둘의 묘한 관계가 이루어지는데...

"부검 결과가 나오는 날, 경찰이 인스타그램을 보여 주더군요. 저는 몰랐어요. 그 사람이 그런 걸 운영하는 줄은."

"인스타그램이요?"

"거기에 유서 같은 게 있더라고요." 오은수는 설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제가 선생님에게 별말을 다 하네요."

"괜찮습니다. 자책, 하지 마세요."

연기하지 마세요. 설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다. - page 73 ~ 74

석연치 않았던 죽음으로부터 소설은 두 여성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젠더 권력을 등에 업고 악행을 벌이는 이들, 악인이라는 딱지를 개의치 않고 단죄에 나선 이들이 얽힌 짜릿한 스릴러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바라보며 나눈 그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는데,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재판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재판은 아르테미시아의 승소로 끝나지만 사회는 그녀를 암흑에 가두게 되고 결국 그림으로 자신의 상처를, 분노를, 그럼에도 꺾이지 않은 삶에 대한 의지를 기록하였는데...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줄 거야. 사람들은 내 그림 속에서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겠지." - page 80

서로의 문제 해결 방식을 썩 달가워하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동의하게 됩니다.

바로 법정은 인과응보가 구현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죽어도 싼 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뻔뻔하게 선처를 구한 뒤 풀려나 짓던 죄를 이어 짓는 이들을 향해 보여주었던 오은수의 모습은

"죽인다고 끝이 아니에요. 죽고 나면 금방 잊히거든요. 그래서 무대를 만들고 극으로 재구성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기억하게 만드는 거죠. 쓰지 않으면 금방 잊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 page 139

과연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무심한 폭력이 난무하고 납득할 수 없는 죄의 형량 속에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인지 사회에게, 아니 우리 개개인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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