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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ㅣ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엮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단테'의 『신곡』.
사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명성으론 익히 알았지만 어렵기만 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선뜻 다가가는 것도 두려워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신곡'이란 작품이 '명화'와 함께 다가왔습니다.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명화와 함께라면 단테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이해하기 쉽게,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책을 받자마자 그 두께감에 놀라곤 하였습니다.
과연 나는 이 끝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단테와 함께 지옥과 연옥, 천국을 향해, 하느님에게로 다가갈 수 있을지 조금은 노심초사하면서 책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도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편서사시인 이 작품을 가능한 쉽게 풀이하여 적혀 있었고 더불어 명화들이 있었기에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도 우리의 영화 <신과 함께>가 오버랩되면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이 영화를 찾아보려합니다.
<지옥편>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9층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방탕의 죄를 지은 영혼들과 그 죄를 씻고자하는 곳.
그 중에서 저에겐 인상적이었던 곳.
"그럼 아주 짤막하게 대답하리다. 자신의 몸에 폭력을 가하여 영혼이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그 순간 그 폭력적인 영혼은 육신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육신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훼손한 까닭이지요. 미노스는 그런 영혼을 일곱 번째 지옥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영혼은 숲에 떨어지게 되는데 떨어질 곳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요. 정해진 운명대로 자리를 잡고 잡초씨앗처럼 싹을 틔우게 된다오. 그래서 새순이 돋고 실가지가 피어올라 야생나무로 자라나면 아르피아들이 그 잎을 뜯어먹으면서 고통을 안겨주니, 이러한 고통은 새로운 잎이 돋아날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되지요. 다른 영혼들처럼 우리도 마지막 심판날이 오면 부활을 꿈꾸며 지상으로 육신을 가지러 가겠지만 우리의 영혼이 육신과 합쳐지는 일은 아마 없을 거요. 일단 자신이 버린 것에 대해서는 권리가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우리의 저주 받은 영혼들은 이 숲속에 와서 이렇게 가시나무에 매달린 채 슬픈 고통의 숲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 page 98
자신이 버린 것.
그에 대해선 권리가 없다는 것.
그렇기에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참으로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자네는 이곳이 동굴인 줄 알고 있지만 지옥은 원래 이처럼 둥근 것이라네. 지금까지 우리는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해 왼쪽으로 돌고 돌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세. 우리는 아직도 그 둘레를 다 돌지 못했지. 그러니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다지 놀랄 일은 못되지 않겠는가." - page 106
지옥이 둥글다는 것이 앞서 새로운 잎이 돋아날 때마다 고통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와 우리가 짓는 죄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비명으로 가득했던 지옥을 지나 <연옥편>으로 들어서게 되면 '용서'와 '속죄'의 의미를 엿볼 수 있으며 지옥편만큼의 형벌도 존재하지만 점점 천국을 향해가는, 빛을 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page 268
마침내 <천국편>.
그곳엔 신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죄의 길에서 하느님의 은혜로운 길로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거나 인간 스스로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속죄로써 기워갚는 길뿐이죠.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하기 위한 길은 겸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겸손이나 순종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인간 스스로는 결코 죄를 씻어낼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대속의 길을 통해 인간의 삶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삶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돌아가실 때까지도 험한 십자가에 달려서 순종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인간의 육신을 입고 당신 자신을 겸손히 낮추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에 그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의 완전한 정의를 채워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인하여 사람이 비로소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곧 성부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지요." - page 381 ~ 383
왜 단테의 『신곡』이 "인간이 만든 것 중의 최고의 작품"이라 칭송받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 오히려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묻지마 살인'이라던지 '갑질' 등, 인간의 가치를 잊고 산 우리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곤 하였습니다.
과연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희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이 책을 계기로 좀더 단테의 '신곡'을 자세히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처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한 편의 대서사영화처럼 다가온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다시금 꺼내 읽고 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