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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 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톨스토이의 말
이희인 지음 / 홍익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톨스토이'
그의 문학작품은 '고전'이란 명성에 걸맞게도 두고두고 읽고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작가 '이희인'씨는 '인생'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인생을 위해
톨스토이가 나에게 하는 말
『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들어가며>에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사망한지 110년이나 지난 오늘날은 쉽게 파악하고 해석할 수 없을만큼 복잡해져 그의 사상과 도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의 진정성은 가슴에 새기되 그의 생각과 사상에 대해선 비판적 독해가 필요하다. 그의 도덕주의와 치열하게 맞짱 뜨는 것이 오늘 톨스토이를 읽는 방법일 터다. 동시대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도덕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것'이라는 잣대로 톨스토이의 말들을 뜨악하게 바라보고자 했다.
...
그렇다 해도 그의 가르침은 위대하다. 말로만 도덕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생각을 묵묵히 실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기는 쉬워도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렵다고들 하는데, 자신이 쏟아낸 말의 작은 부분까지 몸소 실천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부터 실천하는 지식인들은 어느 시대나 늘 희박해 보인다. 그렇게 다시 톨스토이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스승인 것이다. - page 14 ~ 15
그렇게 시작한 한 작가-톨스토이-가 발표한 작품들 속에서 찾게되는 삶의 모든 것, 그리고 그 의미들......
인생에 대해 사랑, 결혼, 죽음, 삶에 대해 <안나 카레니나>를 시작으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 문학에서의 문장이, 그로인해 확장된 개념은 우리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적 의미까지 이어졌고 결국 우리의 인생에 대한 의미로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무심코 '소설'이라고 단정짓고 읽었던 문장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고 그 문장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내 마음을 동요시키고 내 인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하게끔,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 속에 문장들이 안내자의 역할을 해 주곤 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 속에,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삶을 지혜롭게 헤치고 갈 방법을 얻을 수 있을까?
어디에도 없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얼마나 막막한 인생인가? 얼마나 잔인한 삶인가? 누가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가? 우린 모두가 이 지구별 위에 농담처럼, 헛소문처럼 '던져진' 존재인 것만 같다. - page 109
죽음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을 때 이반 일리치가 다다른 불안의 본질은 결국 '내가 살아온 인생이 헛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물음이다. 그때부턴 '헛된 인생'에 대한 절망과 의심이 죽음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된다.
'만약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의식적인 나의 생활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어떡하지?' 라는 의구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을 가진 채, 또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눈을 감아야 하는 거라면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심지어 이반 일리치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아내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옷차림과 얼굴 표정, 목소리 등으로 자신의 잘못 살아온 삶을 심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의 모두가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하면서 실은 잘못 살아온 그의 삶을 비웃는 것만 같다. 당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당신의 눈을 가리고 당신이 삶과 죽음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 page 110 ~ 111
이반 일리치가 생의 마지막에 의심하고 후회하는 것은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로만 알았던 것들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 page 114
단 한 번뿐인 인생.
하지만 막상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지금까지의 삶에 허무함과 덧없음을 느끼곤 합니다.
과연 '인생'이란 무엇일까......
다시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에서의 이반 일리치의 반성을 통해 나 역시도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인생'에 대해 또다시 언급했던 <인생은 지나간다>.
존재의 의미는 끝내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영원한 지구의 주인이 아니란 걸 깨닫는 것, 그래서 우리가 잠시 사용한 방처럼, 우리가 사용한 공공장소처럼 깨끗이 써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것, 그런 자각이 필요하다. 그걸 깨닫는다면 이 지구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마구잡이로 고갈시켰고, 수만 수억 년을 공존해 온 동식물들을 멸종시켰으며, 지구를 감싸고 있는 조화로운 기후까지 변화시켰다. 먼 훗날까지 지구가 지속된다면 여기 20세기부터 21세기를 살다 간 인류는 얼마나 큰 비난과 원망을 받게될 것인가? 지구와 자연은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세상의 주인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했지만 결국 그 말은 수정돼야 할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언젠가, 이곳'에 와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 page 219
사람은 태어날 때는 세상이 모두 내 것이라는 듯 주먹을 쥐고 있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보아라, 이렇게 빈손으로 가지 않느냐?'고 하듯이 손바닥을 편다.
-《탈무드》의 말,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사는 곳은 스쳐지나가는 곳이라는 것......
그렇기에 잠시나마 빌려 쓰는 이 곳에 예의를 갖춰야함을......
그동안 읽었다고 자부했던 톨스토이의 문학들을 잘못 읽었나봅니다.
그가 써내려갔던 문장 하나하나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전하는, 우리가 찾고자 한 '인생'에 대한 의미들이 담겨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톨스토이의 단편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시 그의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나에게 다가와준 문장들은 필사를 하며 그렇게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함께 같이 써내려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