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금만 더 백수로 있을게 - 하고 싶은 게 많고,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하지혜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2월
평점 :
저도 겪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지만......
'백수'
솔직히 백수로 지낼 땐 한 시도, 하루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적으로 괴롭고, 보는 이들의 눈치로 괴롭고, 미래가 불안하기에 그야말로 눈앞은 깜깜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 『조금만 더 백수로 있을게』.
하고 싶은 게 많고,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조금 더 백수로 지내겠다고 합니다.
왠지 그녀의 백수생활백서를 읽고나면 왠지모를 희망과 위로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청년 백수'
원해서 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될 수 있는......
그래서 두렵기만 한 단어입니다.
그녀 역시도 그러했습니다.
확신을 갖고 도전했던 길에서 나는 세상의 쓴맛을 처음 느껴보았다. 사실 그다지 큰 충격도, 살을 에는 쓰라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를 덮쳐 온 고통을 견디기에 내가 한없이 연약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길을 내 스스로 저버렸다. 어쩌면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후회를 해도, 원망을 해도 그 모든 화살의 끝은 나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자기책임론'을 끌어안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백수로 지낸 지 1년이 넘어 있었고, 나는 치를 떨며 싫다고 발버둥쳤던 백수라는 단어와 나, 하지혜라는 사람의 짝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잉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을 부리는 흔한 백수의 감정 노선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었다. - page 5
그렇게 지낸 백수의 감정 노선.
인생의 굴곡처럼 백수의 감정 노선도 한없이 우울하다가도 갑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는 등.
롤러코스터 레일과도 같은 감정 노선 속에서 레일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탄 모습이 그려진 이 책은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 감정을 이해하기에 공감과 위로를 얻곤 하였습니다.
너는 마땅히 이 길을 가게 되어 있다고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 인생'이라는 것도 없다. 그저 내가 맞닥뜨린 순간에, 내가 이끌리는 대로 살면서,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위해 잘 살고 있는 마땅한 삶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내 행복 기준선을 침범하는 침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page 68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기준, 잣대를 내밀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잣대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는거지......
이로 인해 답답하고 속상한 건 결국 나 자신인데......
가슴으론 알지만 차마 머리론 못하는 우리, 아니 내 자신에게도 묻고 또 물어봅니다.
<느슨한 하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느슨한 하루의 시간을 쌓았다.
입가에 잔잔히 머물렀던 당신의 미소는
지나쳐 간 시간 속 한 장면이 되어
기억 한 켠에 묻히고
귓가에 선선히 맴돌았던 당신의 소음은
리듬이 스치고 긴 여운이 되어
마음 한 곳에 그려진다.
섭섭한 봄바람이 층층이 쌓여
오늘도 이렇게 느슨한 하루를 촘촘히 메웠다. - page 172
"당신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향해 다시 내달리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 동안만이라도 내게 관심 모드를 OFF 해 주세요."
왜냐고? 내 인생에서 언제 이렇게 또 편안하고 여유롭게 쉬어 보겠나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라면 나의 적성을 진지하게 찾고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달려갔다가 다시 후퇴하게 되면 그때의 무력감은 또 어찌할까 싶어서. - page 177
밥까지 사 먹기엔 경제적으로 쪼들리니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만 주문하고 공통의 사유만 논하다가 귀가하며 한없이 우울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나눈 논설의 결론은 늘 똑같다. 사회에서 갉아 먹히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우리의 상황이 더 낫다고. 돈은 조금 없고 조금은 무기력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승자 아니겠느냐고.
뻔뻔하게도 한 번 더 말한다. 이렇게 잔잔한 백조로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 - page 181
'느슨한 하루'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다른 이의 눈치없이...... 오롯이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정 내가 뭘 해야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습니다.
시간에 쫓겨, 시선을 벗어나고파 무턱대고 정하기엔 내 인생은 더없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백수'로 지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초라하게 내 자신을 움츠렸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왜 그렇게 지냈었는지......
보다 당당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불쌍한 '직장인'보다 낭만적인 '백수'가 더 낫다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백조'가 되어 호숫가에 우아함을 뽐낼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