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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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카프카 조합.

특히 이들이 바라본 '죽음'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놀랍고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와 카프카의 『변신』.

한 권으로 만나며 깊이 있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변명』과 『변신』, 지금 나를 바꾸는 가장 필요한 도구

이십대가 꼭 읽어야 할 죽음에 대한 고전 인문학!!


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로 알려진 지혜를 사랑한 위대한 사상가 '소크라테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엔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심혈을 기울여 스승의 사상과 철학적 삶을 알렸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기 전 자신이 고발당한 죄목에 대한 부당함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변론의 재현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3부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그가 하늘과 땅속의 것을 탐구하는 괴상한 사람으로 악행을 일삼으며 악을 선처럼 보이게 하고 남에게도 터무니없는 것을 가르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청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며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그를 고발했던 고발자들에 대해, 새 고발자인 멜레토스에 대해 그의 무지와 모순을 지적한 후 자신의 소신을 밝힙니다.


어떤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부끄럽지 않은가? 그와 같은 생활을 해오다가 이처럼 사형을 당하는 것이?'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만일 당신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선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page 49


아테네 시민 여러분, 만일 내가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살해당하여 여러분이나 나 자신에게 아무런 이로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진실을 말할 때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 나라 안에서 부정과 불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 애쓰는 자라면 목숨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싸우려는 사람은 잠시라도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다면 사사로이 행동을 취할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공인으로서 처신을 해서는 안 됩니다. - page 58 ~ 59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30표라는 근소한 차로 유죄로 결정됩니다.


유죄로 결정 후 형량을 위해 다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됩니다.

그는 애걸하기는 커녕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합당한 판결을 받으려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야 좋습니까? 그것은 내게 알맞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려고 한 사람은 가난하지만 선한 일을 했고,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사람에게는 프리타네이온(영빈관)에서의 식사 대접이 옳은 보상일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두 필 혹은 네 필의 말로 마차 경주를 하여 우승을 거두고 후한 대접을 받는 일보다 나의 경우가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러분을 즐겁게 할 뿐이지만 나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공정한 형벌을 제의하라고 하면 나는 프리타네이온에서 접대를 받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 page 75


결국 사형 선고가 내려진 그.

이제 그는 자신에게 유죄 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 여러분이 나에게 내린 사형보다 훨씬 더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난을 피하고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이러한 일을 저질렀겠지만 오히려 그 결과는 여러분의 생각과 정반대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비난하고 간섭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막고 있었지만 여러분은 미처 모를 것입니다. 그들은 젊기 때문에 더욱 과격하게 덤빌 것이고 여러분도 그들에게 화를 내며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람을 죽임으로써 올바로 살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면서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도피법입니다. 남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지혜와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훨씬 더 쉽고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내가 죽기 전에 나에게 사형을 투표한 분들에게 드리는 예언입니다. - page 85 ~ 86


그렇게 그는 자신의 소견을 분명히 밝히고 죽음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

소크라테스의 말들이 와닿는 건 아마도 그가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철학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또한 그가 바라본 '죽음'의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끔찍한 벌레인 해충으로 변하면서 그의 가족들과 겪는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상태로 보아 그레고르를 위한 그러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닥친 장애는 생각지도 않고, 한층 더 큰소리로 그레고르를 몰아댔다. 이미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녕 웃을 일이 아니었다. - page 130


고립된 방 안에서 그가 아무리 참담하고 징그러운 모습이더라도 그는 가족의 일원이며 가족의 일원인 그를 원수처럼 취급해서는 안되지만 결국...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누이동생이 말했다.

"그 방법밖에는 없어요.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것이 사실은 우리들의 불행이었어요.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인가요? 만일 저것이 정말 그레고르였다면, 인간이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틀림없이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그렇게만 되었다면 오빠는 없어졌어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서 오빠를 존경하면서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지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들을 희롱하고, 하숙인들을 내쫓고, 급기야는 이 집 전체를 점령하고 우리들을 길거리로 몰아낼 거예요. 네, 저것 좀 보세요, 아버지!" - page 194


그가 죽자 몇 개월 동안 마음고생했던 가족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교외로 소풍을 가 기분전환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윽고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레테는 제일 먼저 일어나 젊고 싱싱한 팔다리를 쭉 뻗었다. 잠자 부부의 눈에는 마치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보증해 줄 것처럼 느껴졌다. - page 206


자신의 방에서 벗어나려는 그레고르는 가족들로 하여금 암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이 참 비참하였습니다.

가족의 참모습이란...


여느 때 같았으면 이 시각에는 아버지가 석간신문을 어머니나 누이동생에게 큰 소리를 내어 읽어 주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누이동생이 항상 들려주었고, 출장 때면 편지로 알려 주던 아버지의 신문 낭독 행사가 요즘에 와서는 막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집안에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주위가 너무나도 조용했다.

'어쩌면 이렇게 식구들이 조용할까?'

그레고르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어둠을 지켜보면서 부모님과 누이동생에게 이런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안락, 행복, 만족의 일체가 무서운 종말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 page 134 ~ 135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

해답을 찾기 위해 남들보다 더 깊고 넓게 생각했던 '철학'과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생각하게 만들었던 '소설'.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해답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함을 이번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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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10주년 한정특별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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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이 출간된 지 어느덧 10주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이 좀 더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했으면 한다.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절벽 끝에 서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_작가의 말


예전부터 이 소설은 꼭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제서야 인연이 닿아 읽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뭉클함이...

작가님의 말처럼 이 소설이 모든 이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으며...


"나는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이다."

새로운 오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건네는 다정한 온기


시간을 파는 상점



황사 바람이 버석버석 날리던 5월 어느 새벽.

화재 현장으로 가는 도중 아빠는 어이없게도 속도광 운전자에 의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남긴 유언장에...


온조야,

삶은 '지금'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아름답고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아빠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빨리 갔을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온조가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온조 스스로 네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이 닥치든 힘차게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 page 27 ~28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하고 싶지 않은, 최소한 왜 뛰는지는 알아야 경주에서 이기든 지든 의미가 있을 것 같기에 온조는 알바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버거웠던 온조에게 엄마가 건넨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백온조,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게 각져 있지만은 않다는 거, 그리고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 page 40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

자신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점심을 '맛있게' 먹기.

편지를 지정해 준 곳에 한 달에 두 번 직접 배달해 달라는 것.

(이 의뢰는 '시간을 좀 더 잡아 두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쪽지로 인해 받아들이지만 결국 '절박함'이었음에...)

의뢰를 하면서 '시간'의 의미를 일러주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작은 선생님의 에너지는 시간을 뛰어넘어 죽음도 저만치 미뤄놓는 힘이 있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아빠와의 시간이 죽음을 넘어 지금 온조의 가슴에 오롯이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 page 115 ~ 116


- 앞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날은 3만 일도 채 되지 않는다.

- 삶 전체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우린 지금 몇 시쯤 됐을까? 아마도 새벽 다섯시?

- 혼자가 아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봐라, 거기 하늘만은 너와 함께 있다.

- 희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발길에 차이는 희망, 그것은 기꺼이 허리 숙여 줍는 자의 것이다.

-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 page 220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 page 235 ~ 236


온조 덕분에 저도 '시간'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지금을 의미 있게 보내지 않는다면 미래는 아무 의미 없음을.

그렇기에 소중히 이 순간들을 채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 먹자'는 말인사의 의미도 새기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주 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따로 있다. 반이 달라도 급식실에서 기필코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 인간의 본능 중 행복한 행위를 함께하고 싶은 욕구,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이 하나의 의미로 남는 것. - page 71


모든 시간 속에 추억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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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관한 것은 우연히만 알았으면 좋겠어 - 한 올 한 올 나만의 결대로 세상에 적응해나가는 극세사주의 삶에 관하여
김지수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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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참 와닿았습니다.

아마 제 심정과도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누군가 다가오면 반가움보단 낯섦과 두려움이 생기는 나.

그래서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습니다.

주변에선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뿐이었기에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만나자마자 읽으면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다음에도 또 만나길 기대하며...


"일정한 분량의 낯섦과 설렘으로

꾸준히 연결되는 어떤 마음들에 관하여"


서로에 관한 것은 우연히만 알았으면 좋겠어



남의 컵 쓰기를 싫어하는 오염 강박, 타인의 한마디에 밤새 곱씹는 불안, 수시로 SNS를 탈퇴하는 사회성 결핍, 내 식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통제광...

이런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을 지닌 그녀.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그랬다. 새침데기의 이면에 나는 언제나 사랑을 하고자 했다. 표현이 서툴러 달리 새어나간 말들과 사랑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를 근거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촘촘하게 선을 긋고, 넘어오는 모든 것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건강한 거리가 있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익숙지 않은 세상 속에 조우하는 기쁨과 슬픔을 꼭 끌어안고서. - page 7


극강의 촉촉함을 담아내기 위해 겉면이 바삭해진 이른바 '겉바속촉 초코칩'이 된 그녀.

촉촉한 초코칩 나라에서 조금은 움츠러들지라도 자신만의 결대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가끔 갈등은 버겁다. 감정이 들고, 시간이 들고, 노력이 든다. 사는 게 바쁘면 무슨 소용인가 싶고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하고 싶어진다. 나의 마음을 짚어보고, 상대에게 전달하고, 마음에 귀를 기울여, 또다시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 풀리지 않는 대화에 간 떨어지는 일 없이 그저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지속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천성이 그런 사람인가보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난리법석을 떨며 사랑하고 싶다. 원래 사랑은 어려운 법이다. - page 238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섬세한 그녀가 바라본 '삶'이란...


"산다는 건, '낯섦'과 '낯익음'이라는 극단의 감정을 번갈아 오가는 일이다." - page 163


그렇기에 인생은 얼마나 피곤한 것인가!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예민함은 좋고도 나쁘다. 그리고 내 성취의 대부분은 이 예민함에서 온다. 첨예하게 갈려버린 정신은 아주 작은 것에도 민감하다. 정확하고 신속하다. 그러나 동시에... 피곤하다. 몸과 마음을 쉴 틈 없이 갈아버리니 남아나는 데가 없다. 욱신거리는 다래끼와 가위눌림으로 굳어진 목. 나는 오늘도 벌게진 눈을 하고 글을 쓴다.

'인생은... 원래 피곤하다.' - page 119


낯선 것투성이인 세상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며 낯익음으로 서로 공생하며 살아감이 어쩌면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낯선 세상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기도 하였고 두렵기만 하였던 세상에 조심스레 한 발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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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무게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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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다 독서카페를 통해 고전을 읽게 되면서 '아!'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글이 전한 묵직한 울림.

그 울림이 저를 성찰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고전을 찾아 읽고자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전을 혹은 좋은 작품이나 글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책.

고전이라는 '책'이 아닌 고전의 '한 문장'을 통해서 가물어가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단비를 뿌려준다고 하니 어떤 고전의 어떤 문장이 무게 있게 다가올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왜 읽고, 왜 써야 했는가?


문장의 무게



27권의 고전으로부터의 문장이, 그리고 그 문장이 담고 있는 고전 작가의 세계와 저자의 생각이 또 하나의 '문장'들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읽었던 고전을 만났을 땐 그때의 내 문장들도 기억 속에서 하나둘씩 끄집어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게 되었고 새로운 생각에는 또 하나의 문장이 제 머리에 '여백'으로 새겨지곤 하였습니다.


문장은 무겁다.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문장의 존재 근거다. 그것은 문장을 품은 산이며 바다이자 우주다. 그 속에는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있고, 눈앞의 경험과 감각이 녹아 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별빛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 page 4


맨 처음 만나게 된 고전은 카프카의 《일기》였습니다.

그의 소설 《변신》에서도 그는 그의 본질로부터 소외되었고 그로 인한 고통은 그를 벌레로 변하게 만든, 결국 그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방 안에 혼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문장처럼...


"항상 존재하는 것은 방 안에 갇힌 세계이다."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데 그 씁쓸함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무게감이 자꾸만 이 문장의 되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벌레다. 누에고치의 애벌레다. 자신의 심연에 가득 찬 고독을 토해내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사람들로부터 차단하는 단단한 벽, 고독이 될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한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모두 질문만 할 뿐이다. 질문은 누에고치가 토해내는 실이다.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은 나를 감싸며 조여 오는 고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방 안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세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운다.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운다. 하지만 아무도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고독이 소리를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애벌레의 주름은 그 소리를 먹고 자란다. 그렇게 불안은 고독으로 깊어지고 늘어만 간다. - page 15


우리는 한 마리의 벌레라는 거...

그것도 고독 속의 한 마리 벌레라는 거...


지금의 봄에 사색하게 만든 문장이 있었습니다.

니체의 시적인 명제인


'신은 죽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들을 보면 인간이 신을 죽였음이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죽였을까...?


신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모순의 칼날이 되어 신의 목을 찌른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이성'이라는 도구로 신을 정교하게 다듬고 아름답게 치장했다. 어떤 시대에도 없었던 완벽한 도구로 완벽한 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신은 죽어간 것이다. 신은 이성에 갇혀 숨이 막히고 그들의 영역을 제한받으면서 한없이 작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신은 죽어버렸다. - page 164


인간의 삶 대부분이 불행과 실패가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보니 만들어진 신의 존재는 늘 위태로운 것이었고 그렇게 신들은 빠르게 죽어가고 그들의 주검은 인간의 심장 속에 안치되어 어두운 그림자로 떠돌고 있다고.

니체는 우리가 신을 죽인 후 또 다른 신을 만들고 파괴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불안과 우울 그리고 실존의 공포에 휘말려 있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해 이런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르게 된 그의 이야기는 저 역시도 잠시 창밖의 흩날리는 벚꽃에 생각을 기대어보게끔 해주었습니다.


나의 슬픔과 행복은 저 봄날의 흩날리는 벚꽃을 외면하는 것과 소리를 지르며 감탄하는 감정들 사이에 존재할 뿐, 결코 신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슬픔과 행복을 천천히 오가는 것이, 그것들 중 어느 한쪽만을 갈망하지 않는 것이 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알았다. - page 171


아마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박지원의 《연암집》에서의 그의 사색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라다니듯 한다면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낮에는 난쟁이가 되었다가 해가 기울어질 때는 키다리가 되니, 어찌 닮았다 할 수 있으랴."


이런 우리의 삶을 보면, 박지원은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약 반드시 잘 모방한 것을 잘 읽은 보람으로 여긴다면, 똥이 곧장 내려온 것을 잘 먹은 보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단어는 바꿀 수 없을지라도, 문장은 누구와도 같지 않도록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 page 271


문장의 무게...

저에겐 쓸쓸하면서도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아...

조금은 이 무게에 방황을 할 듯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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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무게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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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한 문장을 통해서도 깊은 울림 속에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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