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10주년 한정특별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이 출간된 지 어느덧 10주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이 좀 더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했으면 한다.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절벽 끝에 서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_작가의 말


예전부터 이 소설은 꼭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제서야 인연이 닿아 읽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뭉클함이...

작가님의 말처럼 이 소설이 모든 이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으며...


"나는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이다."

새로운 오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건네는 다정한 온기


시간을 파는 상점



황사 바람이 버석버석 날리던 5월 어느 새벽.

화재 현장으로 가는 도중 아빠는 어이없게도 속도광 운전자에 의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남긴 유언장에...


온조야,

삶은 '지금'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아름답고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아빠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빨리 갔을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온조가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온조 스스로 네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이 닥치든 힘차게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 page 27 ~28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하고 싶지 않은, 최소한 왜 뛰는지는 알아야 경주에서 이기든 지든 의미가 있을 것 같기에 온조는 알바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버거웠던 온조에게 엄마가 건넨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백온조,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게 각져 있지만은 않다는 거, 그리고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 page 40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

자신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점심을 '맛있게' 먹기.

편지를 지정해 준 곳에 한 달에 두 번 직접 배달해 달라는 것.

(이 의뢰는 '시간을 좀 더 잡아 두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쪽지로 인해 받아들이지만 결국 '절박함'이었음에...)

의뢰를 하면서 '시간'의 의미를 일러주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작은 선생님의 에너지는 시간을 뛰어넘어 죽음도 저만치 미뤄놓는 힘이 있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아빠와의 시간이 죽음을 넘어 지금 온조의 가슴에 오롯이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 page 115 ~ 116


- 앞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날은 3만 일도 채 되지 않는다.

- 삶 전체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우린 지금 몇 시쯤 됐을까? 아마도 새벽 다섯시?

- 혼자가 아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봐라, 거기 하늘만은 너와 함께 있다.

- 희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발길에 차이는 희망, 그것은 기꺼이 허리 숙여 줍는 자의 것이다.

-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 page 220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 page 235 ~ 236


온조 덕분에 저도 '시간'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지금을 의미 있게 보내지 않는다면 미래는 아무 의미 없음을.

그렇기에 소중히 이 순간들을 채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 먹자'는 말인사의 의미도 새기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주 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따로 있다. 반이 달라도 급식실에서 기필코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 인간의 본능 중 행복한 행위를 함께하고 싶은 욕구,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이 하나의 의미로 남는 것. - page 71


모든 시간 속에 추억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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