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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무게 -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3월
평점 :
저 역시도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다 독서카페를 통해 고전을 읽게 되면서 '아!'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글이 전한 묵직한 울림.
그 울림이 저를 성찰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고전을 찾아 읽고자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전을 혹은 좋은 작품이나 글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책.
고전이라는 '책'이 아닌 고전의 '한 문장'을 통해서 가물어가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단비를 뿌려준다고 하니 어떤 고전의 어떤 문장이 무게 있게 다가올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왜 읽고, 왜 써야 했는가?
『문장의 무게』

27권의 고전으로부터의 문장이, 그리고 그 문장이 담고 있는 고전 작가의 세계와 저자의 생각이 또 하나의 '문장'들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읽었던 고전을 만났을 땐 그때의 내 문장들도 기억 속에서 하나둘씩 끄집어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게 되었고 새로운 생각에는 또 하나의 문장이 제 머리에 '여백'으로 새겨지곤 하였습니다.
문장은 무겁다.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문장의 존재 근거다. 그것은 문장을 품은 산이며 바다이자 우주다. 그 속에는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있고, 눈앞의 경험과 감각이 녹아 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별빛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 page 4
맨 처음 만나게 된 고전은 카프카의 《일기》였습니다.
그의 소설 《변신》에서도 그는 그의 본질로부터 소외되었고 그로 인한 고통은 그를 벌레로 변하게 만든, 결국 그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방 안에 혼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문장처럼...
"항상 존재하는 것은 방 안에 갇힌 세계이다."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데 그 씁쓸함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무게감이 자꾸만 이 문장의 되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벌레다. 누에고치의 애벌레다. 자신의 심연에 가득 찬 고독을 토해내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사람들로부터 차단하는 단단한 벽, 고독이 될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한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모두 질문만 할 뿐이다. 질문은 누에고치가 토해내는 실이다.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은 나를 감싸며 조여 오는 고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방 안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세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운다.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운다. 하지만 아무도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고독이 소리를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애벌레의 주름은 그 소리를 먹고 자란다. 그렇게 불안은 고독으로 깊어지고 늘어만 간다. - page 15
우리는 한 마리의 벌레라는 거...
그것도 고독 속의 한 마리 벌레라는 거...
지금의 봄에 사색하게 만든 문장이 있었습니다.
니체의 시적인 명제인
'신은 죽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들을 보면 인간이 신을 죽였음이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죽였을까...?
신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모순의 칼날이 되어 신의 목을 찌른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이성'이라는 도구로 신을 정교하게 다듬고 아름답게 치장했다. 어떤 시대에도 없었던 완벽한 도구로 완벽한 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신은 죽어간 것이다. 신은 이성에 갇혀 숨이 막히고 그들의 영역을 제한받으면서 한없이 작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신은 죽어버렸다. - page 164
인간의 삶 대부분이 불행과 실패가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보니 만들어진 신의 존재는 늘 위태로운 것이었고 그렇게 신들은 빠르게 죽어가고 그들의 주검은 인간의 심장 속에 안치되어 어두운 그림자로 떠돌고 있다고.
니체는 우리가 신을 죽인 후 또 다른 신을 만들고 파괴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불안과 우울 그리고 실존의 공포에 휘말려 있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해 이런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르게 된 그의 이야기는 저 역시도 잠시 창밖의 흩날리는 벚꽃에 생각을 기대어보게끔 해주었습니다.
나의 슬픔과 행복은 저 봄날의 흩날리는 벚꽃을 외면하는 것과 소리를 지르며 감탄하는 감정들 사이에 존재할 뿐, 결코 신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슬픔과 행복을 천천히 오가는 것이, 그것들 중 어느 한쪽만을 갈망하지 않는 것이 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알았다. - page 171
아마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박지원의 《연암집》에서의 그의 사색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라다니듯 한다면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낮에는 난쟁이가 되었다가 해가 기울어질 때는 키다리가 되니, 어찌 닮았다 할 수 있으랴."
이런 우리의 삶을 보면, 박지원은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약 반드시 잘 모방한 것을 잘 읽은 보람으로 여긴다면, 똥이 곧장 내려온 것을 잘 먹은 보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단어는 바꿀 수 없을지라도, 문장은 누구와도 같지 않도록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 page 271
문장의 무게...
저에겐 쓸쓸하면서도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아...
조금은 이 무게에 방황을 할 듯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