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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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의 존재 방식...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지만 그 여운은 오랫동안 남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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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 어둠의 시간을 밝히는 인생의 도구들
미셸 오바마 지음, 이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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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바마는 버락 오바마가 아닌 미셸 오바마다"

백악관을 나온 지 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인 그녀, '미셸 오바마'.

첫 자서전인 『비커밍』을 읽으면서 솔직함과 강렬함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전했던 메시지.

"희망 말고는 줄 것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래를 그리세요."

그렇게 용기와 위로를 받았었는데...

5년 만의 신작이라고는 했지만 저는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미셸 오바마.

이번에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품위 있게 간다는 것은,

다만 계속 나아간다는 약속이다.

여기에는 의미가 있다. 반드시 있다."

미셸 오바마가 전하는

지치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태도에 관하여

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1부 자기만의 빛과 내 안의 잠재력을 찾는 과정을 살펴보고

2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집이라는 개념을 들여다본 뒤

3부 유독 힘든 시기에 우리의 빛을 품고 지키고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인생의 모든 순간, 지치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자기만의 빛'으로.

백악관에 있던 8년 동안 미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박힌 차별적인 편견과 선입관에 저항하며 백악관에 처음 살게 된 흑인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여준 희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뒤의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부터 공든 탑이 무너진...

그리고 팬데믹으로 자신의 일상을 지탱했던 수많은 계획과 체계들이 무너지면서 오랫동안 씨름해온 '충분하지 않았다'는 자조 어린 생각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녀를 둘러싸게 됩니다.

이토록 가라앉은 상태에서 그녀는 작은 것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작고 정교하며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 바늘이 달각이며 지어내는 '뜨개질'에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전해 준 이야기.

큰 문제 옆에 작은 문제를 두면 다루기가 좀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크게 다가와 두렵고 막막할 때, 과도한 감정과 생각에 빠지거나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버거울 때, 일부러 작은 것부터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머리가 거대한 재앙과 파멸만 걱정하고 있을 때, 스스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비되고 동요될 때, 나는 뜨개바늘을 집어 들고 두 손에 모든 걸 맡긴다. 나지막이 달각이는 소리와 함께 그 혹독한 순간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면서. - page 59 ~ 60

구멍은 언제나 클 것이며, 해법은 언제나 느리게 올 것이니 우선 작은 승리를 쟁취할 것을.

이 또한 진전일 것이기에.

그러니까 지금 코잡기부터 시작해 보자는 이 말이 참 멋졌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멋진 여성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아버지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던 그녀의 아버지 프레이저.

아버지가 불안한 자세로 다리를 절름대며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은 종종 가던 길을 멈추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내가 나한테 만족하면 누구도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없어." - page 151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았고 자기 가치를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신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중심이 잘 잡혀 있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에

결국 나를 보는 시선이 나의 전부가 된다는 것을,

나의 발판이 되고 내 주변의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 그녀 역시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좋은 엄마란 무엇일까>.

극적이지 않고 침착한 자세로 일관되게 그들 곁을 지키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던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는 내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주면서, 나의 두려움을 신속하게 방구석으로 몰아내고 '지나친' 걱정을 하는 나를 다잡아준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언제나 좋은 의도에서 행동한다고 전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의 의심과 우려에 답하기보다 기대와 높은 호감에 부응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신뢰받을 자격을 얻어내게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그냥 신뢰를 주라고 한다. '다정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어머니만의 방법이다. - page 267



고등학교 때의 일화가 나오는데 어느 거만해 보이는 수학 교사 때문에 속이 상해 있는 그녀에게 건넨 엄마의 이야기.

"네가 꼭 선생님을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널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선생님 머리에 수학이 있고 너도 머리에 수학이 있어야 하니까 그냥 수학을 넣으러 학교에 간다고 생각해."

어머니는 날 보고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이보다 이해하기 쉬운 진리가 없다는 듯.

"널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잖아. 우리는 언제나 널 좋아할거야." - page 277

특히 이 단순하고 힘 있는 메시지는 꼭 가슴에 새겨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널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어.'

세상에는 무수한 불공정이 존재하고 인생에는 의도하지 않은 일들로 분노와 절망, 상처와 공황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날것의 감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빨리 도랑에 처박히게 할 수 있는지 잊지 말자고 전하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품위 있게 가는 것.

나를 얽매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노력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소리를 내고자 애쓰는 것.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책의 마지막에 다짐을 하게 됩니다.



품위 있게 가는 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내 안의 빛을 밝히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일임을 깨달으며 이제부터 내 안의 빛을 찾아 나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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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 클래식 라이브러리 4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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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로 꼽을 정도로 영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이 소설.

하지만 그 속 사정은 안타까웠는데...

출간 직후 소설은 야만적이며 반도덕적이라는 이유로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브론테는 1년 뒤 결핵에 걸려 실패한 작품을 유작으로 남긴 채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하였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재평가된 이 소설.

덕분에 저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소설로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에밀리 브론테의 기념비적인 작품

'폭풍의 언덕'에서 '워더링 하이츠'로

워더링 하이츠



1801년.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이곳에서 상대해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 여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혼잡한 인간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곳이 영국 내에 이곳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상의 낙원이랄까. 히스클리프 씨는 내가 이곳의 황량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완벽한 짝인 셈이다. 멋진 친구! - page 9

'록우드'라는 한 남자가 황량한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기 위해 임대한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집주인을 만나러 워더링 하이츠에 찾아갔지만 그다지 반기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히스클리프.

하필 예상치 못한 사건과 궂은 날씨로 인해 하룻밤을 머물게 됩니다.

폭풍우가 치면서 전나무 가지가 창문에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로 잠에서 깬 그.

그러던 중 '캐서린'이라는 유령을 만나게 되었고 이 유령은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며 집으로 들어오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히스클리프에게 이 이야기를 건넨 록우드.

하지만 돌아오 건 화를 내며 록우드를 방에서 나가게 하였고 히스클리프가 창문을 열며 이미 사ㅈ라진 캐서린 유령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며 울부짖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록우드는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 가정부 딘 부인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됩니다.

20여년 전 리버풀에 갔던 언쇼 씨는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를 데려오게 됩니다.

그 아이가 바로 히스클리프.

언쇼 씨는 친아들인 힌들리보다 히스클리프를 더 아꼈기에 이들의 사이는 언쇼씨가 죽고 난 뒤 가장으로 강압적인 힌들리로부터 서로 간에 증오를 키워 나갔지만 캐서린과는 친밀히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캐서린이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에드거 린턴을 만나면서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에 대한 마음이 서서히 애정에서 바뀌게 되고

"... 내가 천당에 있을 필요가 없는 만큼이나 내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 그리고 저 방에 있는 악당이 히스클리프를 상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지만 않았다면 나는 에드거와 결혼할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이젠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는 것이 내 수준을 낮추는 꼴이 돼 버린 거야. 그는 내가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몰라. 그건 걔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히스클리프는 나보다 더 나 같은 친구야. 우리 영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야. 나에게 린턴의 영혼은 마치 달빛이 번개와 다르듯이, 아니 찬 서리와 뜨거운 불이 다르듯이 완전 별개란 말이야." - page 123

이 대화를 오해한 히스클리프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3년 후, 떠날 때처럼 갑작스럽게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부유하고 매력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워더링 하이츠에 머물게 됩니다.

힌들리의 알코올 의존증과 도박을 조장하고, 캐서린을 만나 그녀와 에드거의 결속을 악화시키는 등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 히스클리프.

점점 워더링 하이츠를 장악하면서 집안은 막장으로 변해가는데...

캐서린은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한 히스클리프의 계략임을 알고 괴로워하다 결국 예전에 겪었던 열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제길,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하다니! 어디로 간 거야? 거기가 아니야. 천국이 아니라고, 죽어서 사라진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면 어디로 간 거지? 아! 넌 내가 괴로워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지! 난 한 가지만 기도하겠어. 내 혀가 굳을 때까지 계속할 거야. 캐서린 언쇼, 내가 살아있는 한 넌 거기서 쉬면 안 돼! 내가 널 죽인 거라고 했잖아. 그러면 내 주위에 있어야 해! 죽은 사람은 필히 자기를 죽인 사람 옆에 출몰한다는 걸 난 믿어. 귀신이 돼도 이승에서 떠돌아다닌다는 걸 안다고. 늘 내 곁에 남아 줘.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아. 날 미치게 하라고! 제발 널 볼 수 없는 이곳에 날 내버려 두진 마! 이건 말도 안 돼! 내 생명이자 영혼인 캐시 없이 제가 어찌 살란 말이야!" - page 253

그의 울부짖음...

그런 그도 캐서린이 낳은 '캐서린'과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 언쇼로 인해 그동안의 복수심은 화해와 포용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두 집안의 갈등과 화해가 워더링-이 지역 사투리로 폭풍우에 노출될 격동적인 분위기를 이르는 말-처럼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폭풍의 언덕'으로 너무나도 익숙했던 이 작품.

이제야 비로소 제 이름으로 마주하고 나니 더 몰입하면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히스클리프에서 쏘아붙였던 캐서린(캐서린이 낳은)의 말이...

"... 히스클리프 씨, 그런데 당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우리를 괴롭혀도 소용없어요. 우리는 우리보다 더 불행한 당신 처지에서 그 잔인한 모습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을 보면 정말 측은하기 짝이 없어요. 암, 그렇고말고요. 악마처럼 친구가 없어 외로운 데다가 남을 시기하기만 하죠.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이 죽을 때 애통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전 당신처럼 되기 싫어요!" - page 426

쓸쓸한 승리감과 함께 입안에 씁쓸하게 남곤 하였었습니다.

이제는 포근한 하늘 아래서 고요한 대지에 묻힌 이들.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뒤의 어렴풋이 비칠 햇살에 잠시 마음을 기대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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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삶 클래식 라이브러리 2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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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릴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뒤라스.

무엇보다 이번 이 소설은 뒤라스적 세계를 예고한 초기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되었습니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많은 작품을 써 낸 작가인 뒤라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하였습니다.

가족 관계가 주는 불안과 절망의 변주,

초기 대표작으로 들여다보는

뒤라스의 작품 세계!

평온한 삶



소설은 프랑스 남서부 시골 마을의 뷔그 농장에서 살아가는 스물여섯 살의 '프랑신 베르나트'가 화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20년 전 쫓기듯 프랑스로 와서 뷔그 농장에 정착해 살아가는 베르나트 가족.

이들에겐 부모의 무기력, 프랑신과 니콜라 남매의 절망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원은 바로 프랑신의 외삼촌인 '제롬'이었는데...

그런 제롬은 니콜라와 싸우다 크게 얻어맞고 열 번째 날이 시작되는 밤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는 제롬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나 티엔의 죽음과는 멀게, 우리가 늘 상상하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와도 멀게 느껴졌다. 그 죽음은 밤이 막 시작되는 무렵에 일어난 듯했다. 이제 제롬은 끔찍하지 않았다. 그는 죽었다. 다시 말해 죽음의 위협에서 영원히 벗어난 사물이었다. - page 29

제롬이 죽은 뒤 클레망스는 자기가 뷔그에서 계속 살 수 있을 테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일말의 애정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아야 함을 깨닫고는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이 필요했던 그들은 클레망스에게 노엘은 두고 가라고 하였고 바보 같은 클레망스는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한번 우겨 보지도 않고 노엘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남은 이들의 모습...

시간이 갔다. 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심지어 이제는 영혼과 피까지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절대 나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나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법조차 잊었고, 행복을 꿈꾸지만 진짜 행복이 닥치면 짓눌려 버릴 몽상가, 방탕한 인간이었다. 제롬이 죽고 나니 클레망스가 남았다. 클레망스가 떠나고 나니 노엘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의 가난이 남았다. 스물네 해 묵은 우리의 무기력이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했고, 우리가 불가능한 삶을 살아갈 운명을 지녔다고 계속 믿으려 했다. - page 41

그리고 2년 전 니콜라가 결혼한 뒤로 뷔그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뤼스가 딱 니콜라가 자기를 잊지 않을 만큼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니콜라와 뤼스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기에 장례식 당일 저녁에, 클레망스가 떠나고 난 바로 다음 날에 뤼스가 뷔그로 돌아왔는가...

어쨌든 뤼스는 막 제롬을 죽인 니콜라를, 클레망스가 떠나면서 얻은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하는 니콜라를 곧바로 원했고 니콜라 역시 뤼스에게 다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뤼스는 몇 개월 전 뷔그에 와서 살고 있는 티엔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정작 티엔은 프랑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9월이 시작될 무렵 니콜라가 제안한 소풍을 다녀온 뒤 또 하나의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뤼스는 프랑신의 집에 발길을 끊었고 니콜라는 며칠 밤이고 뤼스의 집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만나 주지 않는 뤼스...

집을 나가던 저녁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클레망스.

"그날 난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어. 노엘을 갈라놓을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어. 페리괴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고! 용서 못 할 일도 아닌데, 나는, 그래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 다들 내가 마음에 안 드니까, 그래서 날 쫓아낸 거야." - page 92

니콜라에게 클레망스 얘기를 했고 노엘이 있으니 클레망스가 집에 있는게 낫다고 답해주었던 니콜라.

클레망스가 돌아온 뒤 사흘 동안 뷔그에 나타나지 않았던 니콜라는 시신으로 발견하게 되는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클레망스가 철로 위에서 기차에 깔려 죽은 니콜라의 시체를 발견했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마치 죽은 새 같았다. - page 95

두 번의 장례를 치른 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프랑신.

보름 동안 혼자 바닷가에 머물며

나만 여전히 남아서 아직도 이것을 안다.

안다는 것, 모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고 한들, 점점 거대해지고 그 빛이 점점 더 삼킬 듯이 밝아지는 파도로 일어서는 저 공허를 마주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 page 122

상념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권태의 밑바닥에서 새로운 권태를 마주하게 되고 점점 분열에 다가가게 된 프랑신은 다시 뷔그로 돌아가게 됩니다.

평소처럼 지에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티엔을 다시 만나고 새로 온 소작인들과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만 달랐다. 여행 가방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나는 피곤했고, 뷔그에 다가갈 때는 허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더 가야 하낟면 밤새도록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배고파지지 않고, 계속 이정도로 따뜻하다면, 내 젖은 구두가 길에 마찰하는 똑같은 소리가 계속 들린다면, 나는 그럴 수 있었다. - page 175

또다시 무던히 살아갈 프랑신의 모습.

그 삶의 모습이 '평온한 삶'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사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나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권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권태롭다. 언젠가 권태롭지 않은 날이 오겠지. 머지않았다. 나는 필요조차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평온한 삶이 오고 있다. - page 174

묵직한 한 방이었습니다.

결국 평온한 삶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 '권태'.

권태 속에 권태를 벗 삼으며 살아가는 삶이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하다는 사실이...

깊은 슬픔과 고독 속에서 위로를 받는 이 아이러니와 함께 다가와 깊은 여운이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을, 평온하다는 말이 지닌 의미까지도 ...

참 많은 생각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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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영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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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흥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곳인 '수도원' 안에서 펼쳐지는 '욕망의 레이스'라는 점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성스런 공간에서 펼쳐지는 수사들의 유쾌 통쾌한 욕망의 질주

부산국제영화제 제26회 아시안필름마켓 E-IP 피칭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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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경계가 신비로이 내다보이는 이곳, 제주 내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곳이라는 '오름'이라 불리는 이곳에 다섯 명의 수사들이 엄숙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에덴 수도원'으로...

그들은 원로 수사 도미니코가 주님 곁으로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기에 장례미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제가 저 관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page 21

도미니코는 그렇게 다섯 명의 수사들이 미숙한 솜씨로나마 힘을 합쳐 만든, 볼품없는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바로 '청빈'.

검소를 넘어 가난한 삶을 사랑가는 것이 수사의 본분이었기에 그것을 증명하듯 에덴의 수사들은 35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날씨에도 그 흔한 에어컨 한 대 없었고 수도복과 신발, 양말에 심지어 속옷까지 기워 입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서로를 사랑하며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던 그들에게...

"살려주세요!!!"

비바람 치던 어느 날 현관문 앞에 웬 시커먼 장발의 남자가 우뚝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없이 괴기스러운 모습의 그.

"안녕하세요. 김영철이라고 합니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제주에 온 이유는 좋은 추억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꼭 다시 와보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돈이 모이면 이상하게 사람들이 다가와 뺏기고...

누구를 탓할수록 자신의 잘못이란 생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던 영철은 수사들과 대화를 통해

프렌체스코는 인자하게 웃었다.

"지금처럼 즐거운 마음을 간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는 마음을 먹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부탁입니다."

영철은 벙찐 채 수사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영철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환히 웃으며 끄덕였다.

"꼭 그럴게요."

"아멘!" - page 68

삶의 의지를 얻게 되었고 그 보답으로 로또 한 장을 헌금으로 건넵니다.

제 1234회 추첨. 1, 3, 5, 7, 9, 11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었기에, 로또 추첨 방송도 끝난 시간이기에 결과를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로 검색해 본 결과...

제1234회 차. 당첨 번호. 1, 3, 5, 7, 9, 11.

이번 주 1등 당첨금. 60억.

"주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저것은 한낱 종이일 뿐입니다! 아버지!!!" - page 80

다음 날 이 소식을 영철에게 전해주고자 그가 잠든 방에 들어갔더니

영철은 두 손을 배 위에 곱게 모으고 잠들어 있었다. 원래 눈을 뜨고 자는 습관이 있는지 두 눈도 시퍼렇게 뜬 채였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입을 벌리고 자는 습관도 있나.

영철은 이가 훤히 드러날 만큼 활짝 웃고 있었다. 마치 박장대소하는 굴비처럼 그대로 누워 있었다. 라자로는 그제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건......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 page 92

영철에게 의중을 묻고자 했지만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에덴 수도원의 우물물처럼 그의 죽음도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두려웠던 수도사들은 시체를 은밀히 처리하려고 하지만 영철의 복권 존재를 아는 그의 여친 수빈이 찾아오고 수빈을 쫓아 사채업자들이 오고 수도사들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시청 공무원 범준까지!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이 펼쳐지게 되는데...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쳤으며, 도둑질에 폭력, 시체 유기까지 저지르고 만 수도사들.

가장 저돌적인 욕망의 레이스가 이 '로또 한 장'으로부터 펼쳐지게 되는데...

이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될지...

직접 소설을 읽고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와!

쉼 없이 몰아치는 전개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선악과였던 '로또'.

이로 인해

"원장 수사님. 이건 아무래도 아닙니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 위험천만한 데다 영철 형제를 집어던지는 것도 할 짓이 못 될뿐더러, 지금 저 수사님들은 상태가 이상합니다. 제가 알던 분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 page 215

수사이기 전 인간의 본성이 엿보였던 이들의 모습.

어제의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어진 모습에서 마냥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나 프렌체스코 역시도 이런 일에 동참하게 된 이유가...

"10여 년 전만 해도 저 안뜰에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갈구하던 분들이었지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들이 믿는 것이 주님이 아니라 우물의 기적이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우물은 우상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불안은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 여러분은 아예 주님의 품을 떠나버린 것도 모자라 에덴을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더군요. 저는 그런 여러분이 증오스러웠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죄수였고, 이곳은 교도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바깥세상을 내다봤습니다. 두렵더군요. 주님 울타리 밖에서는 여러분의 손가락질을 감당하기가 무서웠습니다. 하다못해 50년을 옥살이한 영화 속 노인도 그럴진대, 칠십 평생인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교도소나 다름없다 할지언정 이곳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곳이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 page 435 ~ 436

이 고백이 참 뭉클하게 다가왔었습니다.

실로 재미났습니다.

그리고 재미 뒤에 아련함이 남아 그들의 모습이 쉬이 잊히지 않았었습니다.

저마다 짊어진 인생의 무게에 대해...

그야말로

더 게스트(Te Guest). 볼수록 참 마음에 드는 제목이었다. - page 476

이 문장이 제 감정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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