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타마치의 모습이 남아 있는 야나카라는 동네에서 작은 앤티크 기모노 가게 히메마쓰야를 운영하고 있는 '시오리'.
집 앞 청소도, 화분 손질도 끝나고 가게 안으로 돌아와 마토카 씨가 준 과자를 먹으며 잠깐 쉬려는데 실례합니다,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찾는 게 있으신가요?"
조용히 다가가 묻자 남자는 허둥지둥 "아, 아뇨, 저, 기모노를 찾습니다만." 하고 대답했다. - page 13
클라리넷의 저음을 닮은 듣기 좋은 목소리와 어딘가 기린을 닮은 듯한 이 남자.
신년 다회에 입을 기모노를 찾고 있었고 다행히 남자 기모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매와 기장이 약간 짧아 사이즈 수선이 필요했기에 다음에 찾아올 것을 약속하며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았는데 '기노시타 하루이치로' 씨...
이름이 근사하시네요, 라고 내가 칭찬하자 기노시타 씨는 봄의 첫 강풍(일본어로 '하루이치반')이 분 날 태어났거든요, 라고 부끄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웃으면 눈꼬리에 주름이 세 줄 지는,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낀 사람이었다. - page 23
신년 다회 전날, 기노시타 씨는 오후 늦게 기모노를 찾으러 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많은 이가 오가는데도 기노시타 씨가 있는 곳만 양지바른 곳처럼 환해 보이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만날 때마다 머리로는 이래도 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몸은 기노시타 씨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시오리.
그렇게 이들은 봄날의 꽃구경을 시작으로 한여름 불꽃놀이를 지나 가을의 달맞이하며 다시 지독한 겨울 감기와 함께 사계절을 함께 애틋한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대로 이런 식으로 하루이치로 씨와 가까워지면 나는 더더욱 하루이치로 씨를 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처한 사람은 하루이치로 씨다. 하루이치로 씨가 살아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내가 차츰 하루이치로 씨의 인생에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이 이상 다정하게 대하면 나는 참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알 수 있었다. - page 375 ~ 376
이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사계절과 함께 나아가는 아련한 사랑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수채화처럼 그려진 이들의 이야기.
몽실몽실하였고 아련함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던 이 소설.
무엇보다 시오리의 내면이 섬세히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문장...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다. 마음속에 잔해처럼 무질서하게 쌓인 감정과 감정 사이로, 빛을 구해 지상에 고개를 내미는 꽃처럼 나도 환한 쪽을 향해 살아가고 싶다. - page 427 ~ 428
오가와 이토의 작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에 따스한 바람이 제 가슴에 살랑 불어와 핑크빛으로 물들여주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