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부락'이라 불리던 오사카시 이카이노(현 이쿠노구) 출신 재일코리안 2세인 그녀, 양영희.
열렬한 조총련 활동가 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일곱 살 즈음, 세 오빠를 이른바 '귀국 사업'으로 북에 떠나보내고 상실감과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힌 트라우마를 원동력 삼아 가족의 이야기를 캠코더에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 편의 다큐멘터리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아버지-북의 가족들(분신과도 같은 조카 선화 포함)-어머니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연고라고는 없던 북한을 지지하고 맹목적으로 조총련 활동을 하던 부모님.
그 내면엔 제주4.3사건이 있었고 이는 한 가족의 삶에, 나아가 한반도와 재일코리안의 역사에 거둘 수 없는 그림자를 남기고 말았었습니다.
상황이 그러했고 당신들의 선택에 맹목적이고 편협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답답함에...
'아들을 돌려줘!' 가슴속으로 수없이 외쳐댔을 부모님의 회한을 생각하면 누구에게 터뜨려야 할지 모를 분노가 솟구쳤다. 동시에 북송 사업의 선봉장이었던 부모님의 설득으로 북에 건너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모님을 규탄하고 싶어졌다. 세 아들과 가족들을 볼모로 만든 부모님을 결과만 놓고 공격하려는 스스로가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삼켜버린 생각들이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원룸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부모님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지쳐버렸다. - page 47 ~ 48
그녀가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건 결국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습니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page 31
평양에 살고 있는 세 아들과 며느리들, 성장에 따라 커져가는 손주들에게 보낼 짐을 싸면서 항상 웃으시면 하시던
"이런 짓은 나만 하면 돼. 부모니까 하는 거지"
말씀이,
뇌경색 전에 무엇보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 갑자기 물어보자 침묵이 흘렀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그, 가서......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신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타임캡슐을 타고 북송 사업이 활발했던 무렵으로 돌아가서 목차를 훑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아들들을 보냈을 때. 아버지는 몇 살이셨죠?"
"몇 살이었으려나......"
"지금부터 32, 33년 전이면 아버지가 43, 44세?"
"당시 전망이라는 게, 재일조선인 운동이 제일 양양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문제가 다 잘 풀리는 쪽으로 보았으니까. 안일했지......" - page 92
그리고 자신의 죽음 앞에 딸에게 건넨 이 한 마디가
"영희가 정한 길, 쭈욱 가면 돼."
참 울컥하게도 만들었었습니다.
분노와 반발심으로 그토록 벗어나고팠던 가족이 한 걸음 뒤에서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이해와 용서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적의 '아라이 카오루'라는 남자의 등장은 가족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던 양영희에게 새로운 '가족'을 선사하게 됩니다.
어머니와 카오루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함께 장을 봐온 마늘 껍질을 벗기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때, 이 장면이 작품의 핵심이 되리라 확신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 page 172 ~ 174
양영희 감독이 전한 이야기.
비극적인 현대사 위에 켜켜이 쌓여간 애달픈 가족의 서사는 그 어떤 기록문보다도 소중하였습니다.
감독이 앞서 말했던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맴돌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