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부터 찌릿하였습니다.
응급실에 한 남자가 긴급히 이송됩니다.
왼쪽 젖꼭지 바로 아래, 심장 깊숙이 칼날이 꽂혀 있는 그.
흥건히 흘러내리는 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일상적인 장면임에도 이 환자에게서는 등골에서 다리까지 오싹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환자의 몸속의 심장박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칼자루.
가슴을 열지 않고도 심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환자에게서는 생명의 피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환자는 살아서 수술실 밖을 나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과다 출혈로 죽어가는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그의 심장에 칼을 꽂은 사람은 누구이며,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독일 신경심장학 및 심리심장학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 심장외과 전문의 '라인하르트 프리들'이 칼이 심장에 꽂힌 채 응급실에 실려 온 '하미트'의 수술과 회복 과정 및 그가 겪은 살인미수 사건의 내막을 한 축으로 '피에 관한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큰 흐름이 '피'에서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병을 옮기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앗아가기도 하는
그야말로 '피'는 선과 악이 공존하였고 삶만큼이나 다양했으며 양식이고 삶이고 죽음이었습니다.
피의 색깔은 사랑의 색깔이었고
피 한 방울이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완전히 밝힐 수 있는 '액체형 지문'인
파우스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았을 때, 이 악마가 파우스트의 피로 서명된 계약서를 손에 쥐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의미심장한 문장과도 같았는데 바로
"피는 특별한 액체다."
이처럼 매력적인 액체 '피'.
그리고...
피에서는 쇠 냄새뿐 아니라 돈 냄새도 난다. 피는 수익성 높은 돈의 흐름도 창출한다. ㄷ돈과 피의 은유가 비슷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본 역시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주식시장도 출혈을 겪을 수 있고, 돈이 건강한 경제에 수혈되어야 한다. 시장은 중앙은행의 핏방울에 의존하고, 피는 원자재 대금으로 세계 도축장에 흘러들어간다.
혈액 파생상품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쪽은 늘 그렇듯이 소액 예금자가 아니라 은행이다. 피는 1리터에 400달러이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액체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한다. - page 110
특히 전혈보다 혈장이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여겨져 미국 극빈자들 사이에서 혈장 판매가 일종의 생계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나치가 혈액형이 A형이고 키가 크며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아리아 인종을 널리 확산시킬 목적으로 행했던 피의 역사까지
피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여러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피는 스스로 움직인다. 심장의 펌프질로 피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가슴과 복부의 큰 동맥을 수술할 때는 심장에서 피가 방출되지 않게 막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때 심박출량이 최대 25퍼센트까지 증가한다. 심장외과 의사 레온 만테우펠쇼에게는 개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사망 후 최대 두 시간까지 혈류가 감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든 심장외과 의사는 심장박동이 멎은 후에도 심장이 비워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가득 채워지는 현상을 잘 알고 있다. 심장박동이 멈춘 뒤에도 정맥혈이 계속 오른쪽 심장으로 들어와 심장을 채운다. 마치 피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의 발원지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힘이 피를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age 244
"심장은 피보다 나중에 생성되기 시작하여, 피의 자체적 움직임만으로는 그새 성장한 태아의 온몸을 순환하기에 역부족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태초에 흐름이 있었고 그 흐름의 중심에 '피'가 존재한다는 것.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원활히 흐르며 다른 모든 기관을 채우고, 생명을 주고, 연결하는 액체 기관 '피'.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한 바를 요약하자면
우리는 모두 피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삶과 죽음조차도. - page 335
였습니다.
'피'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
결국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
모두가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