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소비 심리학 - 경제 원리에 숨겨진 부자들의 소비 비밀 당신의 재무주치의 2
엄성복.이지영 지음, 제윤경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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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돈 버는 소비 심리학

 경제 원리에 숨겨진 부자들의 소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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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스런 아줌마의 소비심리 이야기 뒷 담화!

이 책에 대해 1줄로 소개하자면 이렇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책에 소개되어진 소비행태며 소비심리며 모두 구구절절 맞장구 칠 만큼 공감 가는 내용들이요 우리네 고민거리들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비심리를 투명인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칼만 안 들었지 호시탐탐 우리 돈을 노리는 투명인간들이 우리 주위에는 곳곳에 숨어있다는 말이다.

이 투명인간은 배트맨처럼 갖가지 재주도 잘 부리며 엄청난 힘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지갑을 털어가기도 하고, 우리들 마음을 움직여 자신들을 위해서 지갑을 비우도록 홀리기도 한다. 또한 아주 이기적인 것들이라 가족이나 친구들을 이용해서 우리의 통장을 털어가며 우리의 욕망을 자극해 통장과 지갑을 가득 채워주겠다고 부풀리고는 남아 있는 잔고까지 모두 털어가기도 하고 털다 털다 가져갈 것도 없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최후의 무기인 우리네 미래의 노동력까지 앗아가 버리고 만다.

그렇게 무서운 투명인간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며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때론 잠자리에서까지 유혹에 시달리게 만든다. 또한 스스로가 투명인간이 되어 자신을 유혹하기도 한다.




그들은 변신술도 뛰어나고 순발력 또한 뛰어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투명인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매우 다양하고 교묘한 유혹의 방법들을 개발해내고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잡지 속은 온통 투명인간들이 판치고 광고에는 반투명인간으로, 드라마, 쇼, 뉴스 등 우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더욱더 기발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숨어 있어 어디로 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더 뛰어난 건 가장 친한 친구들, 동료들, 친척, 가족 등들에게도 투명인간에게 감염되어 투명인간 대변자로 활약하고 있어 행복을 가장한 유혹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온갖 달콤한 미끼를 수시로 낚시 밥을 던져 우리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잘 쓰고 잘 살고 싶어 많이 벌기를 원한다. 하지만 잘 못 쓰고 잘 못 쓰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하여 악순환의 반복적인 습관으로 이어져 행복하기 위해 잘 살려고 하는 것이 불행과 잘못된 만남을 하고 만다.




소비가 나쁜 것이 아니다. 잘못된 소비가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든다.

계획된 소비, 건강하고 건전한 착한 소비를 해야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우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과도한 욕심이 앞선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가 필요에 의한 소비, 계획된 소비, 부족함을 채우는 소비를 한다면 돈을 쓸수록 행복이 줄어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아닌 쓴 만큼 행복해지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현재의 삶이 행복감과 충만감이 넘쳐날 텐데....




이 책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짠순이로 사는 알뜰한 소비노하우를 친절한 아줌마처럼 이것저것 알뜰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일상 속에서 올바른 돈 관리와 건전한 소비문화, 안정적인 미래 설계의 중요성은 무시한 채 오직 돈 벌 궁리만 하고 욕심만 앞세우는 과욕의 배불뚝이 가장을 이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의식, 왜곡된 부자 개념 등을 극복하고 건전한 가정 경제를 만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건전한 가정 만들기에 적극적이고 안정적인 재테크 논리와 기본에 충실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우리의 소중한 가정은 튼튼하고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올바른 경제지식 습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책에선 재무주치의 시리즈로 우리의 생활에 적용할 참고 재무 설계의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돈 버는 소비 심리학 이 책에서 아쉬운 건 경제에 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해 놓아 재무구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가정주부들과 초보 살림꾼들에게 왜 재무 설계가 필요한지 일깨워주고 있지만 좀 더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재무 설계의 요령보다 막연한 설명식의 재무 설계가 필요하다는 재무 설계의 문턱근처에서만 왔다갔다 설명되어져 있어 다 읽고 나서도 자신의 실생활에 접목시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치 소프트웨어 판매 회사가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맛보기 버전만 퍼뜨려놓고 막상 세이브를 하려면 하지 못하게 막아버려 약을 올리듯이 재무 설계가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는 실생활인들에게 궁금하면 돈 내고 상담하라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풍겨지는 씁쓸함에 세미나에서도 TV매체에서도 재무 설계사들의 영업형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발행하면서도 똑같이 적용하는구나 라는 배신감이 느껴져 이젠 재무 설계사들도 얄팍한 영업상술로 재무 설계의 홍보를 돈 받고 홍보하는 행위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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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대학 2 - 교양과 사고력을 키워 주는 재미있는 학교, 특별한 강의!
울리히 얀센.울라 슈토이어나겔 엮음, 클라우스 엔지카트 그림, 유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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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 대학 (2) (Die)Kinder Uni

한 권에 세상의 비밀 여덟 가지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수준 높은 어린이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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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대학’이라니? 

책 소개를 먼저 하기 전 어린이 대학이란  뭔지 부터 말해볼까 한다. 

책장을 펼쳐들면서부터 궁금했기 때문인데 머리말에 소개되어진 내용과 더 부연설명이 많은  온라인 서점의 도서소개난에 기록된 내용을 섞어 보았다.

 

어린이 대학’이란  15세기에 세워진 독일의 국립종합대학인 튀빙겐대학교에서 2002년부터 해마다 방학이나 휴일에 초등학생들을 위해 여는 아주 특별한 학교다. 

어린이 대학의 강의는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하여 저명한 학자들인 튀빙겐대학교 교수들이 맡고 있다. 강의 주제는 참가한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으로 정하여 아이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쏟아내는 질문들이라 단순하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웬만큼 배운 어른들도 속시원히 명확히 그 해답을 풀어주기에  좀  힘든 어려운 내용들로 아이들이 내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랜 세월 동안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탐구되고, 설명되고, 다시 제기되고, 지워지고, 덧붙여지면서 오늘에 이른 것들이다.
독일에서도 어린이 대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기껏해야 일부 아주 뛰어난 아이들이나 부모가 가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참가한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자연스럽게 강의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핵심어를 메모하는 아이들, 강의가 끝난 후 강단으로 몰려와서 사인을 받으려는 아이들, 온갖 질문을 퍼부어대는 아이들의 지적 욕구를 보면서 이런 우려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이 이제껏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들, 깊이있게 알고 싶어했던 많은 것들을 교수들은 저마다 온갖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재미있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각 분야의 수많은 학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


 

그리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면서 세상 공부를 풍요롭게 시켜준 튀빙겐대학교의 특별한 수업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어린이 대학 』이다.

 

좀 길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부럽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나처럼 공부에 현실적으로 시달리지 않는  어른에겐 .....

하지만 이 책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제목부터 거부감이 드는지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이유는? 대학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강박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대학 하면 공부, 입시부터 떠올리는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벌써부터? 라는 생각에 연민이 느껴져 안타까움이 든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모가 '공부 공부'라며 노래부르고 다니지도 않는데 그들은 벌써 '책'이라고 하면 교과서, 공부, 시험 이렇게 연상단어의 꼬리를 물고 스트레스를 벌써부터 받기 시작한다. 각종 매스미디어의 매체에서도 과외다 학원이다 입시지옥, 영어원어민 교육 이러쿵 저러쿵하며 온갖 것들을 끌어다 뉴스로 방송하다보니 초등학교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학이라는 곳이 자신이 가는 길의  중간 과정 중의 일부가 아닌 공부의 목표지점으로만 인식되어져 스트레스의 원흉이 되고만 이상한 고정관념을 심어준 어른들의 잘못이 무엇보다 가장 크지만 어떻게 그 생각을 바꿔줘야할까 라고 생각하니 나 조차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차를 훑어보더니 제일 먼저 펼쳐드는 페이지는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왜 그렇게 많아요?'였다.

이젠 좀 컸다고 어른이 하는 말에 콩닥콩닥 말대꾸도 제법하고 왜요?라는 반 반항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작은 꼬마아가씨는 자신이 생각해도 왜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게 많은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더니 책을 덮고는 "나 잘래"였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시늉을 하는 데 나는 의아해 하며  "왜그래? 책에서 뭐라고 말했는데?"라며 물어보니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이 아닌 책에 나온 얘기들은 논리정연하게 풀은 자신이 읽어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획기적인 만화스러운 대답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만화를 너무 많이 본게야... 라고 내심 혀를 끌끌 찼지만 나 또한 어릴 때 기억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간섭과 그들이 금기사항을 명확히 이해시켜주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나를 따르라'라는 듯한 어투에 어른들의 행동이 이해도 안가고 뭔가 억울했던 기억만 있어  '공감'이라고 말은 하지 못했어도 이해는 갔던 초등학교 3학년의 반응이었다.

 

사실 책에 나온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것을 체득하고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논리정연한 말들이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싫은 반항적인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무작정 한다는 것도 아니고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과 "이것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에 어떤 것을 하고 싶었지만(그 마음이 드는 건 나도 이젠 좀 컸다라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했던 상태) 어른들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먼저 차단하고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음에  답답해 했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식적인? 어른이 되고 난 후부터는 한동안 어른들의 금기사항을 일부러  더 해 보고 찾아다니면서 해 보고 난 후에야 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별 것 아닌 것을 어른들은 기를 쓰고 하지 말라고 했음이 오히려 더 아이러니 했던 씁쓸한 기억에 어른들만의 잣대로 규정지은 '하지 말라'라는 금기조항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겐 적용하지 말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조카들에게 또는 어린 후배들에게 '하지 말라'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하긴 한창 나이에 호기심 왕성한 시기에 하지 말라는 것을 한다는 것은 아주 짜릿한 쾌감을 맛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그래서 그 묘미를 맛 본 다음부터는 서서히 어른들의 눈을 속이며 그들만의 짜릿한 쾌감맛보기에 들어가는데 어른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구구절절한 타당성을 설명하기 보다 오히려 멍석을 눈 앞에 쫙 깔아주는게  더 효과적인 교육방법인 것을. 물론 위험한 요소는 곳곳에 숨어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고리타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단지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이 책을 받아들이기에 아직 미성숙하고자신의 생각을 잘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성숙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반응이 좀 미덥쟎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이 읽으면 흥미로워 할 책인 것 같다.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다가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이미 자신이 체득한 것과 접목시켜 읽을 수 있어 아이가 직접 읽지 않아도 어른이 먼저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해 같이 토론하고 설명해 주면 더 이해를 빨리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적인 말이 아닌 진정한 부모와 자식간의 솔직한  그들만의 대화로.

 

『어린이 대학 (2)』는강의 내용을 지면에 실은 책이라 서인지아무래도 강의에서 보여지는 현장감과 생동감이 떨어져 보인다.

이 내용을 강의로 들었다고 상상하면 훨씬 더 생동감있고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질문과 대답 형식의 편집으로 갔더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기도 하고 편집디자인을 좀 더 생동감있게 아기자기한 레이아웃으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강의 느낌까지는 살리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읽기에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책.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은 내가 어릴 때 관심가져 했고 흥미로워하고 궁금해 했던  알쏭달쏭한 내용들이 가득담겨져 있어 지적 호기심의 해갈解渴은 해 준다는 점이다. 

왜 꿈을 꾸는지,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면 과연 내 영혼과 상대방의 영혼이 정말 만나서 꿈으로 보이는 건지, 동물들도 꿈을 꾸는지, 하늘의 별은 왜 반짝거리는지, 별똥별이 떨어지면 과연 어디로 가는지 등 등 이루말할 수 없이 궁금한 것들이 이 책에 가득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릴 때의 자신의 추억과 기억들과 어우러져 이 책을 읽기에 공감대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과 공부에 대해 특별한 알러지 현상이 없는 아이들이라면 이 책은 금상첨화다.

 

『어린이 대학)』이 책을 읽으면서 교육자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도 가져본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과 토론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도 있을 만큼 무겁지 않고 흥미로운 주제가 담긴 이 책을   참고로 하여 활용할 공부에만 얽매이지 않는 여유만만하고 창의적인  학교가 어디 없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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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영광 -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대언하는 우리 시대 대표 설교자 10인을 만나다
이태형 지음 / 포이에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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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영광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대언하는 우리 시대 대표 설교자 10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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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세계관 종교문화』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바로 『두려운 영광』을 읽게 되었다.

앞에 읽었던 『세계관 종교문화』는 한국적 기독교적 세계관의 문제점과 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한국 기독교가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따끔한 질책으로 저자는 근래 들어와서 한국의 교회가 왜 점점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지 그 비판받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부분의 내용도 따끔하게 말한 책으로 『두려운 영광』에 나오는 한국의 대표 설교자 10인의 목회자 분들의 말씀과 접목시켜 봤을 때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 내가 평가를 할 순 없지만 평신도로서 내 자신도 스스로 돌아보게도 하는 계기도 되었다.

 


두려운 영광』의 책에 실린 10분의 목회와 설교에 대한 이야기들은 저자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만났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 놓은 책으로 이 책은 앞으로 목회자가 될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만한 책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목사님 설교나 듣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평신도들도 읽어보면 내 입장에서 바라본 목회자가 아닌 목회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기독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도 되어 나의 믿음에 대해 한 번 더 되짚어 보게 될 계기도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한 교회의 목회자가 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로 선다는 것, 그리고 선포한 말씀대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어느 목회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그만큼 목회자의 길로 가는 것은 고통과 고난의 길로 뼈를 깍는 아픔과 자기자신이 과연 목회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되는지도 끝없이 반문하고 기도하며 자아성찰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신도들을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목회가 되기 위해 또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영광스런 작업이기에 목회자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끝없이 기도하고 응답받고 정죄하는 시간을 목회하는 시간의 몇 배를 투자하며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라는 모토로 제자훈련 사역을 꾸준히 실행하여 평신도 사역과 관련해 건강한 교회모델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옥한흠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은 '설교는 십자가'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평생동안 설교했던 것이 지금도 자신의 설교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가라고 반문하며 때로 확고한 신념이 흔들릴 때도 있어 설교가 확신에 찬 즐거운 말씀이 아닌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는 목사님의 겸손의 말씀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로 묵상과 설교에 관한 그 분의 솔직한 말씀에 나 또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는 공감하고 마음의 평안을 받지만 설교가 끝나고 난 후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하나님 말씀을 잊고 사는 나의 모습과 비견되어 절로 고개가 숙여짐에 부끄러워진다.

 

'설교를 통해 성도들 안에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설교자에게 중요하다. 옥 목사가 40년 가까이 설교를 해오면서 늘 탄식하는 것은 그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설교를 들을 때에는 사람들이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지만 그것이 곧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21쪽)

 

지금은 가지 않지만 오래 전 철야기도에 가본 적이 있었다. 큰 소리내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라 평소에도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듯 없는듯 교회를 다니던 나는 친구와 우연찮게 갔던 철야기도는 참으로 놀라움이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후 신도들의 아우성치는 듯한 열정어린 기도의 목소리는 눈을 감고 있는 내겐 그야말로 지옥같은 느낌으로 난 후다닥 뛰쳐나오고 말았다. 신도들의 울부짖음과 고통스럽지만 열망의 기도들은 내 귀엔 마치 '나만 구원해주세요'라는 이기적인 말들로 들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게 참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생각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친구에게 불편함의 하소연을 했었다. 물론 또래의 젊은 기독교인들은 조금 그 부분에선 조용하지만 나이가 지긋이 들은 어르신들은 자신의 기도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에게 빨리 전달된다고 생각되는지 옆 사람들보다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치고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겐 너무나 낯설은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한 부분으로 치우친 편협된 생각과 고집들은 나의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외경스러운 마음마저 들며 진정한 참 기독교인들에 대해 생활에 대해 내가 아는 한 진정한 기독교인인 성경말씀에 충실하고 사역을 맡고 있는 친구와 젊은 목사님과 그것에 대해 가끔 생각을 주고 받곤 하지만... 목사님 앞에선 순한 양이 되지만 일상생활에선 그냥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교육이 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나 또한 그들의 행로에 벗어나지 못함에 부끄러운 마음이다.

  

목사 건, 평신도 건 크리스천 모두는 지금 서 있는 터전에서 목회자입니다.
제가 목사 열 분에게 질문했던 목회와 인생, 성공에 대한 답을 음미하며 리스트를 한번 작성해보면 어떨까요?
라는 저자의 서두의 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잡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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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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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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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그렇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우주의 기운과도 같은 불가항력적인 커다란 영향력 아래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때론 마구 휩쓸려 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내가 준비해 온 또는 살아왔던 것들의 패턴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려 가는 것 같아 낯설음과 혼란스러움의 두려움과 매서운 현실에 나 자신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어미 백양나무에게서 떨어져 나온 어린 백양나무 곁가지도 그랬습니다. 논에서 써레질을 하고 있던 첫 새끼를 밴 암소가 기차기적소리에 놀라 뜀박질하며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을 재희 아버지가 황급히 백양나무 곁가지를 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앙상한 백양나무 곁가지는 불현듯 닥쳐온 적응할 준비과정도 없이 꺾여진 혼란스러움에 행여 자신이 암소의 회초리가 되어 제대로 살지 못하고 말라 죽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양 나뭇가지는 궁금해 했던 재희의 집까지 어미 소와 같이 가게 되었지만 결국 걱정했던 염려가 현실로 다가와 재희의 종아리를 매섭게 때리는 재희 어머니의 회초리로 이용되고 말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 그런데 운명의 장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백양나무 곁가지에서 나무 막대기로, 다시 회초리에서 그리고 똥친 막대기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실낱 같은 희망이 속절없는 꿈이 되어버린 순식간에 벌어진 사단이었습니다. 참 허망하죠?



‘현기증이 나도록 하늘 높게 자란 어미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까치 부부가 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느새 알을 낳아 품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 알들에서 부화된 새끼들이 활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몰염치하고 성가신 존재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까치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한낱 나무 작대기가 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나의 어미나무는 그런 배려도 할 줄 모릅니다. 어미나무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 또한 스스로의 능력으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을 안겨 줄 날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비극을 맞이할 준비만 갖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 또한 백양나무 곁가지처럼 작은 소망을 하나씩 품고 일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소망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인 양 우리네 가슴 속엔 저마다 각자의 소망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지요. 아마도 그것마저도 없다면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낯설고 매서운 세상에서 어미 품에서 벗어난 자식들은 어미마저도 자식의 모든 고통을 대신 해 줄 수 없는 현실을 그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메말라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우울증으로, 자살로, 또 다른 고통으로.



그래서 세상은 또 그렇게 비극적인 곳인 것만은 아닌 가 봅니다. 내 마음 속에 나 만의 믿음의 소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상은 아직은 살만한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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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칩 전에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어린 가지로 있을 때, 내 어미나무는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빨아올린 자양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공급해 주었습니다. 딱하게도 나는 그것을 당연한 줄로만 알았지 은혜인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이제야 어미나무의 희생적인 보살핌을 떠올리며 한없이 눈물짓는 딱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나는 어째서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숲 속의 동물들과 같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일까요.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을 이제 와서 원망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세상은 공평합니다. 어미가 자식을 잉태하고 낳아서 기르는 고통을 누가 알아줄까요. 어미는 당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알아달라고 세상에 외치지도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식의 고통이 자신의 죄로 인한 인고의 고통인양 자식의 눈물에 하염없이 아파하고 눈물지으며 당사자인 자식보다 더 아파합니다. 그래서 더 자식을 보듬어 안으려하고 당신의 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죽도록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지려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홀로 서기를 염원하며 넓은 세상으로 걱정 속에서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홀로 뒤켠에서 눈물짓습니다. 그것을 어찌 자식이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자식은 알게 됩니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어미의 은혜를, 희생을 훗날 자신의 고통 속에서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물론 어미의 고통만큼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어미와 자식의 끈끈한 연은 천륜으로 영원히 이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합니다.


그것을 세상의 이치를 어느 누가 알려줄까요? 학교에서 바른생활시간에 알려줄까요? 종교가 알려줄까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억지로 알려줄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우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순백 같은 삶을 얼룩져가면서 가슴에 피멍이 들기도 하면서 우린 알게 됩니다. 백양나무 곁가지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 할 장소에 도달한 것처럼 말입니다.


산골 초가산간 어미 소의 킁킁거리는 콧김처럼 알싸한 새벽안개, 그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따끈한 소 여물냄새, 밤새 타고 남은 아궁이 속의 타고 남은 땔감나무의 그을음 냄새 등이 곳곳에 묻어나는『‘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김주영 작가의 소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더불어 이슬비에 젖은 촉촉한 시골 길처럼 푸슬푸슬하지만 섬세한 수채화 같은 강산 그림과 잘 어우러져 읽는 내내 그리운 외갓집이 떠올라 코끝을 시리게 합니다.

훗날 그립던 외갓집에 다시 가게 되어 툇마루 끝자락에 앉아 그때까지 살아온 내 삶의 ‘세움’을 깨닫게 될까요?

‘그동안 나를 태우고 지향 없이 흘러가던 물결이 나를 또 다른 봇도랑의 개흙 위에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라고 깨달은 백양나무 곁가지처럼!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이 책에서 우린 깨닫게 됩니다.

삶의 이치를! 세상의 이치를!

어미 백양나무에게서 꺾여진 가녀린 곁가지에게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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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종교 문화
안점식 지음 / 죠이선교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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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종교 문화
진정한 성경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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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어떤 문화 안에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형성되며 특정한 문화 속에 전제된 관념이나 가치를 포함한다. 이처럼 세계관은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의도적으로 의식화하고 외현화하여 조직적으로 서술하면 철학이나 사상이 되어 그 세계관은 내면화되고 체질화가 된다. 즉 세계관은 前 과학적 단계이자 前 철학적 단계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배우는 기독교 세계관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외현화되고 조직화된 것으로 우리 안에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세계관보다 훨씬 폭넓고 치밀하며 체계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한다면 그것을 내면화하고 체질화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삶과 앎의 괴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는 말은 세계관 형성 또는 변화와 관련되어 있어 들음이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요 성경이 제시하는 개념과 범주, 논리를 반복적으로 듣고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물론 성경적 믿음이 형성되려면 성령의 역사하심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성경적 세계관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은 기본적으로 불가해하며 인간의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다.

세계관을 제공하는 것은 종교만이 아닌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도 있어 철학은 예전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긴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세계관을 제공한다고 말하기 어렵고 이데올로기는 행동강령을 제시하지만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행동강령으로 제시하여 매우 강력하긴 하지만 이젠 정치적으로는 남아있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이데올로기는 거의 종말로 이어져 소멸되어가 결국 셋 중에서 종교가 가장 강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으로 종교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뿐 아니라 행동강령을 제공하며, 종교 의식을 제공하고 있다.

즉 종교는 인간의 본성, 종교성에 뿌리를 박고 있어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이 부여하신 세계에 대한 사명이 제거되지 않는 한 종교는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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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세계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한국기독학생회와 같은 학원선교단체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세계관 운동은 기독교 지성 운동으로 많은 면에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웠지만 단지 지식 차원에서만 머물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조금 주춤해졌다. 그리고 그 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교 운동과 문화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철학보다 좀 더 포괄적인 ‘문화’ 차원에서 세계관을 조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으며 비호감 단체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다. 반기독교 사이트가 늘고 있고 개신교인 수는 이젠 더 이상 늘지 않고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추세로 가고 있어 이 현상의 원인을 한국 교회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 또한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 20%를 자랑하는 기독교 역사상 유래 없는 성장을 경험한 한국 교회가 왜 한국 사회에 별다른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변화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을까?

그것은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우치고 내면화된 성숙된 성도들을 양육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어 이 현상은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샤머니즘에 불교와 유교가 더해진 문화로 인해 기독교 역시 이 종교들의 세계관과 가치체계에 영향을 받고 있어 한국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고 있는 한 요인으로 『세계관 종교 문화』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성경적 세계관을 체질화하는 결정적 요인은 순종이다. 순종은 하나님 말씀을 체험케 하고,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시킨다.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 자신, 타인, 자연, 역사 등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세계 안의 존재와 올바른 관점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숙이며 참된 ‘신령함’의 기반이다.

따라서 세계관 운동은 한국 교회의 갱신과 성숙을 위한 체질 변화 운동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배포된 비성경적 세계관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비조직적이고 비체계적으로 그리스도인과 교회 안에 침투한 비성경적 세계관으로 한국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비성경적 세계관은 ‘능력’ 숭배와 그에 따른 권위주의와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향상시키려고만 하는 성공주의가 그중에 가장 큰 병폐로 이것은 지식 운동을 넘어서 갱신 운동, 생활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회 지도자가 세계관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먼저 교회 지도자가 성경적 세계관으로 체질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계속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질 것이며 교회 성장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 운동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세계관 종교 문화』를 쓴 저자는「세계관과 영적 전쟁」과「세계관을 분별하라」를 출간한 10년 후『세계관 종교 문화』저술해 종교와 문화, 세계관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첫째가 종교 신학 영역으로 종교와 문화의 발생, 종교의 기원과 위상, 문화명령과 타락 후 문화의 본질 등을 다루었고 둘째는 다양한 종교의 세계관이 다루는 핵심 주제와 비교하여 기독교 세계관의 독특성을 살펴보았으며 셋째 한국에 있는 종교들의 한국의 문화적 토양 형성 과정과 그러한 문화적 토양에 한국교회가 받는 영향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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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에 비판받는 것에 대해 본질을 잘못 짚고 착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세상은 원래 교회를 미워한다는 것으로. 예수께서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15:18)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되면 세상에 미움을 받는다. 세상에 거짓과 뇌물이 성행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정직하고 청렴하다면 미움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오늘날 제대로 미움 받고 있는가? 우리가 너무 정직하고 청렴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있는가? 오히려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고 세상적이어서 세상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미움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저자는 세계관 종교 문화』이 책을 통해 따끔하게 일침하고 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우리 안에 큰 확신이 있고(살전1:5)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온유와 겸손함으로 대답할 때(밷전3:15) 더욱 많은 사람이 복음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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