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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똥친 막대기(‘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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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그렇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우주의 기운과도 같은 불가항력적인 커다란 영향력 아래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때론 마구 휩쓸려 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내가 준비해 온 또는 살아왔던 것들의 패턴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려 가는 것 같아 낯설음과 혼란스러움의 두려움과 매서운 현실에 나 자신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어미 백양나무에게서 떨어져 나온 어린 백양나무 곁가지도 그랬습니다. 논에서 써레질을 하고 있던 첫 새끼를 밴 암소가 기차기적소리에 놀라 뜀박질하며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을 재희 아버지가 황급히 백양나무 곁가지를 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앙상한 백양나무 곁가지는 불현듯 닥쳐온 적응할 준비과정도 없이 꺾여진 혼란스러움에 행여 자신이 암소의 회초리가 되어 제대로 살지 못하고 말라 죽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양 나뭇가지는 궁금해 했던 재희의 집까지 어미 소와 같이 가게 되었지만 결국 걱정했던 염려가 현실로 다가와 재희의 종아리를 매섭게 때리는 재희 어머니의 회초리로 이용되고 말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 그런데 운명의 장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백양나무 곁가지에서 나무 막대기로, 다시 회초리에서 그리고 똥친 막대기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실낱 같은 희망이 속절없는 꿈이 되어버린 순식간에 벌어진 사단이었습니다. 참 허망하죠?
‘현기증이 나도록 하늘 높게 자란 어미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까치 부부가 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느새 알을 낳아 품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 알들에서 부화된 새끼들이 활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몰염치하고 성가신 존재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까치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한낱 나무 작대기가 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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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어미나무는 그런 배려도 할 줄 모릅니다. 어미나무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 또한 스스로의 능력으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을 안겨 줄 날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비극을 맞이할 준비만 갖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 또한 백양나무 곁가지처럼 작은 소망을 하나씩 품고 일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소망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인 양 우리네 가슴 속엔 저마다 각자의 소망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지요. 아마도 그것마저도 없다면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낯설고 매서운 세상에서 어미 품에서 벗어난 자식들은 어미마저도 자식의 모든 고통을 대신 해 줄 수 없는 현실을 그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메말라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우울증으로, 자살로, 또 다른 고통으로.
그래서 세상은 또 그렇게 비극적인 곳인 것만은 아닌 가 봅니다. 내 마음 속에 나 만의 믿음의 소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상은 아직은 살만한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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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칩 전에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어린 가지로 있을 때, 내 어미나무는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빨아올린 자양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공급해 주었습니다. 딱하게도 나는 그것을 당연한 줄로만 알았지 은혜인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이제야 어미나무의 희생적인 보살핌을 떠올리며 한없이 눈물짓는 딱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나는 어째서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숲 속의 동물들과 같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일까요.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을 이제 와서 원망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세상은 공평합니다. 어미가 자식을 잉태하고 낳아서 기르는 고통을 누가 알아줄까요. 어미는 당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알아달라고 세상에 외치지도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식의 고통이 자신의 죄로 인한 인고의 고통인양 자식의 눈물에 하염없이 아파하고 눈물지으며 당사자인 자식보다 더 아파합니다. 그래서 더 자식을 보듬어 안으려하고 당신의 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죽도록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지려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홀로 서기를 염원하며 넓은 세상으로 걱정 속에서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홀로 뒤켠에서 눈물짓습니다. 그것을 어찌 자식이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자식은 알게 됩니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어미의 은혜를, 희생을 훗날 자신의 고통 속에서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물론 어미의 고통만큼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어미와 자식의 끈끈한 연은 천륜으로 영원히 이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합니다.
그것을 세상의 이치를 어느 누가 알려줄까요? 학교에서 바른생활시간에 알려줄까요? 종교가 알려줄까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억지로 알려줄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우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순백 같은 삶을 얼룩져가면서 가슴에 피멍이 들기도 하면서 우린 알게 됩니다. 백양나무 곁가지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 할 장소에 도달한 것처럼 말입니다.
산골 초가산간 어미 소의 킁킁거리는 콧김처럼 알싸한 새벽안개, 그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따끈한 소 여물냄새, 밤새 타고 남은 아궁이 속의 타고 남은 땔감나무의 그을음 냄새 등이 곳곳에 묻어나는『‘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는 김주영 작가의 소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더불어 이슬비에 젖은 촉촉한 시골 길처럼 푸슬푸슬하지만 섬세한 수채화 같은 강산 그림과 잘 어우러져 읽는 내내 그리운 외갓집이 떠올라 코끝을 시리게 합니다.
훗날 그립던 외갓집에 다시 가게 되어 툇마루 끝자락에 앉아 그때까지 살아온 내 삶의 ‘세움’을 깨닫게 될까요?
‘그동안 나를 태우고 지향 없이 흘러가던 물결이 나를 또 다른 봇도랑의 개흙 위에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라고 깨달은 백양나무 곁가지처럼!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이 책에서 우린 깨닫게 됩니다.
삶의 이치를! 세상의 이치를!
어미 백양나무에게서 꺾여진 가녀린 곁가지에게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