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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史記는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사마천이 편찬한 책으로 그 분량부터 방대하여 권수만 130권이고 글자 수는 52만 6,500자에 이른다. 이 130권을 체제로 분류하자면 「本記」12권「表」10권「書」8권「世家」30권「列傳」70권 등으로 나누어져 있어 이런 역사서 체제를 紀傳體라고 부른다.
紀傳體란 원래 제왕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저술한 「本記」와 개인의 활동을 서술한「列傳」이 복합된 형식을 일컫는데 실제 史記에는 이밖에도 「表」「世家」「書」 모두 5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史記는 전체적으로 기전체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후 중국 역대 왕조사의 편찬에 채용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전체란 제왕의 즉위 연대에 따라 기록하는 단순한 역사편찬 방식이 아니라, 통치자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속한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등을 분류, 서술하여 왕조 전체의 체제를 이해하기에 편한 역사서술로서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역사적 시각의 다양성까지 표현할 수 있어 생동감 있는 역사를 재현할 수 있다.
本記 황제에 관한 기록으로 역대 최고의 집권 인물, 주로 제왕의 전기로서 사건을 연대별로 연관 지어 기술했고
世家 황제를 보필했던 인물, 즉 제후에 관한 기록으로 봉건제후국이나 개국 공신과 특수하게 영향을 미친 인물의 전기로 나라별 역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表 연표로 어느 해에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엑셀 프로그램처럼 세로에는 연대, 가로에는 인명을 배열하여 연도별 관직 임명과 파면, 좌천 등을 기록하여 표의 활용으로 기전체가 지닐 수 있는 복잡한 사건들의 분산을 막을 수 있었고, 표를 통해서 역사의 변화를 짤막한 서문으로 대신할 수 있었던 사마천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書 국가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이라 할 수 있는데 조정의 전장, 제도, 천문, 지리, 예술, 경제 등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사마천이 생각한 역사는 단순한 권력투쟁과 왕조의 흥망성쇠 과정뿐만 아니라 제왕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수단이 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列傳 사기의 가장 뒤에 있으며 가장 긴 부분으로 사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유명 인물만을 다루지 않고 열전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에 관한 기록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 경포, 팽월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세가'에 두지 않고 '열전'으로 내려 보냈다는 점은 '열전'은 단순히 개인의 생애를 소개하려는 것보다 '본기', '세가', '표'에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과 '서'에 서술된 문화 전반의 변천을 그 주제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하였고 역사 속에서의 인간보다는 인간의 행동과 의지를 통한 역사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설정된 것이었다.
여기서 열전 70권 가운데 맨 마지막 권은 「太史公自序」로 사마천 자신의 가계와 史記의 나머지 129권에 대한 요약이 주요 내용으로 8권의 書, 10권의 表를 합한 18권을 제외한 112권이 모두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즉 史記의 약 86퍼센트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사마천의 史記는 권력자나 제왕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실고 있다. 깡패도 있고 자객도 있고 코미디언, 동성연애자 등 온갖 부류의 인간 군상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질, 세상인심을 비롯한 인간 세상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력이라는 보물을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세태의 추악한 면도 접하게 된다.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한계와 기쁨, 슬픔, 기대, 원망, 사랑, 질투, 분노, 후회, 회한 같은 복잡한 감정의 한 면도 놓치지 않은 이야기가 '역사'라는 저류위에 펼쳐지는 것이 바로 史記인 것이다.
사마천이 史記를 쓰게 된 연유 중 한 가지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이 컸다. 사마담은 어릴 때부터 박학다식했던 아들에게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길러주기 위해 사마천이 20세 되던 해에 여행을 권유했다. 그 때의 그 경험이 사마천이 史記를 저술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마천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역사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게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교육이 사마천을 역사가의 자질을 제대로 갖춘 인물로 성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기원전 97년, 사마천이 49세의 나이에 이릉이 흉노에 포로로 잡혀 항복하고 만 사건에 대해 이릉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 군의 작전 실패라는 점을 지적하고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한 것이며 훌륭한 장수라고 변호했다가 한무제를 분노케 하여 목숨 값을 내놓던지 자신의 남성을 자르는 궁형의 형벌을 택해야 하는 상황 중에서 궁형을 자청하게 된다.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치욕의 형벌을 자청한 이유는 완성하지 못한 史記 때문이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을 따르고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궁형을 자청하여 환관이 되었다. 부형(腐刑)이라 불리는 궁형은 사람이 당하는 모욕가운데 가장 심한 형벌이었다.
사마천은 역사가임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사마천의 출생연도 또한 판본의 문제로 정확치 않아 사마천이 존경하고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겨 놓은 곽해의 기록에 의해 기원전 145년 설을 추측할 뿐이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사마천은 자신에 대한 기록도 거의 남기지 않았고 같은 죽음일지라도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을 택했다. 궁형의 치욕으로 이미 죽은 육신이지만 정신만은 오롯이 살아 청사에 길이 빛날 사서를 쓰겠다는 결심이 '대장부 사마천의 태산과 같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史記를 저술하면서 영웅의 후손을 만나보거나 고향으로 직접 찾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역사에 기록하는 등 그의 史記에는 사마천의 현장을 탐사한 생생한 취재가 기록되어 있다. 그 영향일까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에서도 김영수 씨의 중국을 직접 오가며 사마천의 흔적들을 생생하게 취재를 하고 더듬은 흔적이 가득하다.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는 20년 이상 史記를 연구해온 김영수 씨가 1997년 32시간 EBS 방송에서 강의한 프로그램 강의 녹취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거친 현장 강의를 간결한 문체로 다듬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리고 史記가 어려워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 멀리했던 史記를 초보자도 쉽게 맛볼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하게 풀어냈다. 삼국지보다 세상사를 논한 것이 더 탁월하다는 史記에 대해 저자 김영수 씨는 책을 발간한 후 오마이 뉴스의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지 백번보다 사마천 한번 읽는 게 낫다.'
'삼국지를 10번은 읽어야 세상사를 논할 수 있다"는 저잣거리의 수사를 품에 안고 살기를 20여년 '사마천'이라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의 역사서 <사기열전>으로 한문공부를 시작했다. 충격적인 인물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삼국지 따위를 버리고 사마천에 빠져들었다. 특히 지금도 흉노열전과 화식열전, 골계열전은 무척 현대적이며 세련미가 있다. 2000년도 전의 인물인데 말이다.
이런 매력적인 인물에 미친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 사마천 연구자가 우리나라만큼 빈약한 곳이 또 있을까. 국내의 사마천 책은 번역서가 대부분이다. 김영수 선생에 의하면 그것도 사기열전에만 편중되어 있어서 사마천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마천은 꿈과 희망과 이상의 기반인 믿음을 상실한 상태를 곧 ‘난세’라고 하였으며, 김영수 씨 또한 오늘날을 ‘난세’로 진단해 요즘의 리더십 부재와 꿈과 희망과 이상의 부재, 인재부재 등 부정직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혼란으로 가득한 현재의 난세를 사마천의 史記를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를 통해 사마천이 분석하고 인식한 개혁의 단계와 의미를 따라가 제도개혁과 시스템을 바꾸는 등의 춘추전국시대의 사례와 항우와 유방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교분석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든 무명의 필부든 유방과 항우를 통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교훈과 영감을 인간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난세 극복을 위한 처방을 찾고 말하고 있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살려거든 덕행을 베풀라"
"권력이란 힘을 나누고 덜어내어 균형을 잡는 행위다. 힘을 분산시키고 나누는 것이 권력이지 움켜쥐고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는 권력의 이런 본질을 잘 이해하고 힘을 나눌 줄 알았던 리더만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 저자의 끝말이 세상 돌아감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