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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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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서평>
'길'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련한 동경으로 한껏 부풀어 발가락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단어이다. 길을 떠올리면 인간으로서 갖지 못하는 더듬이가 생겨나고, 도시인으로 퇴화된 관절에 생기가 가득차 축지법이라도 가능할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걷고싶은 길>은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왠지 이 책과 함께하면 그동안 무뎌졌던 걷기본능이 충만해지면서 마음으로부터 소요하는 기쁨이 가득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보여행가의 걷기 여행은 내가 상상했던 수준이 무색하게 씩씩한 행군과 탐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유를 잡고자 늘어진 마음을 조금 끌어당기지 않으면 이 발랄한 여행가의 전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작 본인은 최악의 길치에 지도를 잘 볼줄 모르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너스레를 떨지만 2년 동안 9번이나 일본을 넘나들은 열정과 탐색지에 대한 사랑은 마치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인양 거칠 줄을 몰랐다. 이에 더해 순간을 포착해 내는 사진 솜씨와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여행을 더욱 풍성히 만드는 재주는 타고난 여행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녀임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대도시들과 관광지를 벗어나 보다 깊은 멋과 맛으로 이어가는 <일본의 걷고싶은 길>은 이렇게 그녀만의 유쾌함과 훈훈함으로 가득하며, 그 가운데 자연과 생태계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사뭇 진지한 시간들을 제공한다. 

 

<1권 서평>
이 책의 1권은 홋카이도와 혼슈를 중심으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이동한다. 현 시점인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봄에 이르는 여정은 일본의 자연풍경을 위주로 진행되간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홋카이도의 산행은 앞으로의 여정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음을 예고하며 신비로운 안개와 더불어 서늘하고 시원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름도 유명한 후지산, 비밀화원, 라벤더가 흐드러진 히노데 공원을 지나다 보면 '일본의 자연은 이렇구나...'하는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일본의 산책로들은 전혀 인공적인 느낌이 없어 자연을 존중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놀랍고도 부러웠다.  

혼슈는 지천에 하늘과 절벽들로 가득한 풍경으로 시작되어 쓰미고같은 옛 마을들로 이어진다. 홋카이도부터 여름의 풍경과 함께 산행을 해 온 탓인지 단아한 옛 마을에서의 가을 걷기는 휴식같이 다가온다. 곳곳이 등장하는 단풍의 눈부신 색채와 철이른 눈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덧 8월의 더위가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이후에 방문하는 슈가쿠인 리큐, 가쓰라 리큐는 일본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풍경들로 일본의 전통문화를 탐색할 수 있었고, 일본을 대표하는 벚꽃 가득한 사진들, 친구들과의 계단 콘서트 이야기들과 함께 봄볕만큼 따사로운 온정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1권의 많은 부분은 산행과 산책로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며, 일본의 지인들과 함께한 사연들, 방수바지도 없이 험준한 다이쎄스 산에 올라가겠다는 저자의 엉뚱한 열정들은 어디에서나 돌발적으로 계속된다. 그리고 이 책의 첫머리에 등장했던 한 구절의 명언을 다시금 떠올리며, 여기에 묘사된 삶을 이뤄나가는 저자의 한걸음 한걸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장 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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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살고 싶은 곳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1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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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편리하고 유연한 세상, 지구촌 곳곳이 연결되고 버튼만 누르면 먼 곳도 지척인양 이모저모를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의 발달과 삶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참다운 기쁨보다는 단절감이 더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근대의 이상이 만들어 놓은 도시는 생산성이 아닌 거주성의 측면에서 과연 지향점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반성함으로 거주지에 대한 우리의 무심함을 일깨운다.

도시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개개인의 도시가 인간의 목적을 위해 계획되기보다는 거대한 망치의 반복적인 두드림에 의해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수준일 것이 확실하다. - 그것은 기술과 응용력의 망치이며 자국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경제 이득만을 유일하게 갈구하는 두드림이다. -Babara Ward <인간의 집> (p.27)

'투자가치', '부의 축적', '교육의 기회'라는 잘못된 택지 기준에 경종을 울리는 저자는 다시금 옛 <택리지>에서 '복거(卜居)'의 의미를 소환한다. 복거(卜居)란 살만한 곳을 점쳐서 고른다는 뜻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우선순위로 하는 자연순리적 택지방식이며, 우리의 국토를 한걸음 한걸음 밟아 살고픈 곳에 대한 이상(理想)을 이어나가는 저자의 마음에도 이러한 의지가 담겨있다.

한평생 살고픈 곳을 찾아 조선 팔도를 떠돌았던 이중환을 좇아 그의 <택리지> 속의 명당을 순례하는 이 여행은 그의 택지 기준인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에 얽힌 옛 이야기와 아름다운 국토의 모습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국토예찬이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땅과 사람, 자연과 사람의 관계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국토개발과 인재양성에 깨달음을 주며,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생동감 넘치는 화보를 따라 시냇가와 강가의 마을, 교역이 풍부한 항구마을, 명당 중의 명당을 가려 택한 서원과 사대부의 집을 소요하다 보면 과연 이중환은 이 아름다운 곳 중 어떤 곳을 가장 살고픈 곳으로 꼽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중환이 평생 살고픈 곳으로 꼽은 삶의 정착지는 없었다. 그는 문경, 상주, 괴산 일대를 가장 좋아하여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그럼에도 '숨어 살기엔 괜찮은 지역이지만 사람이 오래 살기에는 마땅하지 않다'고 평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삶과 무관하지 않은 탓이며 정권의 싸움에서 물러나야 했기에 오히려 이상향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 쉽사리 살고픈 곳이라 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그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헤맨 것도 진정 거처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이상적인 국가와 그 백성으로서의 삶을 구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쉽게도 그는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사실과 그 완벽함은 사람들이 만들어가야한다는 교훈만을 남기고 있지만 이것은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상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반추하게 하는 명언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웰빙과 지속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18세기 <택리지>의 의미를 되새겨 살기 좋은 국토와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삶의 가치를 제시하며, 더 나아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를 모색하는 인문학적 후원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 좌측에서부터 화룡대, 영주 선비촌, 충청도 보령의 모습
* 화룡대는 명당 중 명당이라 일컷는 정자 중 하나이며, 영주 선비촌에는 세상 자체가 집이라는  
  
허균의 호방한 생각이 엿보이고, 보령은 사대부들이 대를 이어 살며 경제력이 풍성했던 곳이다
* 중간 중간 화룡대나 널찍한 벌판과 같이 한숨을 돌릴만한 장면이 나타날때면 정말 휴식이 되곤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의 여정은 밀도있는 강행군에 해당되며 그 느낌이 생생히 전달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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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가다 - 20인의 건축 거장, 삶과 건축을 말하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현암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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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하면 왠지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느껴진다. 사색에 빠진듯 심각한 표정을 한 건축가들도 그러려니와, 약속이나 한 듯 검은 표지가 주류를 이루는 건축 서적들도 난해함을 자랑하며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좀 더 대중에게 친숙히 다가 가려는 책들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나는 건축가다> 역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친근한 책이었다.

국제 포럼이나 기타 행사가 아니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건축의 거장들. 이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더욱이 하나의 주제를 토론하는 것이 아닌, 건축가들의 사소한 일상부터 광범위한 영역의 생각까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는 건축 거장들의 숨겨진 개성과 세계관이 뭍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동시대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강렬하고 위트가 넘치는 자하 하디드, 쿨하면서 논리정연한 렘 쿨하스, 자유롭고 발랄한 그렉 린, 신비스럽고 과묵한 피터 춤토르까지. 17명의 건축 거장들은 각각의 독특함과 관록을 지녔으면서도 공통적으로 열정과 이상으로 가득찬 젊은이 같다. 또한 근대 건축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건축 인생이 각 사람마다 빛났다.
 

그러나 다양한 질문이 주도하는 가운데서도 건축의 예술적 측면에 대한 견해, 건축적 이상 그리고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들은 일관되게 반영되었는데, 인터뷰에 소개된 건축가들 중 상당수가 고령이며 유럽인이라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에 특별한 공감대는 없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사건들이 건축가들에게 미친 영향과 건축의 사회성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건축의 예술화와 상업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금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가장 감명깊고도 이색적이었던 인터뷰인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와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소개된 건축가 중 최고령으로 100세가 넘는 건축계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근대 최고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곁에서 일하며 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벗어날 수 있었던 행운아이다. 바우하우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건축의 변화와 성장에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그가 마음속에 간직했던 말은 ’건축을 전체의 일부로 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건축의 예술성 혹은 조형성만을 바라보며 시대의 철학에 발맞추기 급급한 현대의 건축인들에게 보다 넓고 겸손한 시각을 갖도록 깨우침을 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건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친구와 가족이다’라는 인터뷰 제목도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건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정한 ’나’를 알게 되며 그때야 비로소 건축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는 건축가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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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 지식다큐 VS 01
최경원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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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에 있어 동서양의 대표자인 르 코르뷔지에와 안도 다다오를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남의 방식에 있어 개별적이고, 직선적으로 대응하는 느낌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진 것처럼 순환하고 흐르는 느낌으로 엮어나갔기에 담담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서양 모더니즘과 일본 전통미를 중심으로 두 건축가의 이상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글을 구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도와 코르뷔지에는 동시대를 살았지만,단 한번도 조우한 적은 없었다. 안도가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통해 건축을 독학하며 그의 역작인 롱샹 성당을 답사하러 갔을 때, 코르뷔지에는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건축에는 인간과 공간에 대한 추구가 깊게 배어있다. 이는 단지 서구 건축의 거장들이 일본건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안도는 그 거장 중 코르뷔지에의 작품들을 본으로 삼아 건축 공부를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모더니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감지할 수 있는 대가로서의 유전자를 나누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건축 가쓰라리큐에 감탄하여 그들의 ’차경’기법을 연구하고 자신의 건축에 시도한 이로는 타우트가 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역시 낙수장을 통해 일본 건축에서 배운 것들을 시도했다. 하지만 코르뷔지에처럼 ’공간’을 염두에 두고 실험적인 시도를 한 이는 없었다. 안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선배인 겐조를 비롯 다른 일본 건축가들도 모더니즘에 전통건축을 녹여나가는 데 있어 심혈을 기울였으나 안도만큼 파격적인 아이디어와 형태를 초월하여 공간을 만들어 낸 이는 없었다.

또한 이 책은 안도와 코르뷔지에의 개별적인 작품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이러한 공간의 구현, 인간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요목조목 친절히 보여주기에 공간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즐거움을 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현대 국립미술관을 찬찬히 감상하는 수준, 아니 그 이상의 심도로 공간을 풀어나가고 있다.

바라만 보기에도 아름다운 롱샹 성당, 찬디가르, 빛의 교회, 나무 박물관...이 건물의 공간속에 숨어있는 깊은 뜻과 생성 원리를 찬찬히 볼 수 있는 책들이 몇 권이나 될까? 대중을 위한 입문서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논문에 가까운 전공서도 아닌 것이 동서양 근대 건축사와 작품론까지 참 탄탄하게 갖췄다고 할 수있다.

더욱이 이 책은 단순히 두 거장의 작품 비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안도 타다오가 성공적으로 현대화한 고전적 가치들 바로 건물의 장소성, 공간의 스토리, 시적 공간, 자연 실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동시에 우리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토리, 시적 공간, 자연 실현의 요소들을 찾아 청암정, 선운사, 소쇄원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우리 건축계에 대한 애정어린 질타일지도...결국, 이 책의 안도와 코르뷔지에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건축의 당면 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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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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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는 그 서문부터 매우 냉철하고 진지하게 시작한다. 저자는 이 책이 세계 유명 건축을 순례하는 일반 건축 기행문이 아님을 단호히 표명하며, 우리나라 건축계 대부로서 향락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건축의 현실을 일깨우고, 더불어 공학-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건축을 인문학적 바탕위에 견고히 하려는 의지를 담아 이 여행의 출사표를 던진다. 즉, 단순히 건축체험의 즐거움을 일반대중과 공유하려는 글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건축세계를 구축케 했던 거장들의 정신와 시대를 돌아보며 오늘의 건축계에서 좌표로 삼을 무언가를 되짚기 위한 사유의 기록들이다.

저자가 가장 먼저 찾은 거장은 아돌프 루스다. 그는 <장식과 범죄>라는 저서로 건축계에 큰 파란을 몰고왔을뿐 아니라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왕궁의 건너편에 맨벽을 드러낸 ’로스 하우스’로 맞서 권위에 도전했던 용감무모한 건축가였다. 이렇게 로스의 일화로 본문을 시작하는 까닭은 현재 광란으로 치닫는 우리 건축에 일침을 가하고 근대의 기본부터 돌아보게 하려는 의도가 내재된 듯하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로스를 찾는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도 아련히 묻어있다.

로스의 건축으로부터 무감각해진 건축정신에 각성을 일깨운 후 발걸음은 완벽한 이상주의 건축을 실현했던 주세페 테라니와 파시스트의 집을 지나 모더니즘의 최고봉인 르 코르뷔제에 이른다. 서구 주택의 교과서처럼 되어버린 빌라 사보아에서는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사고방식을 표출했던 르 코르뷔제가 생애 마지막 즈음 찬디가르 신도시의 그 막대한 광장을 통해 ’공존’의 이상도시로 그 지경을 넓혔음을 볼 수 있는데, 건축가가 성장해감에 따라 '나'에서 '우리'로, 자아중심에서 이타지향으로 그 건축물 또한 성숙해가는 모습에서 문득 숙연해진다.

공유를 가치로 둔 베를린 필하모니 극장, 근대건축의 원형이라고 자신있게 명명하는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 칸과 바라간의 일화(칸이 고심했던 중정설계에 대해 바라간이 모두 비우라고 조언했던 일화)로 유명한 ’비움의 마당’을 자랑하는 소크 연구소 등에 이르기까지...건축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주변을 소거해가는 거장들과 이를 추적해가는 저자의 사유과정에서 다시금 근대건축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으며, 또한 옛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승효상을 가이드로 했기에 얻을 수 있는 특권일 듯 하다.

승효상은 ’침묵’에 대해 매우 집착적이다. 이 책에도 침묵이 종종 언급되며 좋아하는 책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란다. 그래서인지 칸, 바라간, 레버렌츠와 같은 침묵의 건축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시구르트 레버렌츠이다. 별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대다수가 교회 건축이지만 나는 칸이나 바라간보다 레버렌츠의 건축에서 더 매혹적인 침묵을 느낀다. 특히 그의 세인트 피트리 교회는 침묵 가운데 만물의 교차와 흡수를 드러내는 놀라운 건축언어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쉽게도 세인트 피트리 교회를 볼 수는 없지만 대신 우드랜드 공동묘지를 통해 유사한 침묵의 정수를 맛볼 수 있었고,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그의 작품이 마지막에 실려있다는 것도 괜시리 뜻깊었다.

어쩌면 저자는 마지막에 레버렌츠를 만남으로 침묵의 건축이 갖는 가능성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먼저 시작했듯 이제는 인문학적 사유를 따라 건축의 깊이를 더해가는 좁은 길에 동참할 시기인 것 같다. <건축, 사유의 기호>는 대중을 위한 건축에세이가 아니기에 친근한 글맛과 같은 요소는 없지만(그렇다고 딱딱하지는 않다)건축가 승효상의 본(本)이 되는 사색과 현대에서 희미해져가는 근대의 정신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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