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신 택리지 : 살고 싶은 곳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1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다 편리하고 유연한 세상, 지구촌 곳곳이 연결되고 버튼만 누르면 먼 곳도 지척인양 이모저모를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의 발달과 삶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참다운 기쁨보다는 단절감이 더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근대의 이상이 만들어 놓은 도시는 생산성이 아닌 거주성의 측면에서 과연 지향점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반성함으로 거주지에 대한 우리의 무심함을 일깨운다.

도시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개개인의 도시가 인간의 목적을 위해 계획되기보다는 거대한 망치의 반복적인 두드림에 의해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수준일 것이 확실하다. - 그것은 기술과 응용력의 망치이며 자국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경제 이득만을 유일하게 갈구하는 두드림이다. -Babara Ward <인간의 집> (p.27)

'투자가치', '부의 축적', '교육의 기회'라는 잘못된 택지 기준에 경종을 울리는 저자는 다시금 옛 <택리지>에서 '복거(卜居)'의 의미를 소환한다. 복거(卜居)란 살만한 곳을 점쳐서 고른다는 뜻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우선순위로 하는 자연순리적 택지방식이며, 우리의 국토를 한걸음 한걸음 밟아 살고픈 곳에 대한 이상(理想)을 이어나가는 저자의 마음에도 이러한 의지가 담겨있다.

한평생 살고픈 곳을 찾아 조선 팔도를 떠돌았던 이중환을 좇아 그의 <택리지> 속의 명당을 순례하는 이 여행은 그의 택지 기준인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에 얽힌 옛 이야기와 아름다운 국토의 모습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국토예찬이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땅과 사람, 자연과 사람의 관계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국토개발과 인재양성에 깨달음을 주며,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생동감 넘치는 화보를 따라 시냇가와 강가의 마을, 교역이 풍부한 항구마을, 명당 중의 명당을 가려 택한 서원과 사대부의 집을 소요하다 보면 과연 이중환은 이 아름다운 곳 중 어떤 곳을 가장 살고픈 곳으로 꼽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중환이 평생 살고픈 곳으로 꼽은 삶의 정착지는 없었다. 그는 문경, 상주, 괴산 일대를 가장 좋아하여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그럼에도 '숨어 살기엔 괜찮은 지역이지만 사람이 오래 살기에는 마땅하지 않다'고 평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삶과 무관하지 않은 탓이며 정권의 싸움에서 물러나야 했기에 오히려 이상향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 쉽사리 살고픈 곳이라 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그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헤맨 것도 진정 거처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이상적인 국가와 그 백성으로서의 삶을 구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쉽게도 그는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사실과 그 완벽함은 사람들이 만들어가야한다는 교훈만을 남기고 있지만 이것은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상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반추하게 하는 명언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웰빙과 지속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18세기 <택리지>의 의미를 되새겨 살기 좋은 국토와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삶의 가치를 제시하며, 더 나아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를 모색하는 인문학적 후원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 좌측에서부터 화룡대, 영주 선비촌, 충청도 보령의 모습
* 화룡대는 명당 중 명당이라 일컷는 정자 중 하나이며, 영주 선비촌에는 세상 자체가 집이라는  
  
허균의 호방한 생각이 엿보이고, 보령은 사대부들이 대를 이어 살며 경제력이 풍성했던 곳이다
* 중간 중간 화룡대나 널찍한 벌판과 같이 한숨을 돌릴만한 장면이 나타날때면 정말 휴식이 되곤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의 여정은 밀도있는 강행군에 해당되며 그 느낌이 생생히 전달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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