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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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는 그 서문부터 매우 냉철하고 진지하게 시작한다. 저자는 이 책이 세계 유명 건축을 순례하는 일반 건축 기행문이 아님을 단호히 표명하며, 우리나라 건축계 대부로서 향락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건축의 현실을 일깨우고, 더불어 공학-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건축을 인문학적 바탕위에 견고히 하려는 의지를 담아 이 여행의 출사표를 던진다. 즉, 단순히 건축체험의 즐거움을 일반대중과 공유하려는 글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건축세계를 구축케 했던 거장들의 정신와 시대를 돌아보며 오늘의 건축계에서 좌표로 삼을 무언가를 되짚기 위한 사유의 기록들이다.

저자가 가장 먼저 찾은 거장은 아돌프 루스다. 그는 <장식과 범죄>라는 저서로 건축계에 큰 파란을 몰고왔을뿐 아니라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왕궁의 건너편에 맨벽을 드러낸 ’로스 하우스’로 맞서 권위에 도전했던 용감무모한 건축가였다. 이렇게 로스의 일화로 본문을 시작하는 까닭은 현재 광란으로 치닫는 우리 건축에 일침을 가하고 근대의 기본부터 돌아보게 하려는 의도가 내재된 듯하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로스를 찾는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도 아련히 묻어있다.

로스의 건축으로부터 무감각해진 건축정신에 각성을 일깨운 후 발걸음은 완벽한 이상주의 건축을 실현했던 주세페 테라니와 파시스트의 집을 지나 모더니즘의 최고봉인 르 코르뷔제에 이른다. 서구 주택의 교과서처럼 되어버린 빌라 사보아에서는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사고방식을 표출했던 르 코르뷔제가 생애 마지막 즈음 찬디가르 신도시의 그 막대한 광장을 통해 ’공존’의 이상도시로 그 지경을 넓혔음을 볼 수 있는데, 건축가가 성장해감에 따라 '나'에서 '우리'로, 자아중심에서 이타지향으로 그 건축물 또한 성숙해가는 모습에서 문득 숙연해진다.

공유를 가치로 둔 베를린 필하모니 극장, 근대건축의 원형이라고 자신있게 명명하는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 칸과 바라간의 일화(칸이 고심했던 중정설계에 대해 바라간이 모두 비우라고 조언했던 일화)로 유명한 ’비움의 마당’을 자랑하는 소크 연구소 등에 이르기까지...건축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주변을 소거해가는 거장들과 이를 추적해가는 저자의 사유과정에서 다시금 근대건축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으며, 또한 옛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승효상을 가이드로 했기에 얻을 수 있는 특권일 듯 하다.

승효상은 ’침묵’에 대해 매우 집착적이다. 이 책에도 침묵이 종종 언급되며 좋아하는 책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란다. 그래서인지 칸, 바라간, 레버렌츠와 같은 침묵의 건축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시구르트 레버렌츠이다. 별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대다수가 교회 건축이지만 나는 칸이나 바라간보다 레버렌츠의 건축에서 더 매혹적인 침묵을 느낀다. 특히 그의 세인트 피트리 교회는 침묵 가운데 만물의 교차와 흡수를 드러내는 놀라운 건축언어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쉽게도 세인트 피트리 교회를 볼 수는 없지만 대신 우드랜드 공동묘지를 통해 유사한 침묵의 정수를 맛볼 수 있었고,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그의 작품이 마지막에 실려있다는 것도 괜시리 뜻깊었다.

어쩌면 저자는 마지막에 레버렌츠를 만남으로 침묵의 건축이 갖는 가능성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먼저 시작했듯 이제는 인문학적 사유를 따라 건축의 깊이를 더해가는 좁은 길에 동참할 시기인 것 같다. <건축, 사유의 기호>는 대중을 위한 건축에세이가 아니기에 친근한 글맛과 같은 요소는 없지만(그렇다고 딱딱하지는 않다)건축가 승효상의 본(本)이 되는 사색과 현대에서 희미해져가는 근대의 정신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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