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축가다 - 20인의 건축 거장, 삶과 건축을 말하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현암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건축이라하면 왠지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느껴진다. 사색에 빠진듯 심각한 표정을 한 건축가들도 그러려니와, 약속이나 한 듯 검은 표지가 주류를 이루는 건축 서적들도 난해함을 자랑하며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좀 더 대중에게 친숙히 다가 가려는 책들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나는 건축가다> 역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친근한 책이었다.

국제 포럼이나 기타 행사가 아니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건축의 거장들. 이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더욱이 하나의 주제를 토론하는 것이 아닌, 건축가들의 사소한 일상부터 광범위한 영역의 생각까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는 건축 거장들의 숨겨진 개성과 세계관이 뭍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동시대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강렬하고 위트가 넘치는 자하 하디드, 쿨하면서 논리정연한 렘 쿨하스, 자유롭고 발랄한 그렉 린, 신비스럽고 과묵한 피터 춤토르까지. 17명의 건축 거장들은 각각의 독특함과 관록을 지녔으면서도 공통적으로 열정과 이상으로 가득찬 젊은이 같다. 또한 근대 건축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건축 인생이 각 사람마다 빛났다.
 

그러나 다양한 질문이 주도하는 가운데서도 건축의 예술적 측면에 대한 견해, 건축적 이상 그리고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들은 일관되게 반영되었는데, 인터뷰에 소개된 건축가들 중 상당수가 고령이며 유럽인이라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에 특별한 공감대는 없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사건들이 건축가들에게 미친 영향과 건축의 사회성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건축의 예술화와 상업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금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가장 감명깊고도 이색적이었던 인터뷰인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와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소개된 건축가 중 최고령으로 100세가 넘는 건축계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근대 최고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곁에서 일하며 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벗어날 수 있었던 행운아이다. 바우하우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건축의 변화와 성장에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그가 마음속에 간직했던 말은 ’건축을 전체의 일부로 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건축의 예술성 혹은 조형성만을 바라보며 시대의 철학에 발맞추기 급급한 현대의 건축인들에게 보다 넓고 겸손한 시각을 갖도록 깨우침을 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건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친구와 가족이다’라는 인터뷰 제목도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건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정한 ’나’를 알게 되며 그때야 비로소 건축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는 건축가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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