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의 독서는 오락이었다. 스토리 탐독.. 뒷이야기가 궁금해 잠을 미루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 중,고교 시절에는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교과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책을 읽었다. 데미안의 말도 싱클레어의 행동도 이해불가였다.

반듯하게 난 길을 따라 한 눈 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를 찾아가는 방황의 시간은 없었다. 십대의 방황이 무엇인지 잘 몰랐으며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표식이 없었다.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최선이라 여기고 살았다. 의문을 갖지 않았고 온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나를 깊이 묻어버린 꼴이랄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용기는 없다. 가진 것들을 다 내어놓고 나를 찾으러 가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언제가 허무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질문을 한다. 상처나지 않게 조금씩 나를 꺼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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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갈 때 꼭 책을 가져간다.
가져갈 책을 고르는 것은 여행상대를 고르는 것만큼 어렵다. 먼저 너무 두꺼우면 부피와 무게 때문에 힘들고 너무 얇으면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부피와 무게 때문에 얇고 현학적인 책을 가져가면 여행 중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다.

오랫만에 완벽한 여행친구를 찾았다. 햄릿은 얇으면서도 재미있고 극본의 특성 상 굵직한 대사들로 여러번 읽고 싶은 책이다. 여러번 읽어도 매번 새로운 구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상상하는 재미 또한 더해진다. 극장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 그때의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까 생각하다보면 생생함이 더해진다.

여행에 가져갈 책도 골랐는데,
코로나 때문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너무 맥빠져도 안 되니까, 자신의 분별력을 교사로삼으라고, 행위를 대사에, 대사를 행위에 맞추게,

자연스런 절도를 넘어서지 않겠다는 특별사항을 지키면서. 왜냐하면 무슨 일이든 도를 넘어서면, 연극의 목적에서 멀어지는 법인데, 그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과거에나 현재에나, 말하자면 본성에 거울을 비춰주는 격이니, 미덕에겐 자기 몸매를, 경멸에겐 자기 꼴을, 바로 이 시대와 이 시절은 그 형체와생김새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일이야.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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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고뇌는 주인공이 놓인 상황의 차이일 뿐 요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놀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차원에서의 놀람이었다. 그리 오래전 소설도 아니건만 주인공의 고뇌에 감정이입이 몹시 힘들었다.(1914년작) 아직도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랑도 우정도 택하지 못한 바보같은 남자..
후반부로 갈수록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일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맞아떨어지자 더 재미없어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쓴 작가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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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할아버지집에 가면 거실의 벽면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옹이 진 나무로 되어 있었다. 같은 무늬가 하나도 없던 옹이들을 하나씩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른들 눈에는 벽보며 멍때리는 걸로 보였겠지.

쇼(Bernard Shaw)는 이렇게 말했다.
"집짐승이 살아 있는 동안 양치기에서 푸줏간 주인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짐승의 하인일 뿐이며, 나중에는 집짐승의 사형 집행인이 된다."
- P40

"나무가 가진 자연의 빛깔과 결은 어떤 예술도 만들 수 없는 풍성함과단순함을 집 안에 가져다 준다. 우리 눈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가짜가아니라 진짜 물건이다. 우리 눈은 치장하지 않은 나무가 갖는 아름다움에 너무나 즐거워한다. 페인트 칠을 한 표면은 무미 건조한 표면이다. 하지만 나뭇결과 그 무늬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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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重讀)을 해도 질리지 않는 책이다.
기구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상처에 대한 슬픔은 중독처럼 짙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과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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