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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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은 마음산책 2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사 대표 정은숙이 문인 스무 명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표지에 적힌 작가들의 이름을 보는데 그리움이 밀려왔다. 한때 열렬하게 추종하며 읽던 작가들의 이름. 신간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곤 했다. 책이 집에 점령 당하는 꼴이 싫어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탔다. 그 덕에 책을 사는 횟수가 줄었다. 아무래도 전자책은 신간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 나중에 전자책으로 사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곤 해서 예전만큼 신간을 빠르게 사서 읽는 부지런한 독자의 길에서 멀어졌다.


마음산책은 애정 하는 작가들의 산문집이 수시로 나와서 좋아하는 출판사다. 짧은 소설 시리즈와 말 시리즈도 되도록이면 찾아서 읽곤 한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충격적이게 좋아서 두 권을 샀다. 책이 두꺼워서 한 권은 반으로 쪼개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려고. 나머지 한 권은 소장용으로.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으며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되었다.


시인, 소설가, 번역가를 만나는데 그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작가의 사인, 작가가 운동화를 받아든 순간을 포착한 사진, 정은숙이 쓴 작가에 대한 단상으로 인터뷰는 시작한다. 본질 보다 주변의 곁가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무슨 운동화를 선물했을까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 스타일의 운동화는 손보미 작가에서 선물한 하얀색 가죽 운동화.


기획력이 좋은 출판사답다. 앞으로의 도약을 바라며 문학의 세계로 폴짝 뛰기를 바라는 마음에 운동화 선물이라니. 작가들이 정말 좋아하는 게 책을 통해서 느껴졌다. 발 치수를 알아야 하고 취향을 고민해야 하는 선물이므로. 평론가 신형철에서 시작해 백수린, 김금희, 손보미, 김숨, 이기호, 김중혁, 이승우 등을 거쳐 김용택 시인으로 끝이 난다. 스무 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거창하게는 문학 담론과 사소하게는 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까지 『스무 해의 폴짝』은 포착한다.


의외였던 건 손보미 작가 편. 정은숙 대표의 표현대로 굉장히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단다. 신형철의 미루기에 대한 이야기에도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잘할 수 있을까를 의심해서 불안해서 미루는 것이라고. 그 말은 지금의 내 상태를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영어, 컴퓨터를 공부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 현재 나의 상태를) 문학은 의외로 꼭 필요한 공공재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하는데. 그중에도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아쉬워들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소리 없이 읽고 있는 나와 같은 문학 독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자를 의식해서 글을 쓴다는 작가들은 의외로 없었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쫓지도 않는단다. 그저 써야 할 것이 있기에 쓰고 있기에 쓴다는 선언. '쓰면서 쓰게 됐다'라는 호원숙의 말처럼 그들은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얼 의식하거나 바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스무 해의 폴짝』을 읽기 전 나를 압도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있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 사람은 모름지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허투루 들었던 걸 자책하고 후회.


『스무 해의 폴짝』에 소개된 그들의 약력을 읽으면서 몇 권을 제외하곤 한 작가의 작품을 충실하게 읽은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읽는 동안 그렇게 나는 치유가 되었다. 공부는 무엇이 되는게 아닌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한 일로 문학을 읽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읽은 지 어느새 나도 스무 해가 되었다. 학교 앞 서점에 가서 문제집 사이에 간신히 꽂혀 있는 소설책을 골라 나왔던 시절에서부터.


경력과 자격증 및 특기 사항에 쓸 게 없어서 한숨을 지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문학을 읽은 지 스무 해. 간간이 돈을 벌었고 소심한 마음을 지녔으며 유머에 깔깔깔 웃는 걸 좋아한다, 고. 쓰는 걸 망설이곤 하는데 세계 명작을 써야지라는 허튼 생각 때문에 그런다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좋아하고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망작을 써 내도 좋아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항목을 적으면 대박이겠다고 『스무 해의 폴짝』을 읽고 나서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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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만 갖고 쓰는 거지. 용기 하나만 갖고.
그가 말했고, 그날 밤 나는 좀 많이 울었다. 용기가 조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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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만 갖고 쓰는 거지. 용기 하나만 갖고.
그가 말했고, 그날 밤 나는 좀 많이 울었다. 용기가 조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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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무섭지만 - 코로나 시대 일상의 작가들
오은 외 지음 / 보스토크프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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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다시 시작이다. 무슨 말이냐고? 코로나19, 재난 문자 이야기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전화부터 살펴본다. 지역에 확진자가 나왔는지. 전국에 확진자 수는 몇 명인지. 숫자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첫 문장은 잘못되었다. 이제 좀 잠잠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해지고 있으니까.


마스크는 생필품이 되어 고정 지출 항목에 당당히 들어갔다. 외출하기 전 마스크를 챙기고 가방에는 몇 개의 여분을 챙겨 다닌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고 대화를 했다. 나는 어쩐지 눈을 쳐다보지 못해서. 지금은 눈을 봐야 한다. 눈 이외에는 볼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코, 입, 입 아래 있을 것 같은 여드름 상처, 홍조 띤 볼을 볼 수 없어서 눈을 보며 어색함을 잊으려 한다.


신간 목록 중에 『혼자서는 무섭지만』이 있었다. 부제는 '코로나 시대 일상의 작가들'이었다. 반가웠다. 작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제2의 작업실이라는 카페에는 가지도 못할 텐데. 글을 쓰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비행기 티켓을 들고 여행을 갈 수도 없을 텐데. 취소되었습니다, 환불 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텐데 말이다. 현실에서는 만날 일도 없는 그 작가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신간 『혼자서는 무섭지만』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일상이 에세이와 소설의 형식으로 섞여 있었다. 무엇이 진짜 이야기인지 찾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 소설에서도 작가의 일부 아니 전부가 들어 있다. 형식만 바뀔 뿐이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회사원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친구는 손님과 친해지기도 한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감에 따라 학원을 쉴 수밖에 없는 나날이 월별로 그려진다.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혼자서는 무섭지만 엄마와 산책을 하는 건 괜찮은 시간.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안부를 묻기 위해 긴 편지를 보낸다. 학교는 기존의 역할을 대신해 대안적 공간으로 변화돼야 함을 피력하고 구글어스로 텅 빈 거리를 보는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보여준다.


에세이, 소설, 사진이 어우러진 『혼자서는 무섭지만』. 다들 조심히, 그러나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거리 두기를 지키되 마음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일. 무사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안녕을 빌어주는 일. 작가들은 광합성을 하며 양분을 스스로 얻어내는 식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생태계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생산자의 위치에서.


인간의 삶은 결국 혼자로 귀결된다. 고독은 내 안의 좋은 친구이기도 하고. 그걸 알고서 살아가는 게 코로나 시대의 숙명이 되었다. '용기 내기'는 필수. 코로나가 끝나면,이라는 가정으로 살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희박한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소중한 이들의 혼자를 응원하며. 거리는 지키되 마음은 열어 놓고. 뜨개질이 서툴면 포기하라고 말하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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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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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똑똑한 독자는 아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똑똑한 척을 하고 싶은 독자일 뿐이다. 취미이자 특기가 책 읽기인 비활동인이다. 운동은 숨쉬기가 전부요. 모임, 회식이라는 단어에 치를 떤다.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가식적인 얼굴로 웃고 떠든다. 재사회화가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럴 때도 다 나가 주세요를 외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다.


공부 머리는 없는데 책 읽는 머리는 있다. 한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깊은 상념에 빠지는 일. 그것만은 최고로 잘한다. 책을 읽다가 미처 내가 표현하지 못한 문장이 나오면 탄식하고 잊고 싶은 기억을 환기하는 일화가 나오면 슬퍼진다. 혼자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시끄럽고 분주한 생각이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읽은 책의 목록을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편협함을 자랑한다.


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장 이은혜의 『읽는 직업』은 순전히 제목이 근사해서 읽었다. 세상에. 읽는 게 직업이라니. 맙소사. 완전 나를 위한 일이잖아. 책을 읽으면서 문학으로만 국한된 나의 책 읽기를 반성했다. 본인이 편집한 책을 예시로 편집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을 펼쳐 놓았다. 그 책들 중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글항아리는 인문, 과학, 철학, 한문학 등의 책을 주로 출판한다. 내가 손 대지 않은 분야의 책들이다.


반성은 반성대로 하고.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한 사람의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니 고등학교 때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 일을 하고 싶더랬다. 대학교에 가서 그 꿈은 구체화되었는데 쉽게 좌절되기도 했다.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 학벌이 괜찮아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신념 같은 것으로. 포기. 『읽는 직업』에서 알게 된 편집자의 세계는 다채로웠다.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좋고 기획력이 뛰어나면 더 좋다. 저자와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한 인간성은 필수. 이은혜는 좋은 편집자란 독서력을 통해서 길러진다고 말한다. 자신은 책을 읽으며 알고 싶은 주제를 파고들어 책을 기획한다고 밝힌다. 저자-편집자-독자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성찰한 기록인 『읽는 직업』은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지 탐구한다.


나 같은 한 쪽 방향으로만 책을 읽는 독자도 괜찮다고 끌어안아준다. 그러면서 유명 작가의 대표작 정도는 읽으면 좋다고 이야기한다. 읽으면 쓴다. 읽으면 저자-편집자-독자의 위치가 바뀐다. 책을 읽은 독자는 어느덧 저자가 되어 자신이 쓴 글을 편집자에게 넘긴다. 책을 통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는 권력관계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 사람이 아닌 책을 통해 아는 것은 부끄럽거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순간을 모면하게 해준다. 편집자란 어떤 일을 하나요? 궁금증을 『읽는 직업』을 통해 알게 되어 내가 읽지 않은 분야에 대해 부끄러움 대신 엄선해서 들려준 글항아리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센스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만나서 편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읽는 직업』을 읽음으로써 자세하고 내밀한 편집의 세계, 즉 읽는 직업의 다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책만을 읽으며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만 심취하면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물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좋아져 쉽게 웃고 울게 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면모를 획득할 수 있다. 편집자의 꿈을 가진 이들이 『읽는 직업』을 읽으면 좋겠다.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책을 사랑하며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읽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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