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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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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5일 이후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나의 기분의 형태란 중간이 없는 그야말로 극과 극의 상태를 오랫동안 자랑해 왔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금방 좋았다가 금방 싫었다가. 평정심이 뭐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까.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그 시간 이후로 기분은 내내 좋음과 맑음과 환희의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 잠을 덜 잤는데도 피곤하지 않고(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쉬는 날인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이렇게 된 건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꼬박꼬박 뉴스를 보지도 않았고 보더라도 연예면을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1도 없었는데. 사람은 변화하기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들여놓고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세상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없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없던 게 있게 되고 보기 싫은 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왜 아파해야 하고 눈물 흘리는 이에게 위로를 보내야 하는지 합당한 이유를 알게 되어서 다행한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기분이 내내 좋은 상태로 김금희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었다.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요즘은 4시가 넘어서 자고 있다. 고요한 새벽의 공기를 흡입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역시나 김금희의 산문은 김금희의 소설처럼 다정이 넘치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긴 문장으로 숨을 참아가며 읽어야 해서, 좋았다. 당연하지. 소설과 산문을 쓰는 모든 주체는 김금희니까. 나는 김금희에게서만은 아무런 비판도 꼬여 있는 감정도 없는 상태로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을 좋아해 주겠어라는 마음으로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니까. 그런 마음가짐은 문학에서 멀어진 오랫동안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올해 초 김금희는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도 잠깐 나오지만 그는 문학을 앓는 내내 이상문학상을 염원했고 소원했다. 언젠가는 수상자 목록에 자신이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언니가 사온 그 책들을 읽곤 했었다. 그런 상을 거부한다고 상에 따라오는 불공정한 계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내었다. 아, 내가 소설가 하나는 잘 보는구나. 「조중균의 세계」를 읽고 단박에 좋아해서 나오는 책을 모조리 읽고 리뷰를 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에스엔에스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일 이후에 소설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계정이라도 파서 응원의 말을 해야 하나 했지만, 게으름이 이겼다. 그저 소란과 수군거림에서 멀어져 있기를 빌어보는 수밖에.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작가가 되어 십일 년 동안 쓴 산문을 모은 책이다. 산문은 약간의 허구가 곁들여 있긴 하지만 개인적이고 사소한 취향을 엿볼 수 있어 나는 선호한다. 대학생 때 방학의 풍경으로 글은 시작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중간에 먹었던 김밥의 기억(김밥의 추억으로 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배를 채운다는 목적밖에는 없는 그 식사의 풍경은 추억이 될 수 없고 감정이 섞이지 않는 단어인 기억으로 대체한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래된 티셔츠를 입고 귤을 까먹는 방학의 나날. 급기야 벌레가 꼬인 귤을 변기에 그대로 버려 가족들이 경악했던 사건을 담담히 들려준다.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하기까지 오랜 망설임과 고민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 담겨 있다. 영화를 보고 소설과 시를 읽고 지금의 여기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데도 여행을 떠난다. 김금희는 어떻게 소설가 김금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천천히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의 글을 통해 들려준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머리도 감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가고 조카 준이의 덤덤한 위로를 받으며 힘에 버거운 시간을 통과한다.
돈 벌러 나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터넷 세상을 기웃거리다 보면 새벽이 된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는 새벽이면 나는 어떠한 글도 모조리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도 강성은의 『 Lo-fi 』 좋아하는데 반가워하며. 제발트는 제발 읽어야지 했다가도 포기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꼭 읽어야지 다짐도 해가며. 그렇게 새벽의 시간을 보내고 흥분된 기분을 꼭꼭 눌러가며 잠의 세계로 의무적으로 들어갔다. 책 뒤쪽에는 부록으로 '사랑 밖의 모든 색인'이 있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 쓰인 단어를 빈도수로 추출해 가장 적게 쓰인 단어부터 진한 색 순으로 묶어 놓았다. 춤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색인. 점점 옅어지는 글자를 보고 있다보면 요즘에 내가 사용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춤과 사랑 사이. 사랑과 춤 사이에 적힌 김금희의 언어들과 비교해보면 나의 색인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소설과 시를 쓰지 않은지는 오래이고 그나마 쓴다는 글은 글보다는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답답한 말뿐이니까.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우리의 얼굴이란 다 젖었다가도 마르고 어두워졌다가도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中에서)
내가 왜 그토록 소설에 매달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건 아니고 안다, 확실히 아는 건 아니고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내내 '나쁨' 상태에 있었다. 나의 안위와 기분과 소유에만 열이 올라 있었다. 이른바 우리와 연대, 사회, 책임 같은 걸 생각하지 않았다. 잘못된 일에는 눈을 돌렸고 회피함으로써 책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 간절했던 그 시간 2014년 4월 16일을 살았고 아픈 엄마와 병원에 있으면서 텔레비전에서 봤던 광화문 광장의 촛불을 잊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소설에는 나의 잘못이 있었다. 나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사랑이 아닌 말들 속에 살았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이제 사랑 바깥의 말들로 살아가려 한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 들어 있는 사랑이 아니면 쓸 수 없었던 한 사람의 과거 때문에라도. 나는 힘이 없어도 힘이 있는 척 욕을 할 수 있다면 나지막이 욕을 뱉으며 명확한 '나쁨'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가고 어울려서 씽씽이를 탈 수 있기를 바라며. 무엇을 바꾼다는 추상의 말보다 오늘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아이스크림과 빵, 마스크를 사러 가자 같은 구체의 말을 주고받으며. 사랑과 춤 사이를 채워 넣을 수 있는 힘이 있는 말을 많이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