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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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장편 소설 『모든 빛깔들의 밤』은 서늘한 스릴러를 표방한다. 방심한 상태로 읽어 나가다가 긴장을 느껴야 했다. 시간을 넘나들며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암시와 처절한 슬픔을 보여준다. 아이를 묻은 나무 아래를 찾아간 남자의 이야기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죽은 아이가 나타난다는 소문을 들은 남자는 힘겹게 숲으로 간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남자는 통곡을 한다.

과거의 시간은 현재로 넘어온다.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아기와 엄마. 기차를 탄 모자는 다정하다. 공간이 바뀌고 조제실에서 약을 짓던 희중은 뉴스를 본다. 기차가 탈선을 했다는 소식. 희중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자신이 직접 예매한 그 기차에 아내와 아이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받지 못한 트럭 운전사가 선로에 누워 자살을 했다. 열차는 멈춰 섰고 침하된 지반을 만나 큰 사고로 이어졌다.

불이 난 열차 안에서 희중의 아내, 조안은 선택을 했다. 그 선택으로 인해 희중과 조안의 현재는 비틀어진다. 소설 중후반에 가서 과거의 비밀이 그들의 현재를 압도해 나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든 빛깔들의 밤』은 낯설고 기이한 형태로 끝나게 된다. 비밀과 거짓말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소설은 묻는다. 꼭꼭 숨겨서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게 나을까. 진실을 왜곡한 형태로 거짓말로 사건을 가리는 게 나을까.

『모든 빛깔들의 밤』은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 1991년에 죽은 아이로 인해 여러 사람들의 삶이 일그러진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이는 세상에 다시 등장한다. 2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갈 뿐이다. 다만 죽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모든 빛깔들의 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에 죽음을 겪으며 현재를 살아간다. 비밀과 거짓말로 선택해 숨겨 두거나 가리면서.

소설의 결말에 다다르면 숨을 참게 된다. 희중이 마주한 놀라운 진실 때문이다. 아이의 죽음으로 무너진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설 속의 인물들. 그들이 겪어내는 실패를 보면서 현실의 나는 결코 괜찮아질 수 없다. 소설은 현실을 더 좋게 더 괜찮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읽는다. 헙, 하고 숨이 막히는 『모든 빛깔들의 밤』의 마지막 장을 넘기니 바로(전자책으로 읽어서 가능하다) 소설의 출간 날짜가 찍혀 있었다. '초판 발행 2014년 12월 1일'

소설에서 죽은 아이들은 모두 현실을 떠나지 못한다. 아이들뿐 아니다. 열차 안에서 죽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곳을 떠돈다. 믿기지 않는 죽음 앞에서 산 자들은 헛것이라고 생각될지라도 죽은 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 간절한 바람을 들은 것일까. 죽은 그들이 찾아온다. 희중을 도와준 노인은 말한다. 잊을 수 없으면 지워야 하고, 지울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고. 과격한 표현이지만 산 자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제의로써 그들을 한 번 더 죽여야 한다.

괜찮아질 수 없어 괜찮은 척 살아간다. 비밀과 거짓말을 선택해서 그럴듯한 얼굴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모든 빛깔들의 밤』은 말한다. 진실을 아는 자는 입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위해 살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 더 죽인다는 건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지우게 해서 그들의 분노와 고통을 죽인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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