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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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9.0으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강진이 발생하고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로 덮쳤다. 지상으로 밀려든 쓰나미로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후쿠시마 1원전 부변에서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미국, 중국, 유럽, 우리나라에서도 검출된다. 원전의 반경 20km 이내의 주민이 대피하고 전력 공급 부족을 우려하여 한 달 정도 계획 정전이 일어났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헌등사』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만 22세가 되던 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간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쓴다. 일본 바깥에서 바라본 대지진 이후의 현실을 픽션으로 그려내었다. 소설은 줄곧 어둡고 무거운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안에는 피폭 후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 원전 폭발 이후 7년이 지났다. 바람을 타고 퍼지는 방사능의 낙진처럼 소설은 사고 이후 감내해야 할 고통을 끝없이 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헌등사』의 담긴 다섯 편의 소설은 알 수 없는 일본의 미래로 달려간다. 일본은 사고 이후에 쇄국 정책을 실시한다. 다른 나라의 말을 쓸 수 없다. 외래어 표기는 금지 당하고 외국의 물건도 들여올 수 없다. 일본인이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갈 수 없다. 땅에서 자라는 과일은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으며 일본 안에서도 이동은 불가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병에 시달린다. 음식물을 씹어 삼킬 수 없고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그에 반해 노인들의 삶은 무한이다. 사고의 영향으로 노인들은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헌등사」에서 증손자를 보살피는 요시로는 자신을 노인이 아니라 '100세의 경계선을 넘은 시점부터 걷기 시작한 신인류'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는 뜻을 가진 무메이를 돌보면서 하루하루를 이어 나간다. 증손자에게 먹일 과일을 구하는 노인들 틈에서 한 알에 1만 엔이나 하는 오렌지를 구해 즙을 싸서 무메이에게 먹이는 요시로. 과거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 나갔지만 사고 이후 그는 죽지 않는 삶에서 증손자를 돌보고 언어를 잃어가면서 살아 나간다. 


  일본 정부는 민영화되었고 의원들은 어디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신문이 발행되긴 하지만 논조는 시시각각 바뀐다. 사람들은 쇄국에 대한 의견을 내놓진 않지만 과일에 대한 불평은 한다. 해외에서 수입이 되지 않고 오키나와에서만 들어온다. 노인인 척 머리를 탈색해 나이를 숨기고 위장 취업을 하려고 하지만 스위치에 적힌 ON/OFF의 뜻을 몰라 들키고 만다. 외래어를 아는 사람들은 100세가 넘긴 노인들 뿐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울 수도 번역 소설을 출판할 수도 없는 일본의 미래 사회. 


  다와다 요코가 그리는 일본의 미래는 안으로 막혀 있고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무메이는 점점 늙어가면서 15세가 된다. 이가 빠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아이는 죽고 노인은 살아가는 사회. 꿈, 희망, 내일이라는 말이 외래어 취급을 받아 소멸하고 있다. 일본 여권을 보이면 입국 심사자는 여권 받기를 주저하고 일본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해야 손가락 끝으로 여권을 만진다. 인터넷과 전화 연결이 불가능해지면서 일본 안의 소식을 알 수도 없다. 이러한 소설적 배경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은 한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몰래 방사능 폐기물 소각을 주민들 동의 없이 진행했다. 다와다 요코는 외곽에서 이러한 현실들을 발견한다. 발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비밀스럽고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들여다보는 노력 없이는 사실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 때 나는 종종 일본이 낯설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내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만의 사고를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독일에 와서 발견한 낯섦은 아주 다른 종류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이 생겼고, 모국어와 다르게 작동하는 언어의 낯섦을 즐길 수 있었다. 80년대의 일본은 내게 낯설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경제가 너무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경향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2011년 이후로 나는 일본을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핵발전소 재난 이후로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일본 독자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악스트 2017. 1/2, 다와다 요코 인터뷰 중에서)


  각각 일본어와 독일어로 20권의 책을 썼다. 이방인 되기라는 예술 안에서 다와다 요코는 일본 내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변방에서 바라본 일본의 현실을 소설의 배경으로 끌고 온 다와다 요코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상상으로써 일본의 미래를 그려내지만 그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죽어간다. 몇만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오염 물질 안에서 살아가려면 소설 속 배경처럼 쇄국을 주장하고  교류의 물길을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폐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번화한 간판들, 자동차 따위는 한 대도 달리고 있지 않은데 규칙적으로 빨갛게 되거나 파랗게 되곤 하는 신호기, 사원이 없는 회사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는 것은 바람으로 가로수의 커다란 가지들이 휘어졌기 때문일까. 연회장에서는 식어버린 담배 냄새가 수은 색으로 적막하게 얼어붙었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던 잡거빌딩의 어느 층도 부재라는 이름의 손님이 술을 무한 리필로 마시며 떠들어댔으며, 빌릴 사람이 없는 대부금 이자가 녹슬고, 아무도 사지 않는, 할인 판매 중인 속옷 더미가 눅눅해졌으며, 빗물이 고인 쇼윈도에 장식된 핸드백에는 곰팡이가 피고, 하이힐 속에 쥐 한 마리가 유유자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헌등사」중에서, 39쪽)


  미래의 묘사처럼 보이는가. 미래의 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끝으로 달려 가고 있다. 신호가 잡히지 않고 엽서를 쓰면 일주일이 지나 도착하는 과거로 가는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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