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조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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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카드게임에 비유한다면 나라는 사람의 패는 조커일 확률이 높다. 내가 가진 패가 무엇인지 몰랐다. 판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인지 엎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럭저럭 살아왔다. 악귀를 숨겨 놓았다고 해도 들키지 않았다. 딱 한번 내보일 뻔했던 때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주물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열두 살에 공장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물자가 부족하고 공장을 돌릴 자금도 없었다. 사장의 호출에 가보니 금고에서 꺼낸 맥주병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금빛 봉황 상표가 붙은 진짜 히노데 맥주였다. 묵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사장은 공장을 처분하려고 하니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해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절이 어수선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해고 통보를 들은 그 밤, 몸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기름을 양동이에 담아 사장의 살림집으로 옮겼다. 그 순간 낮에 먹은 오래된 맥주 탓에 배가 아팠다. 이성을 찾고 변소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그때 변소에 가지 않았다면 사장 일가 네 명을 죽일뻔했다. 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신 안에는 언제든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악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때가 처음이지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몸속에 숨은 악귀를 불러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앓은 병으로 눈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네 살 먹은 애가 있는 여자랑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내는 5년 전에 죽었다. 의붓딸은 치과의사랑 결혼해서 명품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 친척에게 속아 산 약국은 대출 빚을 갚아 나가면서 운영하고 있다. 주말이면 경마장에 간다.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황혼을 달래고 있다. 나, 모노이 세이조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소설 『레이디 조커』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 뛰어든 인물들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패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에게 들어온 패가 어떻게 판을 흔들지 모른다. 각자의 손에 쥐어진 패를 내 보이면서 전진한다. 소설은 일본 안에서도 20위권 안에 드는 초대형 기업 히노데 맥주회사에 보낸 편지 한 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을 오카무라 세이지로 밝힌 남자는 자신이 해고된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세세히 밝힌다. 히노데 맥주 회사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과 전쟁 후에 다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느낀 자부심을 이야기한다. 회사가 최근에 단행한 해고자 명단에 들어간 사람을 만난 게 목격되어 자신 역시 퇴출 통보로 이어지지 않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퇴출 통보를 한 회사에 미움과 협박이 담긴 어조가 아니라 차별을 받고 있는 부락 출신 해고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는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회사는 편지를 괴문서로 분류되어 폐기한다. 오카무라 세이지가 편지를 보낸 시점은 1947년이다. 


  소설의 시간은 한참을 건너와 1990년으로 당도한다. 경마장에서 죽치고 있는 남자들, 모노이 세이조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히노데 맥주 회사에 지원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진 모노이 세이조의 손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모노이 세이조는 손자의 죽음을 경마장에서 위로하고 있다. 경마장에 모인 남자들 중 장애인 딸을 데리고 오는 누노카와 준이치는 계획을 세우자는 모노이 세이조의 말에 조커를 뽑은 자신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히노데 회사에 감춰진 차별의 문화를 거꾸로 되짚으며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한 장의 패처럼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설은 박력이 넘치고 기업과 경찰, 신문사를 배경으로 인생의 조커를 뽑은 인물들의 계획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단 한 번 자신이 인생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 그럭저럭 살아온 것이 아니다.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려 조바심 내며 살아온 인생이다. 과연 조커를 손에 든 그들의 계획은 인생이라는 게임판을 전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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