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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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돌아오니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이 따뜻하고 포근한 빛깔의 시집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들켜버렸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신작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가 있는 코너로 나를 이끄는 손을 잡았습니다. 연휴인데도 서점은 문을 열었고 몇몇 사람들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봄이 온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데 시인의 시집은 도착해 있고 분홍빛은 나를 눈멀게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사모하는 일은 사소합니다. 시의 몇 문장으로 시집에 어울리는 책갈피를 고르는 일로 사랑은 시작됩니다. 
다시 봄이 돌아온다는 일에는 끔찍하거나 슬프거나 그리운 기억도 함께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버렸습니다.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불고 나른한 낮잠이 몰려오는 것으로 봄은 출발합니다.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다짐과 맹세로 봄은 피어납니다. 다시 봄을 맞이하려고 잎을 떨구고 동면에 들어갔던 식물들의 연한 눈이 풀리는 설 지난 오후만 남은 일요일입니다. 

샘가에서
-어머니에게

고서(古書) 같이
어두컴컴한 
어머니

샘가에 가요
푸른 모과 같은 
물이 있는 
샘가에 가요

작은 나뭇잎으로
물을 떠요

다시 
나를 입어요
당신에게 
차오르도록

시를 쓸 때 직유를 쓰는 일은 촌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웃기지요, 시 쓰기를 배우는 일은. 그 후로 직유는 쓰지 않았어요. 이상한 일이지요,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은. '고서(古書) 같이/어두컴컴한/ 어머니' 의 행을 읽고는 단박에 좋아진 걸 어쩌겠어요. 좋은데 이유는 없잖아요. 직유든 은유든 비유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안 보이는 눈으로 흐려진 글자를 읽어내려가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전기세 걱정에 텔레비전 불빛만으로 어두운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 모습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자식이 자라는 대신 늙어갔던 어머니를 데리고 샘가로 가요. 이제 내가 늙어가요, 어머니가 이제 차올라요. 이건 명령입니다. 시로써 전하는 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종이 책갈피에 대한 단상
책갈피를 쓰시나요. 서랍에 책갈피만 모아 놓은 구역이 있긴 한데 정작 책을 읽을 때는 쓰질 않아요. 띠지를 벗겨서 대충 꽂아두거나 영수증을 넣어두곤 하지요. '사랑이 있나.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겠지.'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사진 속 종이 책갈피에 적힌 말입니다. 한 여자가 긴 복도 끝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있네요. 통속이 마음을 멎게 하는 시절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종이 책갈피에 쓰인 말이 시절을 되돌립니다. 책상과 빛, 책과 공책, 연필. 우리가 다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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