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온기

-김소연


하늘 참 파랗다

그 거짓말을 바라보기 위해

식탁 의자 하나를 

마당에 내다 놓는 아침


구름 참 하얗다

그 변덕을 바라보기 위해

식탁 의자에 앉아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아침


햇살에 살이 아리다

매 맞듯 살이 아프다


풀 끝에 맺힌

물방울에게 안부를 묻는 햇빛

나무 등걸에 핀

버섯 겨드랑이까지 찾아간다

태양 참 쩨쩨하다


  시 한 편을 옮겨 적는 일은 세계를 그리는 일이다. 매일 아침 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일은 시간을 저장하는 행위이다. 마당에 의자 하나를 내어놓고 문을 열어둔다. 음악을 듣기 위해. 빛을 모으고 우리를 지나치는 햇빛의 심술을 달래준다. 기분은 시시각각 변한다. 태양은 쩨쩨하게도 마당 한 쪽만을 지나간다. 김소연의 시 「온기」를 소리 내어 읽는다. 어려울 것 없는 언어들이 새벽에서 새벽으로 시간을 건너간다. 가만히 시의 말들이 사라지는 걸 지켜본다. 우리의 우주는 별 볼 일 없는 세상에서 별자리의 운행을 지켜보는 것으로 내일을 약속받는다. 


시인


 김소연의 시집을 찾아보았다. 『극에 달하다』부터 최근에 나온 『수학자의 아침』까지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극에 달하다』는 두 권이나 있다. 책장을 살펴보면 나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똑같은 책들이 두 권씩 있다. 같은 책인데 가격이 다르다. 시집이 있다는 걸 잊었던 걸까. 그렇게 책들은 우리 집으로 모여든다. 색감이 다르고 가격이 달라진 채. 종이책들을 정리한 뒤로 시집도 전자책으로 사서 읽는다. 『눈물이라는 뼈』는 전자책으로 사 놓고 필사를 하기 위해 클릭해 보았다. 클릭 한 번으로 페이지들이 넘어가고 목차를 보며 읽고 싶은 제목을 지그시 누른다. 차르륵 펼치는 재미는 없지만 어두운 방에서도 커튼을 쳐놓고도 시의 행들을 짚을 수 있다. 점자를 읽어내듯 화면을 손으로 누르면 시는 다가온다. 


시인의 산문


 『시옷의 세계』는 김소연 시인이 펴낸 두 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의 산문집은 소설가의 산문과는 결이 조금씩 다르다. 서사는 짐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인의 산문은 시인이 미처 시에서 말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이 책은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 명사 또는 동사로 이루어진 말들로 시작한다. 「사라짐」, 「사소한 신비」, 「소풍 우리가 우리에게 가는 길」, 「송경동」, 「신해욱」, 「심보선」등으로 이루어진 시옷의 세계에서 시인 김소연은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다정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희망 버스를 타고 고공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을 만나러 가고 그가 의미를 부여해주는 신해욱과심보선의 시들을 우리에게 한 번 더 보여준다.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시옷으로 시작한다. 시, 시인, 소설, 소설가, 세계, 수고스러움, 산책, 상상, 사유. 『시옷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시옷들의 사연들을 시인은 별자리의 운행을 일러주듯 고요한 음성으로 속삭인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응시하지 못했던 시옷의 시간들을 알려준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시옷의 세계』로 사람들 사이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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