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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ㅣ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평점 :
고대(古代))에 가면
-장석남
말 타고 가다가
순한 돌처럼 가라앉을래요
사랑을 면제받는 기도를
하늘빛 어느 소(沼)에 가서는 매일매일 씻기겠어요
말 길러 말 타고 가다가
열매를 면제받은 꽃으로 가벼이 떠내려갈래요
말 타고 가다가
물의 빛으로 갈아타겠어요
그 마을은 기차도 차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야 할 것이다. 먼지는 날리고 가도가도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곳. 문득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나 의심이 들 때 마을은 나타난다. 물을 얻어 마시고 연못에 들어가 발을 씻고 더러워진 나의 얼굴을 마주본다.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그곳에 버려두고 다시 길을 떠나온다. 순한 돌로 열매를 면제받은 꽃으로 물의 빛으로 나의 시간은 탈색된다.
입춘 부근
-장석남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땋에 닿아야만 하니까
2월인데 아직도 왜 이렇게 추울까. 한 줌 볕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려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내일이 입춘이라는데 기상 예보는 역대급 입춘 한파라고 알려온다. 오는 봄, 와야 할 봄. 그 봄에서 시인은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나는 한낱 휴일과 휴일 사이의 일들을 가늠하느라 어지럽기만 한데. 발이 땋에 닿아야 살 수 있으니까. 그 길을 걷고 무심코 꽃이라도 밟는 날에는 마음이 내려앉을 일을 걱정하는 시인의 언어를 나는 조심히 옮겨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