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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삶의 끝은 죽음. 삶의 끝이 죽음이라고 썼지만 그 후에 일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알 수도 없거니와 아직 알고 싶지 않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만 더 살고 싶다. 내가 쓸 수 없는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겪은 세계의 참혹을 알고 싶다. 가보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상상하고 과거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싶다. 현재의 순간들을 만끽하며 미래의 일들을 추측하고 싶다. 단지 그것뿐. 죽음이라는 실체에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다.
소설의 끝은 이야기.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끝이라는 괄호의 세계에 묶여 이야기는 정지되는가. 소설의 첫 장에서 마지막 장으로 작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진실의 한 면만을 보여준 채 달아나 버리고 만다. 작가는 없다. 작가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소설의 세계에서 우리는 길을 찾아 헤맨다. 목소리의 부름에 따라 서사를 헤치고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그가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이야기의 조각을 찾아 나는 끝이라는 세계에서 탈출한다. 소설의 끝은 반복이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나는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우리가 세계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경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는 나는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세계 속에서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온기를 받아들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상상하는 것이 아닌 죽음이란 마지막 온기를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허구의 인물이 건네는 악수를 받아들고 그가 읽고 외우는 시를 끌어안는 것. 소설은 내게 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시작이라는 말로 오독한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보여주는 세계의 모습은 참혹하다. 전쟁이라는 광기의 역사에서 인간의 시간은 지워지고 잊혀 간다. 역사는 한 줄로 요약되고 축소되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삶은 전쟁이 끝나고도 이어진다. 국가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살인. 조국의 이름으로 출전한 사람들은 이름을 잃고 포로 번호로 살아간다. 지독한 허기와 가혹한 노동으로 죽어가는 개인들. 전쟁에 필요한 물자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향해 걸어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는 막사에서 수술 도구조차 없이 구부러진 숟가락으로 잭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멈추게 한다. 그는 콜레라와 괴질, 각기병에 시달리는 환자들 곁을 돌며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속으로 되뇐다. 방금 둘러 본 환자가 죽어 있고 들것조차 없이 천으로 죽은 이를 메고 화장을 해야 하는 그곳에서 도리고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제국이 타이-미얀마 간의 철도를 건설하는 곳에서 전쟁 포로이자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도리고는 나카무라 소령의 지시에 협상으로 맞선다. 포로들은 영양 상태가 엉망이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매일 철도 작업장으로 포로들을 내보내야 하는 임무에서 도리고는 의사의 신분으로 모두 내 보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건강한 자들은 없다. 모두 죽음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는 법칙이 아닙니다. 운명이 아니에요, 대령님.
그렇지. 도리고 에번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는 시가 대략 운명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저 그림 말입니다. 보녹스 베이커가 말했다. 그림 말이에요, 대령임.
그림이 뭐, 보녹스?
토끼 핸드릭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그림들은 살아나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살아남을 베이커가 말했다. 그래서 세상이 알게 될 거라고요.
그래?
기억이 진정한 정의입니다, 대령님.
일본군은 무리하게 철도 건설을 강행하면서 환자까지도 끌어내 일을 시키려 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구타가 시작되고 먹을 것과 휴식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다. 군화가 없어 떨어진 밑창을 꿰어서 신은 포로들은 병균에 감염이 된 발을 끌며 돌을 깬다. 콜레라가 발병한 환자는 바로 격리를 시키고 그 병동에서는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도리고와 함께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그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버리지 않는다. 훔친 오리알을 자는 동료와 나눠 먹고 그림으로 그들의 시간을 그린 토끼 헨드릭스의 스케치를 간직한다. 도리고는 시가 법칙과 운명이 아니라는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에게 시는 운명이었음을 깨닫는다.
전쟁에 참가한 그들, 나카무라 수령과 고타 대령 그리고 도리고는 자신들이 읽던 시를 떠올린다. 도리고에게 시는 망각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의로, 안전장치로 작용한다. 폭력과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전장에서 일본인 장군들은 시를 생각하는 것으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정당성을 확립해 나가려 한다. 천황 폐하의 존재와 그가 내리는 명령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이기를 스스로 내려놓으면서도 시에 기댄다. 천황을 시로 여기며 가장 위대한 시라고 나카무라는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이 임박해 오는 순간 그 시는 공포와 괴물로 그의 전 생애를 이루는 가치를 압박한다. 고타 대령은 시를 외우면서 포로들의 목을 벤다.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인간성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하면서 생명을 죽인다. 그 이율배반적인 행위 안에서도 시는 존재한다. 인간에게 고통을 내리는 자가 시로써 구원을 받으려 한다.
도리고는 일본 하이쿠에서 임종시를 발견한다. 시스이가 남긴 임종 시는 하나의 원이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시인은 원을 그렸다. 도리고와 병사들을 길을 만들기 위해, 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한다. 선이 만들어져야 일본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포로들이 가는 좁은 길은 죽음으로 향해가는 선이었다. 길에서 시작된 죽음은 선 하나를 만들기 위한 일본 제국의 욕심이었다. 철도는 식민지 안에서 끝없이 뻗어나가 일본 제국의 역사를 안고 달려갈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망각은 성취되지 않는다. 물과 식량과 의약품이 보급되지 않는 현장에서 포로들이 쓰러져 가고 느닷없이 시작되는 구타의 만행은 시와 그림으로 기억된다.
식민지 조선에서 차출된 하사 고아나는 일본 패망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인 최상민으로 교수형을 당한다. 전쟁이 끝나고 높은 신분의 일본인들은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피하거나 나카무라처럼 신분 세탁을 한다. 고타 대령은 혈액은행에 취업한다. 신분 세탁을 한 나카무라는 미군 공군 병사를 마취 없이 생체 해부한 의사 사토 이야기를 듣는다. 일본군에게 총상을 입은 미군 병사를 데려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간과 방광, 위를 제거한 이야기를. 미군 병사는 사토가 하얀 가운을 입었기 때문에 자신을 끝까지 믿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도리고와 사토, 전쟁 속에서 두 의사는 다른 길을 걷는다. 한쪽에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똥이 가득한 진흙 속에서 수술을 해야 했고 다른 쪽에서는 과학적 테이터를 얻기 위해 생체 수술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에 실패한다. 두 도시에 원폭이 떨어지고 패망을 선언한 그들은 그 철도의 일부를 신사로 가져온다. 사람들에게 일본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그 일은 일본이 전쟁 속에서 조국을 위해 이루어낸 업적을 기리는 것이었다.
전쟁의 끝은 기억이다. 도리고의 마지막에서 그는 하이쿠 시인 시스이가 남긴 원의 의미를 이해한다. 선들이 모여도 만날 수 없는 세계에서 원은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전쟁 영웅으로 전쟁 이후를 살아가면서 도리고는 기억을 놓치지 않는다. 철도 건설을 위해 행군을 했던 길 위에서, 매일 쓰러지는 포로들을 보면서 살릴 수 없었던 무서운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렸던 곳에서. 도리고는 전쟁을 이야기하고 북쪽이 아닌 서쪽의 하늘의 길로 넘어간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이야기는 원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도리고는 삶이란 진실과 우연히 주는 섬뜩함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일본인에게 맞아 죽은 디기너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 전쟁 이후의 자신의 삶을 결정지은 사소한 거짓말 하나가 선의로 가장한 악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완벽하다. 문장은 우리를 더럽고 끔찍한 전쟁 속으로 데려간다. 이야기들은 여지를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도리고의 생을 지배한 전쟁의 기억은 죽음의 순간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끌고 죽음의 세계로 건너간다. 고통은 시를 남기고 우리는 노래로써 사랑을 완성한다. 도리고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이 세계에서 삶을 노래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