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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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왼손을 들어 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몇 가닥만 남기고 다시 흘러내린다.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정미경 소설 장마 中에서)


  정미경의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받아들고 오래 망설였다. 빨리 읽고 싶은 마음과 조금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들이 부딪혔다. 마음과 마음이 닿아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바람을 몰고 왔다. 어긋난 틈으로 들어오는 이 겨울의 냉기 때문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2017년 1월 18일. 겨울 속으로 소설가가 떠나갔다. 소설가는 떠나고 그가 남긴 작품들이 꼭 일 년 후에 나왔다. 2018년 1월 18일. 초판 발행한 책은 겨울의 바람 속을 뚫고 와 내 손바닥 안에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살고 있지만 그 패턴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설가 정미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집을 읽는 동안 새벽에서 아침으로 그 미명의 어둠 속에서 번져가는 그리움 때문에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새벽까지 희미하게』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은 오래 망설인다. 이 생을 치열하게 살고 싶은 그들은 만남과 이별의 선택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만남의 시작은 서툴고 우연적이다. 「못」에서 그들은 대형마트 전자제품에 코너에서 만난다. 성능만을 묻고 정작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들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하는 그녀. 회사에서 밀려나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들이고 환불을 반복하는 그에게 그녀는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그들이 사는 반 지하방으로 들어오지만 그들의 연결은 허술하다. 벽에 툭 불거져 나온 보기 싫은 못처럼 그들의 만남은 자국만을 남긴다. 

  「엄마, 나는 바보예요」의 조는 성공한 정신과 의사이다. 자신만의 규칙이 있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일상의 위태로움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에게 환자들은 의료쇼핑족이고 정해진 시간 동안 비용을 내고 상담을 들어주는 존재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다. 아내와는 묘하게 대화의 초점이 어긋나고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형식적인 의사모임에 가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는 그에게 삶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야 한다. 

  표제작 「새벽까지 희미하게」의 두 인물 송이와 유석은 손바닥 공원의 모과나무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정수기를 설치하러 유석의 사무실에 온 송이를 유석은 즉흥적으로 직원으로 채용한다. 이미 세 명의 직원이 있음에도 유석은 송이의 눈물을 보는 순간 자신과 일을 하자고 이야기한다. 송이는 그들과 겉돌면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사무실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송이. 정작 사무실에서 그들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 보질 못한다. 어느 밤에 공원 안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송이를 보면서 그들은 터놓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새벽까지 나눈다. 

  「목 놓아 우네」의 두 심들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교량 설계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심은 화장실에 앉아 스팸 김밥을 먹는다. 매일 맛이 달라지는 김밥을 먹으며 있지도 않은 역류성 식도염을 생각한다. 야식을 먹으러 가지 않은 이유를 그것으로 대고 나니 진짜로 병에 걸린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잘못 들어온 문자에 답을 보내면서 심은 성이 같은 심과 연결된다. 트럭을 몰고 운반 일을 하는 심은 같이 살고 있는 룸메이트의 직업을 빌려와 그 자신을 대학 병원 간호사라고 심에게 소개한다. 심과 심 사이에는 문자 수신음과 전파만이 존재한다.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 심을 위해 심은 화장실에 앉아 운다. 

  「장마」의 윤과 남자는 일본에서 처음 만난다. 비행기에서 만난 그들은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기 위해 합승한다. 남자는 일본 출장이 잦은 탓에 싸고 저렴한 숙박 시설을 알고 있다. 말이 많은 그 남자는 윤에게 자꾸만 말을 건다. 숙박 계획이 없는 윤이지만 방을 잡고 그가 먹자는 밥을 함께 먹는다. 부또오를 보러 가고 윤이 가야 할 곳에 남자는 따라간다. 윤을 두고 간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는 그 길에서 그들은 사소하게 지나갈 만남과 헤어짐, 어둠과 빛을 확인한다. 

  이 소설집의 끝은 정지아와 정이현, 김병종의 산문, 백지연의 해설이 실려 있다. 이것을 보고 소설의 끝에 문인이 아니어도 소설가의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알고 평소 그의 인간 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독자는 소설가의 책상을 작업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설렘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별로 돌아간 작가가 남긴 작품을 읽고 추모하는 글이 아닌 이 별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글. 작가의 말을 같이 읽으며 책장을 덮고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눈을 감아 보는 책. 소설가 故 정미경의 마지막 소설집이라고 쓰인 띠지를 벗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띠지가 없으면 정미경·소설집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오랜 서성거림을 느끼면서 창문을 열었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들은 해가 뜨는 걸 보고 돌아갔나 보다. 어둠 속에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을 그들. 환한 빛 속에서는 차마 건네지 못하는 말들을 그들은 새벽의 공원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낯선 언어를 해독하는 외국인들처럼 소곤거렸다. 작가의 말이 실려 있지 않은 책이 슬프다는 걸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작가는 작품으로써 충분한 이야기를 전달했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작가의 말을 쓰지 않기도 한다. 일부러 쓰지 않는 것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의 차이에서 나는 작가가 잃어버린 마지막 문장을 생각한다. 아니 마지막 문장이 아닌 첫 문장을 생각하기로 한다. 소설가 정미경이 쓰고 있을 첫 문장을 상상하며 겨울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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