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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78호 - 2017.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그 마음을 대체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2017년은 미친 사람처럼 감정이 고조되었다가 가라앉기도 해서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지냈다고 떠올려 본다. 기쁜 일에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날뛰었다.화가 나는 일에도 벌컥벌컥 분노를 드러내서 주변인을 힘들게 만들었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은 숨겨지지 않았다. 마음이 문제였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마음을 볼 수 없는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에 실린 김금희의 소설 『경애(敬愛)의 마음』을 보는 순간 제목만으로 사람을 울릴 수 있구나,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인데도 위로를 받았다. 「조중균의 세계」를 읽을 무렵, 한국 단편 소설을 거의 읽지 않고 보냈던 시절이었다. 가 닿을 수 없는 그 세계를 원망과 미움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문학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문학을 버린 것이라고 자위했다. 매몰차게 이별을 고했지만 한밤중 자니라는 문자를 하는 옛 애인처럼 나는 문학에게 자꾸만 찌질하게 굴었다. 읽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해의 우수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에서 나는 김금희의 소설 「조중균의 세계」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이 세계의 책무를 다하는 인물이 건네는 공손한 화해의 악수를 그 소설을 통해 받았다.
2017년의 봄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쓴다. 그 일들을 겪으며 나는 당신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다짐을 받았다. 우리는 신호를 기다렸다. 지구별에서 쏘아 올린 신호는 미약했지만 곧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축제의 봄을 맞이했고 우리는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봄에서 시작한 소설 『경애(敬愛)의 마음』을 읽으며 여름과 가을, 겨울을 마주했다. 반도미싱에서 팀장 대리로 이상한 직함을 달고 일하는 상수와 상수가 회사에 요구해서 그 밑에서 일하게 된 경애는 폐기되어야 할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묘하게 핀트가 어긋났고 친해질 수 없는 공간인 회사에서 그들의 마음은 한 점으로 모이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려간다.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는 일,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채는 일들. 경애는 그 마음의 무늬를 헤아리다가 시간을 놓치고 현재의 시간에서 발목을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돈 내고 나가라,라는 말에 갇힌 경애의 과거. 김금희의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건 조각으로 부서진 누군가의 마음들이었다. 경애의 마음과 상수의 마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자 아픈 가슴 때문에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 들. 소설은 일상을 사는 우리의 흩뿌려진 마음을 이어 붙이려는 김금희 작가의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로 『경애(敬愛)의 마음』은 끝이 났다. 소설의 매력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봄에서 시작한 소설은 겨울에 끝이 났다. 12월의 마지막 날 해가 바뀔 때 100개들이 지퍼를 주문하는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소설 속도 현실 안도 외로운 마음들이 떠다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괄호를 치고 (연재 끝)이라는 글자를 마지막으로 썼을 소설가의 마음을 어두운 방에 누워서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같은 한자와 한글을 하나씩 나누어 쓴다는 것으로 이 세계에서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은 이곳의 나와 그곳의 소설가가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그럴 수 있다면 서로의 고독한 마음을 주고 받고 소설로서 공손하게 내민 그 악수를 돌려주고 싶다. 우리의 마음은 폐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경애의 마음으로 무참한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기억으로 쓰일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