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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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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윗집 아이들은 뛴다. 뛰다가 넘어졌는지 울고 문을 쾅쾅 닫는다. 음악도 텔레비전 소음도 없는 우리 집에서 그 소리들은 선명하게 들린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데 목이 쉴까 봐 걱정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고 싶은데 얼굴 근육이 망가졌는지 웃질 못한다. 가깝거나 먼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들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이 등장한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지 놀이동산에 가 있거나 꽃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할 나이들이 된 것이구나.
아는 분이 가끔 일하는 곳에 아이를 데려온다. 처음에는 웃으며 놀아주고 안아준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귀여워 질문을 한다. 웅얼웅얼 말하지만 신기하다. 오분 정도 지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위험한 물건을 만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내 얼굴이 무서운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이다. 사카이 준코의 산문집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에서 그녀는 자신의 조카를 '와도 좋고 가도 좋은' 존재로 표현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는 오면 좋지만 가면 더 좋은 것이겠구나, 아이를 귀여워하는 척하는 나는 그런 공감을 한다.
독신이고 아이도 낳지 않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생활상을 글로 써내는 사카이 준코의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를 다 읽고 나면 제목을 잘 지었구나 생각한다. 아무래도이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독신 혹은 아이가 없는 사람들) 아이는 괜찮은 것이다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사카이 준코는 오랜만에 만난 모임에서 연하장을 두 가지로 만든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족사진을, 없는 이에게는 사진이 빠진 글만 적어서 보낸다는 것이다. 아이가 없는 이를 배려한다는 취지이지만 정작 옆에 앉은 아이가 없는 사카이 준코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없는 이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들은 그녀는 가족사진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여긴다.
일본 사회는 심각한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출산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절감한 젊은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으로 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재력과 친정의 조력이 필요한 일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정부만 모르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의 뿌리를 가진 일본은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의견들이 점점 우경화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소노 아야코 작가는 출산하면 일을 그만두라고 여성은 아이가 태어나면 퇴직해 몇 년 동안은 양육에만 전념해야 한다, 출산휴가 제도를 두고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너무 많이 본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여성 지식인들의 이런 오른쪽으로 치우친 발언들이 출산과 양육의 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에서 장관으로 임명된 여성들을 소개한 신문 기사에서는 그녀들의 자녀의 수를 명시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지적한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들을 공개하는 것이 출산율을 올리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진지한 분석도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이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낳아서 훌륭하게 키워 볼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과거에는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다가 공식처럼 되어 있지만 현재는 그것들이 선택 사항으로 변해 있다. 결혼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키우는 것도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사항이 된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과 안쓰러움을 받아야 하는 피로를 사카이 준코는 이 책에서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직장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들을 차별했지만 앞으로는 아이가 없는 여성들을 차별하는 날이 올지' 도 모른다는 문장에서 경악했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는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미래 사회. 미래가 아닌 오늘의 사회에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누군가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질문 세례를 받고 안타까움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
자식이 없어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는 걱정에 시달리고 독신 여성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고 싶어 오키나와에 가서 장례 풍습을 공부한다. 사나 죽으나 혼자라는 것을 터득하고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를 실천하는 사카이 준코. 동물을 키워 볼까도 생각하지만 살아 있는 것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자신을 떠올리며 그만둔다. 선인장도 죽였다는 고백과 함께. 아이들은 귀여운 아이와 귀여워해 줄 수 없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말하고 사촌이 갖고 싶다는 조카에게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견디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다고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도 윗집 아이들은 뛰지만 새 나라의 어린이들인 듯 일찍 잠자리에 들었나 보다, 조용하다. 자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다는데 볼 빵빵 그 모습을 상상해본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