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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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가 지금인가' 하고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킨크스의 곡에 집중하며 눈을 감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운동선수였을지도 만화가였을지도 모르고 파일럿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샐러리맨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하고, 얌전히 있으면 계속해서 일을 떠맡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 괴롭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제법 좋은 추억도 있고, 새해 연휴에 만날 친구도 있다. 그런 거야 어렸을 때와 거의 똑같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게 뭐가 나쁜가.


  쓰무라 기쿠코의 소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의 풍경들은 소설의 제목처럼 설레는 일들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 만큼 평범한 모습이다. 아침 알람을 1분 간격으로 맞춰 놓고도 제때 일어나지 못해서 밥을 챙겨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모습, 업무 미팅이 끝나고도 일찍 회사에 들어가기 싫어 카레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는 모습. 어제까지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가 오늘은 냉담하게 변한 얼굴로 이야기마다 태클을 걸어오는 걸 견뎌야 하는 일들에 설레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 오히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대는 일들뿐이다.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나카코는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이 맡겨질 때에도 아무 말없이 일을 해낸다. 두 달 전에는 십 년 가까이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 프리랜서로 맛집 소개나 최신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서른한 살,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둘러싼 일들이 버겁게 느껴진다. 회사 동료들 셋과는 점심을 함께 먹는다. 최근 동료들 중 한 명이 유독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시비를 거는 느낌이 들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다.
  사토는 나카세가와 건축회사의 도쿄 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오사카 출신이지만 회사를 도쿄에서 다니고 있다.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회사에서 그는 업무를 충실히 하고 남이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내는 타입이다. 부장의 지시로 결원이 생긴 오사카 지점으로 항의 없이 내려가기도 한다. 혼자 사는 엄마의 집에 이삿짐을 부려 놓고 몇 달 째 풀지 않고 있다.
  나카코와 사토는 업무 미팅 때문에 만난다. 사토의 회사 안내서를 나카코가 대신 만들고 있다. 몇 가지 수정 사항들을 체크하고 두 사람은 이내 나이와 성이 같다는 것과 생일 역시 같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업무 때문에 만난 것이라 그 정도만 확인하고 헤어진다. 바로 회사에 들어가기 싫은 나카코는 카레집에 들러 점심을 먹는다. 그곳에서 방금 만난 사토를 우연처럼 다시 한 번 만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주고받는다.
  소설은 이 두 남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쿄에서 근무하는 사토가 할 수 없이 나카코가 있는 오사카로 내려오면서 이들의 만남이 성사되지는 않을까 가슴이 졸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하루를 견뎌낸다. 실제 쓰무라 기쿠코는 힘들게 취업을 해서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그곳에서 상사의 괴롭힘으로 10개월 정도를 일하고 그만두었다고 작가 소개에 쓰여 있다. 다시 재취업을 위해 교육을 받고 십 년 넘게 회사에 근무했다. 아쿠타가와상을 받고도 작가는 회사에서 일했다. 회사 내에서 견뎌야 하는 수모와 압박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작가답게 소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두 남녀가 회사에서 겪어내는 생활의 모습과 감정들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담아냈다. 사토는 자신이 맡고 있는 건축 현장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항의 전화를 받는다. 항의 그 자체를 즐기는 듯한 남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이야기한다. 나카코는 프리스쿨의 신입생 모집 팸플릿 작업을 의뢰받아 일을 하면서 계속되는 수정 사항 요구에 지쳐간다. 수정 사항에 맞춰서 다시 보내면 장문의 요구 사항이 덧붙어서 메일이 온다. 감정들을 다스릴 때까지 라커룸에 들어가 음악을 듣는다. 여자 친구들을 대부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카코 자신의 일을 비하하는 분위기의 말을 하는 친구의 대화 때문에 집에 돌아와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한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에는 한 편의 소설이 더 실려 있다. 지하 공사 현장에서 한 달 넘게 일하면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 사카마키가 등장하는 「오노우에 씨의 부재」, 이 소설은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오노우에 씨의 갑작스러운 부재의 이유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료들이 모여 궁금해하고 추측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회사에서는 필요한 인간과 필요하지 않아 해고의 명단에 올려야 하는 인간의 두 부류로 나뉜다. 오노우에 씨는 고졸 학력이지만 회사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실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가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어 해고 명단에 오른 것인가 과연 회사는 대졸 그것도 유명한 대학 출신들을 승진 시켜 오노우에 씨를 내 보낼 것인가 사카마키와 동료들은 걱정을 한다. 그들의 걱정과 불안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회사의 반대말은 퇴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퇴사에 관련된 소설과 에세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소설은 결국 회사를 다니는 우리들은 꿈을 포기한 자들이 아닌 우연한 만남이 쌓여 기분 좋은 인연을 시작하고 후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하루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위로를 주고 있다. 어렸을 적 꿈들의 자리에 비록 샐러리맨이 없었어도 지금의 나는 상사가 주는 일을 떠맡기도 하고 항의 전화와 수정 사항이 담긴 장문의 메일을 보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을 짐작해내야 하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기억이 없어도, 입에 넣는 순간 몸속에 지나온 역사가 새겨지는 맛’을 찾아내어 그 혹은 그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설레는 일은 그것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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