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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말더듬이 선생님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다행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시게마츠 기요시의 『말더듬이 선생님』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표지에 자리 잡은 책 소개 문구도 '다행이다'이다. 이 책은 십 대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도 읽으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마음을 다독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쪽으로만 향해 있는 칠판을 일제히 바라보면서 공부하라는 말에 의문조차 품지 않았던 시간. 모두를 위해서 나를 숨겨야 했던 교실의 분위기들. 모두와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라 여겨져 은밀한 추방을 당해야 했던 순간들이 『말더듬이 선생님』에 담겨 있다.
『말더듬이 선생님』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중학교 교실이 배경으로 비상근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무라우치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아니다. 주인공은 무라우치 선생님이 곁에 있어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찾으려 하고 모두 똑같은 선택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 세상을 향한 고요한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는 작고 희미해서 모두에게 들리지 않는다. 무라우치 선생님만이 아이들의 고요한 외침에 응답한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 어떻게 선생님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 자신은 언제부터 말을 더듬었는지 기억에 없다.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말을 더듬기 때문에 자신은 중요한 말만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대놓고 선생님을 무시하는 표정을 짓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 자전거 사고를 당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벽보를 붙이는 아이, 교실에서만 말을 하지 못해 손수건을 꼭 쥐고 있는 아이, 반 아이를 괴롭혀 그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말을 심하게 더듬지만 ‘중요한 말’을 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야기를 한다.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면서도 말을 더듬지만 이름이 불린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무라우치 선생님을 잊지 않는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학교에 임시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수업을 하지만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이다. 말을 더듬기 때문에 판서 글씨를 똑바로 쓰고 잘 정리된 프린트 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중에는 입시 성적 때문에 무라우치 선생님의 수업이 피해가 된다는 학생이 있어 다음날 학교를 떠나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중요한 것, 곁에 있어주는 것, 외톨이가 아닌 것’이라는 말을 칠판에 쓰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아이가 내는 그리운 소리를 들으며 교실을 떠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라 쓸쓸한 것이라는 말로 거짓말을 하는 학생의 슬픔을 알아준다. 무라우치 선생님이 쓸쓸하다는 단어를 말할 때 말을 더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란한 개인기 같은 수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며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만난 아이들에게 근사한 말을 장황하게 하는 대신 더듬거리는 말로 시집을 읽어보라는 것과 책임을 가지고 잘못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들을 들려준다. 방황하는 학생의 곁에 앉아서 학생이 질문을 던지거나 이야기를 할 때까지 곁에 있어준다.
연하장을 보내온 학생에게는 교실 칠판이 어느 쪽에 있을까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학생이 새로운 답을 찾으면 즐거워한다. 모두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말을 잘하지 못해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고 해도 그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외톨이가 둘 있으면 그건 이미 외톨이가 아니라고도 이야기한다. 외톨이를 알아보고 말을 걸고 곁에 있어주는 것, 무라우치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 곁에서 문제를 알아봐 주고 함께 고민해 준다.
나 역시 말을 더듬는다. 발음이 희미해서 하려는 말과는 다른 말이 되어 사람들을 웃기거나 당황하게 한다. 중요한 말이 있어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은 안다. 어떤 마음을 담아 말을 했는지. 우리는 모두 웃을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무라우치 선생님도 중요한 말은 칠판에 써서 아이들에게 진심을 보여주었다. 시게마츠 기요시를 알아서 다행이다.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 번역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와 어른의 세계는 다르지 않다. 한 세계를 살아내면서 겪는 고민과 아픔들을 말이 아닌 글로써 치유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찾아낸 다행한 일들이 내일과 모레를 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