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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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어두운 내용의 책들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다룬 책들이란 다들 그렇게 무참한 내면을 다독이고 상처로 터진 마음을 달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너무나 흔해서 어느 날에는 일상처럼 뻔한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다. 죽음을 보면서 겪으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안도하기 바빴다. 누군가의 존재가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과 물건은 남는다. 시간과 추억은 남은 자들에게는 그와의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든 힘이 될 수 있지만 물건은 아니다. 물건들은 짐이기도 하고 죽은 자가 끝까지 살고자 했던 희망으로 생각되어 남아 있는 사람의 시간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남아 있는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와 결별할 수 있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영국 작가 패드라 패트릭의 첫 장편 『아서 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의 주인공 아서는 죽은 부인의 유품들을 정리하기까지 일 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아내 미리엄이 급성 폐렴으로 갑자기 죽자 아서의 일상은 견고함을 가장한 채 무너져 내렸다. 아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외출은 하지 않은 채 자식들과도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마을에 사는 다정한 부인 버나뎃이 파이를 들고 찾아와도 집 안에 숨어서 없는 척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미리엄과 40년을 살면서 아서는 열쇠 수리공으로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아내 역시 훌륭하게 가정을 보살폈다.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미리엄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r그들의 사춘기를 지켜보았다.
  아서는 미리엄의 사망 절차를 처리하느라 제대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아내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는 일 년 동안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딸 루시와 아들 댄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말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일상에 스며 있는 실패와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내의 옷들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참 팔찌에는 여덟 개의 참들이 달려 있었다.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반지가 달려 있었다. 아내는 살아 있는 동안 참 팔찌를 해본 적이 없었다. 화려한 금 팔찌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서는 대체 이 참 팔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에 빠진다.
  코끼리 참에서 전화번호를 발견해 전화를 거는 것으로 아서의 아내의 과거를 향한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미리엄이 인도에서 보모를 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면서 아서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 버나뎃의 제안으로 호랑이 참에 달린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고자 여행 가방을 꾸린다. 40년을 함께 살아가는 동안 아서는 미리엄의 과거에 대해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며 그녀와 함께 하는 삶에서 만족을 얻었다. 그녀가 떠나고 남겨진 팔찌에는 그녀의 과거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었다.
  아서는 규칙적인 일상이 자신을 옭아매고 슬픔에서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서 깨닫는다. 자신의 안락한 침실이 아닌 낯선 집에서 잠을 자고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처음 본 사람의 집에 따라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팔찌에 달린 참들의 의미와 미리엄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아서는 한 사람의 생애를 관통하는 기억과 과거를 마주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미리엄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시간은 자신과 함께 한 현재 속에서 충분히 안락함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딸 루시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오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이웃집 여자 버나뎃과 그녀의 아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자신의 현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미리엄의 과거를 여행하면서 그녀의 과거의 시간들을 받아들인다.
  미리엄은 팔찌를 남겨 두었고 아서는 그것을 찾아냈다. 그가 슬픔과 절망의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더라면 결코 찾지 못했을 물건으로 아서의 시간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야 할지 위트 있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무거운 주제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로 표현해 낸다. 남편이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버나뎃, 그녀는 마을에 혼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준다. 미리엄이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은 상처를 혼자 껴안고 슬퍼했던 사람들이었다. 미리엄은 그들에게 위로와 내일의 시간들을 들려준다. 아서는 죽은 미리엄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용기를 배운다.
  과거와 결별하기를 바랐지만 아서는 미리엄의 과거를 온전히 마주 보고 그녀가 살아가지 못한 오늘과 내일을 충실히 살아가기를 맹세한다. 우리는, 남아 있는 나는 그가 두고 간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대신 그가 보내온 미래의 시간을 선물로 받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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