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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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 속 주인공 루리 씨는 그녀의 애인 미스미에게 자신은 시험 삼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2017년 나오키 상을 받은 『달의 영휴』는 흔하디흔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루리 씨는 자신이 죽을 때 유서를 남기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소설은 루리 씨의 아름다운 유서 같은 소설이다. 영휴라는 말은 차고 기울다는 뜻이다. 생소한 단어이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이 단어가 소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나무처럼 씨를 뿌리고 자손을 남기고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루리 씨는 책에서 본 죽음의 이야기를 미스미에게 들려준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그 순간들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을 그리는 사토 쇼고는 전작 『 Y 』에서도 집요한 사랑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랑을 하는 것은 다른 세계에 살아 있는 내가 이루어낸 것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보여주었다. 추리 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가 추리 소설을 가장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 놓는 소설적 구조에 놀랐다.
  『달의 영휴』는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이어져 있다. 오사나이는 두 모녀를 만나기 위해 도쿄 스테이션 호텔로 향한다. 자신을 보고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오는 루리라는 이름의 소녀와 그녀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건네준다. 오사나이의 과거의 시간들이 펼쳐지면서 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들의 믿기 힘든 일들이 펼쳐진다.
  우리 모두는 죽어본 적이 없다. 죽어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죽은 후의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소설은 죽은 다음에 인간은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으로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첫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미스미의 연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다. 비 오는 출근길 그는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티셔츠를 내밀어 머리를 닦게 해준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의미 없는 일들이 모든 의미로 다가온다. 미스미는 한 번 더 그녀를 만날 것을 기대한다. 영화관에서 재회한 그들은 이름을 주고받는다. 그녀의 이름은 루리. ‘루리(瑠璃)도 하리(瑠璃)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의 루리의, 한자를 쓴다. 이 말은 이후에 그들이 재회하는데 단서가 된다.
  그들은 이름을 알고 다시 한 번 만나서 영화를 보고 밤의 길을 걷는다. 사랑은 시작되지만 그들 앞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놓여 있다. 루리 씨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이고 미스미는 대학 신입생이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진 않지만 미스미에게 그들이 가지는 만남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한다. 미스미가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시험 삼아 죽어 볼 것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좀 더 젊은 미인으로 태어나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후 루리 씨는 지하철에서 사고에 휘말려 죽게 된다. 이후 미스미는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도쿄 호텔로 두 모녀를 만난 오사나이 씨는 오래전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사고로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딸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린다. 아내는 딸이 아프고 나서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오사나이 씨에게 말하지만 그는 흘려듣는다. 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딸은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역에 가기도 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루리에게 해준다. 터널에서 죽음을 맞은 두 모녀는 다른 지역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사나이 씨 앞에 시간이 흘러 미스미가 찾아오고 젊은 날 자신의 연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사나이 씨의 딸과 이름이 같은 연인의 이야기를. 루리 씨는 죽었지만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여자아이로 태어나 환생했다는 믿기 힘들 이야기와 함께. 오사나이 씨의 딸 루리는 열병을 앓고 나서 인형에게 미스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이의 눈빛이 아닌 어른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는 아내의 이야기로 떠올린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행동들을 보였던 것들도 기억해 낸다. 오사나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도 루리. 전생의 기억들을 가지고 태어난 루리들은 병을 앓고 나서 젊은 날 만났던 미스미를 만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삼대에 걸쳐 태어난 루리들은 모두 젊은 날 루리 씨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루리는 죽었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루리가 오사나이 씨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흘러 갈수록 이 소설의 핵심은 죽어서도 이루고 싶은 사랑의 집착을 달의 환생에 빗대어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쌓여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낼수록 진부한 주제와 소재를 치밀한 구조와 구성으로 풀어낸 소설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더한다. 읽은 재미를 선사하면서 사랑의 이면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을, 『달의 영휴』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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