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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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한 권의 책이 나온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헌책방을 순례한다. 주인에게 다가가 은밀하게 묻는다. ···········있나요?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헌책 마니아들을 그토록 애타게 했던 책은 2005년에 재출간된다. 그리고 다시 2017년에 표지와 저자 후기를 달고 새롭게 나왔다. 소문의 그 책은 읽은 사람들 속에선 전설로 통했고 이상하고 이상한 대화와 서술들로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바로 그 책이다. 작가가 밝힌 대로 이 책은 소설임에도 야구 코너에 가 있기도 했다. 새롭게 나온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후기가 실려있다. 표지는 푸른색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책의 판형은 작아졌고 띠지에는 '소설 마니아들을 헌책방 순례에 나서게 한 화제의 책!'이라는 한동안 절판돼서 소설 마니아들을 절망케 했음을 출판사 스스로 밝히고 있다.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황당하고 우습다. 1985년 한신 타이거즈의 우승 이후 우리가 하는 것은 야구가 아니다는 자각으로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야구를 꿈꾸고 야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이 세계에서 야구를 추억한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야구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부분으로 남아 세계를 이루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매일 야구에 관한 기록을 찾아 공책에 옮기는 남자가 있고 큰아버지가 가르쳐준 야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다. 모든 책들에는 신기하게도 야구에 관한 기록이 있고 카프카는 야구를 사랑하는 작가로 남았다. 소년은 큰아버지의 특훈 아래 야구를 배운다. 야구시 900편 쓰기와 야구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포르노 100편을 본다. 어떤 타자는 수비에 들어가서 짝수 이닝에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타자는 야구를 한다. 고독한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때문에 심판도 선수를 깨우지 않는다.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환자들을 모아 놓고 야구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일본 야구의 시작을 들려주다가 잠을 자러 가고 잠에서 깨 다시 야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야구 기록을 찾아 공책에 베끼는 남자는 자신이 쓴 소설이 <박물지>와 점점 비슷해져 간다는 것에 절망한다. 야구가 시작되는 스타디움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야구에 관한 감상에 빠진다. 공이 너무 잘 보여서 공을 칠 수 없다는 수위타자가 등장하고 한자를 읽지 못하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는 남자가 있다.


봇물이 터지듯이 내게 야구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야구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야구 소년은 고민한다.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어떻게 야구를 시작할 것인가. 야구를 같이 하자고 소녀에게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소년을 소년원으로 보내버린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면 야구는 이 세계에 가득한데 사람들은 야구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소년의 야구는 시작되고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줄거리를 요약해서 들려주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것은 무엇인가. 의미가 없는 일이고 의미가 없는 일에서 이 세계에서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무의미란 의미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의미를 강조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시민으로서 일본 소설을 읽고 의미를 찾아 해석해야 한다. 소설에 들어 있는 무수한 암시, 즉 은유와 비유를 찾아 들려주어야 하는 이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소설 마니아로서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 야구란 무엇인가와 더불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의 효용을 밝혀 내야 한다. 이것은 야구에 관한 이야기 인가. 야구로 빗댄 일본 문학에 관한 담론인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 야구를 모두 문학으로 바꾸면 의미가 생긴다.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의미를 찾은 것이다. 야구를 문학으로 대체해서 읽으면 의미 찾기와 의미 부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봇물이 터지듯이 내게 문학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문학과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문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야구를 기록하고 야구를 추억한다. 문학이 사라진 세계에서 문학을 기록하고 문학을 추억한다. 쓸모없는 일이다. 문학은 이미 설자리를 뺏기고 문학이 없어도 사람들은 가상 화폐에 올인하고 주식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을 모으는 일에 삶의 생기를 부여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로 책들은 팔려 나가고 팔리지 않은 작가들의 책은 번역이 되는 일이 요원해진다. 어렵게 출판돼도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처럼 곧 사라진다. 
  문학이 사라진 세계에서 문학 소년과 문학소녀들은 문학을 기록하는 노인들을 찾아 나선다. 오래전 소설가로 활동한 소설가는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쓴 소설들을 낭독하고 잔디밭을 돌고 잠에 빠진다. 매일 소설을 쓰지만 그것은 새로울게 없는 내용이고 자신이 쓴 작품이 다른 작가의 소설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한 반복되는 소설 쓰기는 전광판에 표시할 수 없는 이닝으로 승패를 알 수 없게 된다. 혼자 창밖에 서서 소설 쓰기를 꿈꾸는 전직 소설가.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이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계속 쓸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소설이 사라진 시대에 소설은 이야기를 부풀리고 있다. 「사랑의 스타디움」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는 정체 모를 형체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꾸 커져가는 이야기는 야구 관리인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상상과 망상을 비롯한 허구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을 주문한다. 소설이 시작되고 장내 아나운서는 새롭게 출간될 소설의 목록을 읽어야 한다. 한자를 모르고 조사와 형용사만 읽을 수 있는 여자가 있고 소설이 너무 잘 보여서 소설을 쓸 수 없는 작가가 있다. 무의미한 곳에서 의미는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야구소년의 우울
데라야마 슈지
 
 
1. 스트라이크 죤을 기술할 의도
 
다이캅은 말했다. 스트라이크 죤은 타격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언제나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라고. 그날부터 나와 이 입방체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옆구리 밑에서 무릎사이, 홈베이스 위의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고 홈베이스의 오각형을 저변으로 하고 있다. 높이 약 90센티, 너비 30센티의 입방체인데 투명하여 육안으로 볼 수는 없다. 중력이 없기 때문에 휴대하는데 아무런 고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형태가 아닌 영역이고 나에게 공을 던지려고 하는 상대와의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하나의 세계상태였다.
 
나는 이 스트라이크 죤에 공이 통과하는 것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불리하게 하는 것이고, 때로는 나의 죽음마저도 뜻하는 것이 된다, 라고 심판은 말했다.
 
만원의 지하철 차내에서, 나는 때로는 나의 스트라이크 죤에 침입하는 이와 같은 다른 사람의 가방이나 종이 봉투, 다른 사람의 엉덩이 등을 의식하고는, 그것들을 죤 밖으로 밀어 버렸다. 그 성역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술주정꾼을 밀어낸 적도 있다.
 
나는 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스트라이크 죤을 형상화할 것을 생각하고, 일요목공입문서를 사오고 즉시 3센티 4방각목 5개, 두께 1센티 베니어판 5장으로 된 상자형태의 죤을 만들어 보았다.
 
공이 왜 이곳을 통과하려 하는가. 나는 왜 이 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 한 번도 논의된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20년 긴 세월동안 이 스트라이크 죤을 계속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독신인 것이다.
 
아마 노년이 되면 나는 나의 이 스트라이크 죤을 개집처럼 꾸며서 그 속에서 잠자겠지. 그리곤 귀를 쫑긋 세우고 언젠가는 꼭 찾아올 공의 울림을 계속 기다리겠지.
 
2. 세컨드 플라이는 언제 떨어질까
 
화물창고 계단을 반쯤 내려온 곳에 걸터앉아 떨어질 세컨드 플라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나이.
시합은 20년 전에 끝났고 배트도 핏쳐도 가정의 피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전도 있었고 파산도 있었다. 남자, 47세, 직업 보험회사 외무원, 아내 병사, 취비 빠찡꼬, 월수입 12만원, 위장병, 그러나 떨어져오는 플라이만은 꼭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야수의 임무이며 <교대>를 기다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저물녘 다 낡은 신사복 차림의 세컨드를 둘러싼다. 거리에 런너는 없다. 사물은 의식에 리―드되고 있다. 투아웃이지만 아직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 9명의 벙어리 이야기
 
두 명의 외로운 벙어리가 있었다. 한 사람은 핏쳐라는 이름, 또 한 사람은 캣쳐라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언어 대신에 공을 던져 서로의 情意를 확인하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흐뭇하고 원만히 지낼 때, 공은 똑바로 왔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크게 빗나갔다. 그런데 이 두 벙어리를 질투하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두 사람의 관계를 흩어놓고자 배트라는 여문 몽둥이로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인 공을 두들겨 다른 세계로 날려 보내 버렸다.
 
공을 잃은 두 벙어리는 망연자실 서 있기만 하였다. 몽둥이로 공을 날려버린 사나이는 악마처럼 팔을 올리고 두 사람의 둘레를 빙빙 돌았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숫자가 기록되고 그 숫자가 불어갈수록 두 사람의 불행지수는 높아갔다. 거기에 이 두 사람에게 공을 돌려 주려는 7명의 벙어리가 몰려 왔다. 그들은 몽둥이를 든 남자를 죽이기 위하여 <태양이 빛나는 땅>에서 왔는데 왼손이 특별하게 컸다.
 
<왼손> 세로 30.5센티 이하, 엄지 손가락 밑부분 안쪽에서 새끼 손가락 밑부분 바깥쪽까지 <손바닥 너비> 20.3센티 이하,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과의 간격은 손가락 끝에서 11.4센티 이하, 손가락 밑부분에서 8.9센티 이하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광장 여기저기에서 세계 도처의 벙어리들이 몰려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제 언어를 익혀버린 뒤라서 그들 곁으로 돌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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