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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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일들은 우연에 의지하기도 한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일을 망쳐 놓은 채 한편으로는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세계는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면서 적당하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망상을 펼친다. 필연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인과 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우연에 맡긴다. 조급한 마음을 슬그머니 숨겨 놓고 여유를 연기한다. 속이는 짓을 뻔뻔히 해 놓고 상대를 조롱하면서 이 세계에서 살아 남고 싶다고 큰 소리로 외친다.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세계는 즉각 반응한다. 너의 허위와 가식을 벗겨 주겠다고 나선다. 세계의 다른 면에 사는 또 다른 나는 이 세계를 책임지러 찾아온다. 얼굴 없는 사내가 찾아와 펭귄 인형이 달린 핸드폰 고리를 내밀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실상 이 세계의 나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나약함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세계의 나는 어두움과 불안의 모습으로 이 세계를 사는 나를 방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나'는 얼굴 없는 사내의 초상화를 언젠가는 그려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일은 꼭 해내야 한다. 무의 세계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얼굴 없는 사내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다. 3월의 찬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는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에 그의 세계는 한쪽으로 균형을 잃고 삐끗한다. '나'는 기울어진 세계를 안고 도망친다. 낡은 푸조를 타고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닌다. 
  자동차에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온천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면 하룻밤 묵어가는 식으로 결별의 통보를 받아들이려고 힘껏 노력한다. 더 이상 여행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때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의 제안으로 그의 아버지가 머물렀던 집에 살게 된다. 마사히코의 아버지는 일본화의 대가로 지금은 아흔이 넘어 요양원에 누워 생사를 다투고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살면서 '나'는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기묘한 이름을 달고 있는 그림은 도모히코의 역작으로 불릴 만큼 압도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천장 위 좁은 다락에 종이 포장으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형상화한 그림을 발견한 이후로 '나'의 세계의 균형은 점점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웃집에 사는 멘시키라는 남자의 초상화 그림을 제안받고 한밤중에 벌레 소리마저 끊이고 들려오는 방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다. 『기사단장 죽이기』1권의 부제는 현현하는 이데아로 관념으로 존재하는 기사단장이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다.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데아로 '나'는 아내가 통보한 이혼이라는 이데아에 찔려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기울어진 이 세계의 중심에서 그림 속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망가진 '나'의 세계를 다른 세계 속에 사는 공포와 불안으로 잠식당한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로 표현하면서 '나'는 어긋한 세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젊은 날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사건들을 잊지 못하고 그림으로 남긴다. 개인의 이데아가 역사 속으로 매몰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은둔한 채 그린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는 관념을 뛰어넘는다. 도모히코의 동생도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 안에서 죽어갔다. 군인으로서 행했던 일들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살했다. 동생의 죽음과 자신의 연인의 죽음에서 도모히코는 우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메타포로 이 세계에서 자신의 이데아를 지키려 한다. 
  은유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세계의 이데아를 끌고 들어온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세계의 어두움을 불러오고 그림으로 그린다. '나'는 직업적인 초상화 작가로 사람의 얼굴이 가진 특징을 정확히 잡아낸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행동을 그림으로 특색 있게 그릴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사람을 모델로 세워놓지 않고 한두 시간을 들여 대화한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를 기억해 그림으로 그린다. 
  사람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과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들이 집약되어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이 세계의 일들을 스스로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멘시키와 '나'가 여행지에서 본 흰색 스바루를 탄 남자, 멘시키의 딸일지도 모르는 마리에까지. '나'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들이 살아갈지도 모르는 다른 세계 속에서 차례로 만난다. 
  2권의 부제는 전이하는 메타포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사건의 발생에 은유가 없다고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 이 세계에서 사건이란 어차피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 다른 세계에서 봤을 때 논리적이다. 원인과 결과, 논리와 이성, 정확성과 부정확성, 확증과 편향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전이해온 메타포일 뿐이다. 이 세계의 시간을 재고 충실히 하루를 살아갈 뿐 더 이상 일어난 일에 진상을 파헤치지 않는다는 것이 『기사단장 죽이기』의 은유이다.
  이 세계에서 죽음은 한 사람의 생애가 끝났다고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이데아는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펭귄 인형이든 방울이든 회중전등이든 얼굴 없는 사내에게 맡겨서 강을 건너 이 세계를 죽이면 된다. 다른 세계 속으로 전이된 이데아는 살아가는 것으로 얼굴 없는 사내의 빚을 갚아나가면 된다. '나'는 그 사내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도모히코는 기사단장을 죽이는 그림을 남기는 것으로. 죽음은 일어날 일의 하나의 현상으로 의미도 애도도 슬픔도 다른 세계 속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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