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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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이 그리는 세계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된다. 이야기는 출구에서 빠져나오자 입구에서 갇히고 만다.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 『당신의 신』에서 보여주는 소설의 색채는 어둡고 흑백의 점이 무수히 박혀 있는 복사 불량의 흐릿함을 가지고 있다. 이혼이라는 주제로 끌고 가는 『당신의 신』에서 당신들은 이야기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한다.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여성 화자의 목소리는 대체적으로 낮고 가라앉아 있는 음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첫 번째에 실린 「이혼」에서 '그녀'는 이혼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부부부터 나이 든 부부까지 그곳에서 이혼 절차를 밟는 사람들의 연령은 다양하다. 남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라는 대명사를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소설은 그녀가 오래전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험 기간 때 책상에서 꾼 꿈을 떠올린다.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와 이혼하는 꿈. 직장 동료들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년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로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그보다 못한 학력을 가진 어머니를 구타하는 참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두 번이나 도망을 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체념으로 그녀 자신이 집을 나온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하는 그녀의 남편 철식은 남쪽에 있는 조선소에서 노동자의 사진을 찍느라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에서 빠져 있었다. 전세 만료의 집을 알아보고 물이 새서 고쳐야 하고 유방암에 걸린 그녀가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불면증을 견뎌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그녀는 같이 일했던 동료 영미를 불쑥 찾아간다. 일류대를 나온 영미는 회사에서 부적절한 소문이 돌아 해고당했고 혼자서 생활하기 위해 감자탕 집에 취업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학원을 하나 차렸는데 학부모의 끈질긴 질문에 이혼하고 혼자 사노라 말했더니 그날 이후로 원생의 수가 뚝 끊긴 일까지, 담담하게 이혼 후의 삶을 들려준다. 
  시를 쓰는 그녀에게 남편 철식은 이혼을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과는 다름 없다는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다,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결혼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대답한다. '나'가 아닌 '당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요구하는 결혼에서 김숨은 영혼의 구원은 각자의 몫이라고 선언한다.
  「읍산요금소」에서 삼 년째 정산원으로 일하는 그녀 역시 이혼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동창은 그녀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는 말에 연금보험을 권하고 중고차 매매업을 한다는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노래방에 가지 않고 몰래 도망쳐 나온 그녀에게 친구는 그 남자가 보험 계약을 해지했다고 원망했다. 그녀가 일하는 읍산요금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요양원과 그곳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차량들을 보며 혼자 늙고 기억마저 사라질 이후를 감당해야 하는 피로감을 느낀다. 
  우성실업으로 가기 위해 이십 분마다 요금소를 통과하는 한 남자의 질문들을 받으며 이곳이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뫼비우스의 곡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남자는 노래방에 가자고 강요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감추고 그녀를 폴란드 모텔로 데려간 소장일 수도 있다. 그녀가 폐쇄된 요금소의 이름을 묻자 관리 소장은 읍산요금소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삶은 무한으로 반복된다. 
  「새의 장례식」에서 화자는 '나'로 설정되었지만 주로 '그녀'의 이야기를 '그'가 전해주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녀와 이혼 후 그녀를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그녀가 재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재혼한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오는 건 뜻밖의 일이다. 그는 나에게 그녀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사고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내가 그녀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병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와 재혼 후 아파트에서 살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욕실로 통해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학대를 받는 것 같은 아이를 그녀 집으로 데려온 일. 그 아이가 했던 어떤 말이 그녀가 키우던 십자매를 죽게 한 것 같다는 의심까지. 
  말의 무서움과 폭력의 흔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녀의 상처의 기원은 '나'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직감한다. 그녀에게 가했던 나의 폭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혼」의 그녀가 겪었던 아버지의 폭력은 「새의 장례식」의 그녀로 이어진다. 「이혼」에서 그녀는 자신의 오빠들에게도 아버지의 폭력성이 대물림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 오빠들 중에 한 명으로 호출된 것 같은 「새의 장례식」의 '나'는 그녀를 울게 만든다.
  재혼한 그들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한 번 절차와 수속의 난관을 통과한 그들은 다시는 이전의 일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무한으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 내기 위해 혼인 신고 없이 살고 있다. 이야기는 반복되지 않고 그녀들은 체념도 실수도 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당신의 신이 되는 것이 아닌 당신의 신들을 찾기 위한 여행의 시작으로 살아가려는 김숨의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는 고요하고 분명하다. 끔찍한 이 생을 살고 싶어 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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