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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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괴물이 아니라고요. 제 동생에게도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구가 있어요. 개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테이블 앞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 그렇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우리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주는 것. 저희가 원하는 건 그뿐이에요.
  또 누군가 말한다. 
  그래. 그런 거지.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를 사놓고도 바로 읽지 못했다. 소설의 제목에서 주는 느낌 때문에 그 안의 이야기가 어떤 질감으로 펼쳐져 있을지 짐작이 돼서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딸에 대하여 라니.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그 외침이 떠나질 않았다. 소설의 시작은 딸과 엄마가 대학가 식당에서 우동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딸은 엄마에게 살고 있는 2층 집의 사람들을 내 보내고 전세를 얻어 그 돈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한다. 딸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전국을 도는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다. 제 처지의 절박함을 들어 거부할 수도 쉽게 들어줄 수도 없는 이야기를 한다. 
  엄마인 나 역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 요양병원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젊은 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살고 이제는 늙고 병든 몸으로 누워 있는 젠이라는 여자를 간호하는 일을 맡고 있다. 노인들을 입히고 씻기고 일으키는 육체적인 노동은 엄마의 몸에 그대로 고통으로 남는다. 남편은 오랜 병으로 죽고 딸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는 엄마. 그 엄마 앞에서 딸이 자신의 힘든 삶의 모습을 슬쩍 내보인다. 엄마는 딸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딸. 그 딸이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사람과 함께 돌아온다. 
  이 소설이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글의 앞에 인용해 놓은 문장.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주는 것. 사람들은 무신경하게도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비하하고 함부로 떠든다. 그것이 악의에 의해서든 무심에 의해서든 상처로 남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의 틀 대로 남의 삶을 맞추려 든다. 선의를 가장한 횡포. 기만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대학 사회에서 딸은 저항한다. 강의 평가도 좋고 능력도 뛰어난 강사를 대학은 성적 정체성을 운운하여 해고한다. 딸은 그 일로 자신의 에너지와 열기를 집어넣는다. 
  보증금을 까먹고 엄마 집으로 들어온 딸은 혼자가 아니었다. 딸과 7년째 살고 있다는 그 애와 함께 들어왔다. 서로를 그린, 레인이라고 부르는 자매처럼 다정해 보이는 그들은 엄마와 한 공간에서 맞닥뜨린다. 엄마는 딸이 지금은 젊고 청춘이라고 부르는 시기이므로 방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나이가 들고 세상 사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게 되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 애에게 말한다. 같이 지낼 수 없으니 그 애에게 나가달라는 말도 한다. 
  딸이 시간 강사로 살아가는 동안 딸의 생활비와 집세는 모두 자신이 담당했노라고 말한다. 그 애는 그리고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딸의 보증금은 대학에서 해고당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우느라 다 써버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 자신이 돌보는 여자 젠의 젊은 날과 다르지 않은 딸의 지금의 모습. 젠은 외국에서 공부했고 한국 입양 아동을 위해 일을 하고 외국인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을 얼굴도 모르는 그 애들에게 부쳐 주었다. 그러느라 자신의 젊은 날을 다 쓰고 지금은 요양 병원에 누워 재생 기저귀 때문에 욕창을 달고 살고 있다. 엄마는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의 허망함과 덧없음을 여실히 목도한다. 
  딸 역시 그러한 삶으로 제 청춘을 다 써 버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딸이 대학교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과 다툼에 휘말리는 일들을 지켜본다. 늙고 치매까지 온 젠을 찾아오는 방송국 사람들도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도 없자 병원에서는 그녀를 치매 전문 병원으로 보내려 한다. 그날 엄마는 병원 사람들에게 보내지 말아달라고 항의한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 앞에서 모두 평등한 삶. 그것밖에 평등하지 않아 슬픈 삶. 엄마는 젊은 딸과 딸을 사랑하는 그 애가 미래를 낙담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엄마는 방치되다시피한 젠을 집으로 데려온다. 요리사로 일을 하는 그 애와 딸이 만드는 집 안의 풍경에서 그들이 얼마나 다감하고 서로를 위하는지 깨달은 집 안에서 그녀들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나는 모르겠다. 너희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살아생전에 그런 날이 올지. 
  그 애의 발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하나씩 터뜨린다. 새어 나온 담뱃잎이 바닥에 누런 자국을 남긴다.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때로 기적은 끔찍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긴 오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잖니. 나한테 그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 말은 공허한 거짓말에 가깝다. 우리를 이해해달라는 말 역시 공허한 아우성에 불과하다. 그냥 우리가 여기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내치지 말아달라는 것. 『딸에 대하여』는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다감한 속삭임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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