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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미식을 탐하지 않는다. 다만 살기 위해 먹는다. 배가 고팠던 기억은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 변질 되었다. 나눠 먹는 것에 인색하고 허겁지겁 먹느라 소화는 나중으로 미룬다. 혼자 먹는 식사에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에 어색하다. 허기를 잠재우고 비로서 포만감이 들때 돼지처럼 먹었구나 자괴감이 밀려온다. 소량의 음식을 담에 접시에 장식하듯 담아 전시 하듯 먹는 식사에는 관심이 없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몸에 좋은 것을 가려 먹는 일은 요원하다. 음식의 철학은 없다. 맛집을 찾지도 않는다. 몇 시간을 기다리고 줄을 서야 하는 곳은 끔찍하다. 싸고 푸짐한 곳에서 여러번 찾아서 익숙한 곳에서 말 없이 외식을 할 뿐이다.
권정현의 『칼과혀』의 주인공 야마다 오토조는 만주국 관동군 사령관으로서 음식에 대한 철저한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밀정으로 잡혀온 왕첸을 죽이지 않는다. 그가 요리사라고 말을 하자 제안을 한다. 한 가지 재료와 조리기구를 가지고 불로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기름과 어떤 양념도 허용치 않는다. 첸은 그 제안에 응한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 일제가 만주에 괴뢰 국가를 세우고 황제 푸이를 집정으로 안치고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는 시기를 그렸다. 오토조는 전쟁에 관심이 없다. 야망과 권력욕도 없는 인물이다. 스스로를 매끼 맛깔나는 음식에 목말라하는 요리애호가이자 예술비평가 라고 이야기한다. 군인이 되는 것보다 선생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잡혀온 첸을 데리고 미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첸은 자신의 아버지가 물려준 도마를 보물처럼 떠받드는 요리사다. 아버지는 이족의 음식과 광둥 요리를 다양하게 다룰줄 아는 요리사였다. 아버지가 허망하게 목이 꺾여 죽자 첸은 요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도망가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적을 죽이려 한다. 오토조의 허무맹랑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극락사에서 구한 송이로 요리를 한다. 오토조는 첸을 살려주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게 한다.
이 소설은 생존을 향한 인간들의 지독한 욕망을 음식과 요리라는 소재로 그려내고 있다. 전쟁중에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재료를 구해 요리를 하고 탐식한다. 배고픔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먹는다는 것은 살겠다는 의지다. 조선 여인 길순이 첸의 어머니 베베와 음식을 만들고 몇 번이나 차를 우릴지 생각하는 것은 잃어버린 나라에 살면서도 살아가겠다는 희망이다.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이고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기위해 괴뢰 국가를 세운 제국의 인간들도 먹어야 한다. 땅을 빼앗기고 남쪽 섬에 가서 취직 시켜 준다는 말을 믿고 배에 올라탄 식민지인들도 먹어야 살 수 있다.
죽음이 도사리는 곳에서 미식이 탄생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칼로 자르고 썰고 불에 데우고 굽는다. 칼과 불을 통해 만든 요리는, 재료를 죽인 요리는 다른 향기와 맛으로 인간의 가장 예민한 감각인 혀에서 춤을 춘다. 혀가 느끼는 감각을 포기하지 못한 인간들은 이제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토조는 자신을 독으로 죽이려고 했던 첸을 다시 한 번 살려둔다. 독이 든 음식으로 죽을뻔 했던 오토조는 죽여야 하는 대상인 자신을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해야 하는 운명을 첸에게 부여한다. 죽음과 맞바꾼 음식을 오토조는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장으로 밀고 나간다. 음식 묘사는 입에 침이 고인다. 칼과 불의 위험에서 만들어진 요리를 먹는 인간들의 혀는 간사하다. 가장 부드럽고 내밀한 기관인 혀로는 살수도 죽을 수도 있다. 욕심을 발설하고 욕구를 해소하는 혀.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천황이 항복을 말하는데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참혹하다.
살고 싶다. 끝까지 살아서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가을 길에서 만난 하얀 나비는 누구의 영혼인가. 죽은 자가 보내온 안부의 인사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