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진영의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의 첫 문장은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9p)로 시작된다. 당연히 안다, 한국. 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밥 먹고 웃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외신이 먼저 떠들어대고 전쟁이 날까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해 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곳, 한국. 이분법적 사고가 현재 진행 중인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이방인도 현지인도 꿈을 꾸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 땅에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이 있다. 어린아이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해괴한 소문이 퍼지고 약탈과 파괴가 들끓는 모국을 버리고 대륙으로 떠나온 단과 류, 도리와 미소, 지나 가족, 건지가 있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휴전선이 있는데 여전히 남과 북은 대치되고 있는데 그들은 대륙으로 향해간다. 그들이 살아가는 한국은 통일이 된 상태일 수도 있고 가뿐하게 지뢰 따위는 제거하고 북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달아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다. 
  세계는 바이러스를 잡을 백신을 발명하고도 속도에 뒤처져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건물은 파괴되고 강간과 도둑질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대륙에서 도리와 미소는 해가 지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러시아 대륙으로 설정된 배경에서 그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위와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잔인한 행동이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동생 미소를 지키기 위해 도리는 도둑질을 하고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녀들이 지나 가족을 만나 트럭 한 칸을 얻어 타고 길을 떠나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는 것은 지나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이다. 차에 타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32p)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남을 공격하고 자신조차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파괴된 세계에서 전쟁을 겪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그들은 사랑을 시작한다. 일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미루고 감춰왔던 사랑을 꺼낸다. 나중으로 유보되고 양보한 사랑을 들추어낸다. 대출금과 적금 납부의 하루에서 방관했던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바이러스로 가득 찬 세계에서 보여준다. 살아가는 것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는가. 나를 잃지 않는 일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만이 그들이 꾸는 꿈이 된다. 
  최진영의 소설들은 서사가 탄탄하다. 단단한 이야기 속에 버무려진 문장들은 힘이 있고 살아 있다. 단번에 소설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정돈된 문장 속에서 안정된 이야기를 구사할 줄 안다. 과잉된 문장으로 서사 속을 헤매지 않는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남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질문하는 이 소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의문을 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