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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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 안아주었고, 그렇게 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라이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98p)


  맹장 수술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병원에 9주 동안 누워 있는 루시 바턴은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오랜 기억들과 대화를 나눈다. 옷 가게에서 만난 세라 페인과의 만남에서 루시는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쓸 것을 다짐한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을 향한 기억을 가진 이야기. 세라 페인은 말한다. "독자에게 무엇이 작중 화자의 목소리고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는 아닌지를 알리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텔레비전도 없고 차고에서 살아야 했던 루시의 어린 시절을 지탱했던 건 따뜻한 난방이 나오는 도서실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보낸 시간 덕분에 루시는 숙제를 충실히 하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성적은 나아졌고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들어갔다. 루시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는 어떤 의미에선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루시의 옷차림을 좋게 보지 않은 교수가 있었고 그에게선 사랑을 느꼈으나 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루시는 책을 쓰길 원했고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틈틈이 단편 소설 두 편을 발표했다. 늘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루시의 엄마가 찾아왔다. 그녀는 루시 곁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루시와 대화했고 오랜 기억들을 나눴다. 대부분 아는 여자들의 결혼 생활과 그 이후의 일들이었다. 루시는 왕래가 없었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엄마와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루시가 퇴원하고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임종을 지키러 갔지만 엄마는 루시에게 곧 떠나줄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떠나오고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올곧게 자랐고 루시는 작가로서 성공을 한다. 연락하지 않았던 오빠와 언니와 전화를 하고 언니가 요구하는 돈을 보내며 살아간다. 나를 이루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루시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죽음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친절하거나 그때는 몰랐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본다.
  엄마와 보낸 다섯 밤낮은 루시를, 루시의 글쓰기를, 루시의 삶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돌아보게 만든다. 간호사를 별명으로 부리는 엄마. 다정하지도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지 않은 엄마. 딸이 걱정되어 비행기를 타고 와 이야기를 나눠 주는 엄마. 루시는 완전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 낡은 추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에서 오로지 '나'를 들여다보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엄마와 보낸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연약함과 미성숙함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었다. 다인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봐 소곤거렸고 피곤해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 곁을 지키는 동안 삶은 불편하고도 지루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루시를 안아주는 치통 간호사처럼.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주사를 주는 간호사.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마음에 바나나 껍질을 까서 내미는 환자 보호자. 목욕을 해주고 머리를 깎아 주는 자원봉사자들. 보호자들을 위해 매주 한 번씩 점심을 마련해 주는 사람들. 너덜너덜해진 채 감사합니다를 말하곤 했지만 그때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기억해 쓴 것일까. 소설에서 영화에서 본 장면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삶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작업이다. 엄마가 죽고 나서 나의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유년은 짧았다. 나 대신 다른 이가 그 사랑과 함께 살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몰려올 때 책을 읽거나 맥락이 맞지 않는 글을 쓴다. 가끔 슬프다. 주말이면 걸려오곤 했던 엄마의 전화가 없고 명절이면 갈 곳이 없다. 조금 기쁘다. 루시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과 싸울 수 있고 슬픔을 이길 수 있어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어서 엄마 없는 추석이 쓸쓸하지 않을 수 있겠다. 
  잘 쓴 소설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2017년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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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1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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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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