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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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의 경우


  김치볶음밥을 내내 먹다가 얼마 전에 카레로 메뉴를 바꿨다. 김치볶음밥이나 카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주체가 바뀌었다. 김치볶음밥을 먹는 주말은 흐리거나 비가 왔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이했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허겁지겁 고기를 굽고 와서도 허기가 져 카레나 해 먹을까 충동적인 말 끝에 장을 보기 시작했다. 3분 카레가 아니다. 카레 가루가 있고 쇠고기 한 근을 사고 야채를 샀다. 왜 이렇게 배가 고플까. 항상 음식을 만들 때 물을 많이 넣곤 하는데 그날도 카레는 물이 많아 묽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만찬을 즐겼다. 이후로 3주째 카레를 먹고 있다. 야채를 다듬는 것이 귀찮은데 내가 하지 않으니까, 먹는 것에는 자신 있으니까, 맛있게 먹고 있다. 


내가 카레를 많이 먹는 것은 인정한다. 그 이유는 간편하고 맛이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자극적이지만 라면보다는 몸에 좋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먹는 것은 정통 인도식 커리 같은 게 아니고 동네 마트에서 묶음으로 싸게 파는 인스턴트 카레라는 것이다. 인도인에게 권한다면 코웃음을 치며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적절하다. 카레를 먹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것을 한다. 세상을 연구하기도 한다.


  김사과의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에 실린 「카레가 있는 책상」의 한 장면이다. '나'는 고시원에 산다. 그곳의 특성상 요리를 제대로 해 먹을 수 없다. '나'는 간편하고 몸에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카레를 즐겨 먹는다. 인스턴트 카레의 경우 마트에서 자주 할인을 하기도 한다. 싸게 사서 오래 먹을 수 있다. 유통기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조리가 된다. 칸칸이 나누어진 방에서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곳에서 카레를 즐겨 먹는다는 이유로 '나'는 집단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린치가 끝나면 방에서 나는 기침 소리들. 방 안에 갇힌 우울한 인간들이 내는 소리치고 비겁하고 크다. 
  비뚤어진 세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어떤 꿈들을 꿀 수 있는가. 꿈을 꿀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수 있는가.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도시에 갇힌 혐오주의자이다. 원하는 것이 될 수 없을 때 그들이 꾸는 꿈들은 짧은 잠 속에서 만나는 새와 거대한 건물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이다. 『더 나쁜 쪽으로』속 소설의 시작들은 꿈을 꾸다 잠에서 깨는 것으로 종종 출발한다. 하늘을 날고 도끼로 커다란 나무를 베는 것을 목격하는 것. 꿈에서 깬 현실은 왜 좋아하는지 모를 남자를 만나러 가거나 길을 잃어버린 채 걷거나 에어컨이 꺼진 고시원 비좁은 방 안에 누워 있다. 
  청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나'들은 자살을 꿈꾸며 뉴욕으로 날아가고 불분명한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화려한 삶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학자금 대출을 갚는 것과 취직이 되기를 바라는 것 사이에서 경로가 지워진 지도를 쥐고 걷고 있다. 이 세계에 상시적으로 퍼져 있는 타인을 향한 이유 없는 혐오와 분노로 이루어진 젊음은 위태롭다.


사과하는 사과


  어떤 소설들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은 흐름을 놓치고 인물들은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거나 죽음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놓쳐버린 의식을 붙잡는 문장을 만나면서 줄거리를 복기한다. 김사과의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를 읽다 보면 내 의식의 앞으로 달려드는 덤프트럭 같은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문장이 문장을 부른다. 의식의 과잉이 불러온 참사라고 생각할 정도의 서사가 무너진 자리에 문장이 남는다. 인물들이 걷는 거리에서 독자는 추격을 멈추고 낯설게 펼쳐지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발견한다. 일상의 말들이 소멸한 지면에서 고대의 언어가 행간을 차지한다.
  

"삶은 호텔 같았고 매일매일은 호텔의 욕실에 놓인 일회용 샴푸 같았다. 그것을 도대체 다 써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것이 놓여 있었다. 거기엔 오직 시작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망쳤다. 시작하고 또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시작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미쳐버리지도 못했다."


  끝이 없는 미래에 당도하기 위해 오늘이라는 꿈을 버렸다. 미처 갚지 못한 대출이 있어 통장 개설을 망설이는 현실의 여자들과 지내면서 가벼운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한다.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가상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뚫고 나와 현실을 부유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 그곳과 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소설의 문장들은 갑자기 끝이 난다. 그들은 웃고 마시고 죽음을 향한 꿈을 꾸고 헌 옷 수거함을 뒤진다.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위와 위선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김사과의 소설들은 씁쓸하고 거칠다. 한국어와 영어를 혼재한 문장들 속에서 해석의 친절함을 주지 않는다. 실제 김사과의 소설을 읽는 동안 거친 꿈들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어떤 꿈들을 꾸느라 다시 잠을 이어 잤고 그 꿈의 끝에서 마주한 오후는 미세먼지 가득이었다. 휴일은 터무니없이 적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가혹한 무관심과 노동이다. 「박승준 씨의 경우」 운 좋게 얻은 명품 양복을 입고 나선 거리에서 마주한 같지도 않은 칭찬과 감정 없는 환대일 뿐이다.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세계의 종말을 스스로 받아들인 채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 그 길은 끝이 없고 시작도 없다. 스스로를 거대한 감옥에 가둔 채 하루에 카레만을 주식으로 삼아 무연히 그늘을 맞는다.
  카레의 경우 죽은 사람을 슬그머니 끼워 놓고 연락 없는 산 사람을 불러 놓고 꽃 한 송이를 나누며 조용히 썩어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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