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착한 나진 ㅣ 오늘의 젊은 작가 60
이서수 지음 / 민음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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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만났지만 나진 님.


부정적이거나 망상으로 생각이 빠져들 것 같으면 말 그대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청소기라도 돌린다. 힘이 남아 있다면 바닥을 닦는다. 그러고 다시 눕지만 먼젓번의 부정과 망상은 어느 정도 사라져 있다. 그런 유튜브를 본다. 면접 브이로그, 백수 브이로그, 직장인 브이로그. 영상 속 그 혹은 그녀들은(대부분 그녀들이 많다.) 바쁜 아침 시간에도 필사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부지런히 걸어서 커피를 사 들고 출근을 한다. 면접에 떨어진 썰도 간간이 들려준다. 


어떻게든 없는 힘을 찾아서 힘을 내고 있다. 왜 우리는 힘을 내야 할까 소심하게 반항해 보지만 이대로 곤두박질치면 안 되기에 어떻게든. 힘을 내면서 겨우. 


이서수의 장편소설 『우리 착한 나진』을 읽는 도중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면서 한참 옆으로 돌아누워야 했다. 그래야 눈물 닦는 게 편하니까. 소설의 첫 문장. 


"여기서 뭐 하세요?" 

(이서수, 『우리 착한 나진』中에서)


는 과연 도발적이다. 우리의 주인공 나진이 출근길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질문이지만 한숨 쉬는 게 일과인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서 한참 동안. 소설의 첫 문장만 보다가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책을 배에 얹어 놓은 채.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갑작스러운 화두에. 뭐 하긴. 책 읽고 있지. 정병 걸리지 않으려고. 점점 소진되어 가는 사회성을 바라만 보고 있지. 그래도 독서가 나의 엉망진창 인생을 구해주진 않을까 기대하면서. 


『우리 착한 나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착한 나진이 주인공이다.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지. 그건 그냥 너를 이용해 먹기 좋다는 뜻인 거라지. 나도 착하다는 말을 최근에 다시 들었는데 예전이라면 안 하던 질문 제가 뭐가 착한데요라고 되물을 뻔했다. 순수하게 나의 성격적 특성을 칭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모난 마음이 든다. 착하다는 말에. 착하다면서 치켜세우고 이용하고 사기 치고. 


나진의 바쁜 출근길을 혼란스럽게 만든 이는 나진이 스물세 살에 국어 과외를 한 학생 다혜였다. 15년 전의 과거 사람이었던 인물이 현생에 갑툭튀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그날부터 나진은 다혜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우리 착한 나진은 다혜에게 나가달라는 말도 못 하고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하나뿐인 화장실을 같이 쓴다. 이쯤 되면 과거에 그들에게 어떤 모종의 일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지.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한 동거 생활이 계속될 줄 알았다. 나진이 부동산 사기를 당하기 전까지는. 대출 없이 간신히 모은 돈으로 전세 계약을 한 나진은 집주인의 계좌가 아닌 집주인의 남편 계좌로 전세금을 이체했다. 이중 계약이었다. 전 재산을 잃은 나진은 다혜가 이끄는 대로 집을 옮겼다. 다혜가 구한 집에서 다혜가 차린 밥으로 다혜의 생활비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회사에서도 잘리고. 착한 나진은 혼잣말을 시작했고 혼잣말 끝에는 욕을 했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진은.


미쳐도 단단히 미쳐서 자신을 그 지경으로 만든 세상에 복수를 할 수도 있었겠지. 살아온 기간 내내 착하다는 말을 들어온 나진이기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나쁘게도 굴지 않았다. 그런 나진에게 도대체 왜. 부동산 사기가 찾아온단 말인가. 하루에 열두 번 아니 골백번도 더 생각했다. 왜 나에게. 왜왜왜왜왜. 


『우리 착한 나진』은 정의를 묻지도 구현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복수도 없다. 새로 이사 간 집의 주인(예전에는 집주인과 같이 사는 게 끔찍했는데 이젠 그게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집 밖에 나가는 걸 무서워하는 강아지 찐빵과 봄과 여름을 보낸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에 네 시간씩 냉면집에서 홀서빙 하는 일을 구한다. 


나진의 겨울은 혹독했다. 봄과 여름을 살아내는 동안 나진은 우리 착한 나진에서 나진 씨가 된다. 상황을 모면하기 좋게 표현하는 우리와 착한을 봄과 여름 동안 떼어낸다. 비로소 나진으로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제 나진은 안다. 사기는 진심과 무관하다. 오히려 어떤 역할을 부여받고서 그 현장에 밀어 넣어지는 것이다. 나진이 경험한 사기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상우와 엮여서 놓인 상황도 그랬다. 나진은 화가 치밀었다. 

"좆도 모르면서."

(이서수, 『우리 착한 나진』中에서)


나진 님 아니 나진 씨 아 이것도 아니고. 


나진. 열심히 빼고 그냥 살아가요,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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