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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정지음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평점 :




하아. 제목 봐라. 하루치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책 사기로 날리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을 때 정지음의 신간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발견했다. 제목이 제목 한 책. 제목이 저러한데 어찌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또책(나 또 책 산다.) 해야지. 보통 글쓰기 책이라 함은 야너두(야 너두 할 수 있다.) 같은 대책 없는 응원의 제목 혹은 비법 전수(**완성법, **필살기) 부류의 제목을 달고 있는데.
정지음은 다르다. 먼저 묻는다. 글이 안 써지세요? 그러고 답을 듣지 않는다. 냅다 자신의 말을 한다. 저도요. 작가인 본인도 글이 안 써진다는데 분명 글쓰기 책인데 글이 안 써진다고 먼저 말해버리는 책이라니. 참 대책 없으면서도 즐겁고 재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 나만 글쓰기가 막막하고 책상 앞에만 앉으면 나를 위해 추천해 주는 쇼핑 목록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보는 순간 책의 제목만 읽었는데도 안도감이 들었다.
이상한 원칙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을 땐 차례대로 읽는다. 병렬 독서는 개뿔. 직렬 독서도 제대로 못 한다. 한 권을 천천히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다. 순서대로. 강박적으로.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는 달랐다. 먼저 목차를 훑어보고 그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챕터를 펼쳤다. 「첫 문장 노트 만들기」(121p)라는 소제목이 끌렸다.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글쓰기 비법이나 작법서를 흉내 내는 척하면서 정지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게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것이다를 자주 쓴다고 밝히고(맞아. 나도 그래. 것이다라고 끝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쿠팡 상자에 반품이라는 손 글씨만 썼다고 집 안을 온통 둘러보아도 필기감 좋은 볼펜과 쓸만한 노트가 없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글쓰기 책인데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없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줄줄줄 늘어놓는다.
친구들 이야기, 반려묘 이야기, 학창 시절 이야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글과 관련한 이야기가 사알짝씩 있다. 그리하여 디게디게디게 좋다. 각 잡고 문장, 조사, 문법에 대한 진지한 글쓰기 책이었으면 텅 빈 나의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 첫 문장을 필사해 보라는 조언. 출퇴근 시간에 휴대전화로 단어, 문장을 써 보라는 조언. 쓰다가 막히면 가만히 있지 말고 샤워를 한다거나 다른 글쓰기를 하라는 조언.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는 글의 형식을 바꿔 보라는 것도. 다 좋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정지음 작가와 다르게 나는 필기감 좋은 볼펜과 질 좋은 종이의 공책이 다량으로 있다.) 노트를 꺼냈다, 그리하여. 나는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지 막상 한다고 마음먹으면 한다. 읽으려는 책의 첫 문장을 적어 보기로 결심했다. 첫 문장을 옮기다가 필이 꽂히면 첫 문단을 첫 페이지를 옮겨 보기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슬프거나 화나거나 두렵거나 불안한 나의 감정을 방치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쓴다.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소중한 첫 독자인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감정을 종이로 불러 모은다. 너희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봐. 글이 되게 해봐. 슬픔과 분노와 불안이는 이때다 하고 달려 나온다. 빈 화면에 커서가 반짝이는 틈을 주지 않는다. 글을 써서 내일을 살 수 있다면 계속 써야지 뭐 어쩌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