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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눈동자 - 양장
이슬아 지음, 이훤 시.사진 / 먼곳프레스 / 2026년 1월
평점 :
아무래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없으면 계속 없고 있어도 계속 사자지는 돈. 벌어도 벌어도 모이지 않고 벌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 나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돈. 한 번 크게 돈에게 혼나고 나서는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할지 모르게 만든 돈. 악착같이 모아야 하나. 쓰고 싶은 만큼 써야 하나. 입장 정리가 쉽게 되지 않는다.
이슬아의 신간 에세이 『갈등하는 눈동자』가 나왔을 때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제의 순간에야 가격을 확인했다. 19,800원. 인터넷 서점에서 사면 1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체크카드인지라 결제가 될까. 잔고를 들여다봤다. 작고 귀엽고 소중한 금액이 거기 있었다. 괜찮다.
약 20,000원이 안되는 책 값. 누군가는 싸다고 누군가는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전자였다가 후자가 되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쪼잔해졌지. 겨우 책 한 권인데. 책을 쓰고 만든 사람의 노고를 생각해야지. 아슬아슬하게 결제를 마치고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 손에 들어온 두툼한 『갈등하는 눈동자』를 오래 가지고 다녔다. 책에도 기운이 있는지 제목처럼 나는 갈등하는 시간을 갖는다.
『갈등하는 눈동자』에서 소개한 애니메이션을 봤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이슬아의 그 글은 지금 나의 상황을 잘 정돈된 문장으로써 표현해 주었다. 두둥 언제나 심장을 바운스 바운스 만드는 넷플릭스의 상징적인 소리를 들으며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했다. 소감은 꼭 보시라이다. 2026년이 가기 전에 말이다.
소행성 충돌이 얼마 남지 않은 도시에 살아가는 캐럴은 나를 사찰해서 만든 인물이 아닐까 하는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종말의 시대에 회사는 돌아가고 있었다. (종말이어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상징이겠지.) 행정 사무 보조로 뽑힌 캐럴의 책상 위에는 서류가 잔뜩 쌓인다. 묵묵히 일을 해내는 캐럴. 직원 명부를 보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책꾸(책상 꾸미기)를 하면서 사무실의 풍경은 달라진다.
이슬아 자신이 보았던 애니메이션(《장송의 프리렌》도 꼭 보겠음다.) 과 읽었던 책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갈등하는 눈동자』는 채워진다. 그러면서 책이 조금 비싼 거 아닌가 하는 나의 쪼잔한 생각을 날려주었다. 시각장애인 교사 김성은을 인터뷰하면서 만든 QR과 근사한 사진과 설명은 19,800원으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멍청 비용이 있다.(다른 말로는 시발 비용. 홧김 비용도.) 내가 멍청해서 쓰는 비용. 그러다 화가 나서 쓰는 시발 비용과 홧김 비용. 그런 바보 같고 욕이 나면서 화가 나는 비용들을 아끼면 타인의 노고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에 망설이지 않을 수 있다. 정당 비용으로서 말이다. (어떠신지. 방금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갈등하는 눈동자』는 출판사 '먼곳프레스'의 첫 책이다. 부디 정당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로 인해 판매량이 많았으면 한다.
책과 글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가진 자로서는 대한민국에서 이슬아를 따라갈 자가 없다. 그런 진심과 열의와 성의의 자세를 『갈등하는 눈동자』를 통해 배운다. 기분 나쁘다는 글이 될 수 없지만 한 번 설명해 줬는데 이해 못 하고 응용도 할 줄 몰라서 어디 가서 일을 하겠냐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글이 된다.
그때 비로소 나는 갈등하는 눈동자에서 결심하는 눈동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