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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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는 남극 탐험 에세이 『나의 폴라 일지』의 마지막에서 남극에 가고 싶어 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밝힌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였다.' 그토록 남극에 가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좌절했고 한겨레 특별 취재기자 자격을 얻어 갈 수 있었던 세상의 끝에서 다른 이유는 없고 오직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한 순정한 마음 하나였던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 갈 수 있는 최선의 미지의 땅 남극에서 김금희는 한 달을 살아낸다. 가는 여정도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열몇 시간의 비행이라니 그리고 대기 다시 열몇 시간. 대체 그곳이 어떻길래. 고달프고 어려운 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가고 싶어 했던 것일까. 『나의 폴라 일지』를 받아 들고 그 안에 든 김금희 소설가가 직접 찍은 한 장의 사진엽서를 마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귀여운 옆모습을 가진 펭귄들을 찍은 사진엽서. 그 뒤에 쓰인 펭귄의 얼굴만큼이나 귀여운 소설가의 글씨. 나는 그 엽서를 책상의 좋은 자리에 자석으로 붙여 두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남극의 차가운 바람을 상상하고 싶어서. 떠나지 못하는 자는 떠날 수 있었던 자의 경험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그걸로도 됐다는 생각이다. 남극은. 


남극을 가는 자로서 소설가는 어떤 책을 챙길까. 『나의 폴라 일지』의 처음 부분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수화물의 무게 때문에 챙긴 책은 단 두 권. 아쉬울 수 있지만 남극의 세종과학 기지에는 도서관이 있단다. 그곳에 소설가는 자신의 쓴 책을 한 권 남기고 올 예정이다. 책을 읽을 수나 있을까. 극한의 추위와 블리자드가 있는 곳에서. 세종 기지 연구동 218호의 자신의 방에서 남극의 추위를 느끼 하늘을 보며 루쉰과 남극 일기를 읽는다. 


세상의 끝이어도 비록 사람이라고는 연구원들 밖에 없어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아니 펭귄들이 사는 세상에 사람들이 잠깐 머물고 있는 세상이다. 소설가는 한 달의 체류 기간 동안 다양한 펭귄과 남극 생물을 만난다. 호기심 많은 펭귄은 기지 안으로 들어와 소설가의 카메라에 포착된다. 물개, 해표, 스쿠아, 옆새우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래까지 엄혹한 추위와 함께 살아가는 비인간들. 


소설가의 부모님은 남극에 가는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에) 그는 하지 말아야 할 타인 비교를 해가며 남극에 온다. 체류 기간이 끝날 때쯤 딸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간다. 그곳에서 '한두 번쯤 울기야 했겠지만 아직 진짜로 울지는 않았을 사람들'을 만난다. 지구 마지막 희망, 자원의 보고 이런 수식어인 남극에서의 생활은 끝나고 다시 일상인으로서 돌아온다. 


남극에 가보고 싶어 했고 남극에 갔기 때문에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마음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슬픈 일들을 견딜 수 있다. 아버지의 병명이 나오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낙관을 가질 수 있다. 주권도 화폐도 국경도 없는 곳에서 살다가 왔기에. 남극에서 보낸 시간은 자신 앞에 놓인 비관과 부정함을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매일 고민해도 바뀌는 건 없다. 「너무 한낮의 연애」속 양희의 말 그저 나무 같은 거나 봐요 그리고 사랑하죠, 오늘도를 떠올려 본다. 어디로 가지도 않고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나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아질 수 있다지 하는 것이다. 때론 멍청이 같이 우직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고민은 우스워지는 것이다. 사랑하죠,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또 나무를 보면 괜찮아진다. 오늘도 나는 사랑하면서 나무를 본다. 


세계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잠깐 가슴에 품고서 나의 일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온다. 생존과 안전이라는 두 가지만을 내내 생각하며 지내다 보면 한국에서의 고민은 이겨낼 수 있다는 담담함을 장착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다들 병원 대기실 의자에 긴 시간 동안 앉아 있지 않기를 빈다. 그곳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제 울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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