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녹는 Entanglement 얽힘 1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 다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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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녹는』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볼 때 이제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그대로 직진하며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조명가게》 역시 강풀 작가의 원작이라는 것만 알았지 내용에 대한 사전정보는 없었다. 


휴일 낮에 본 《조명가게》는 무서웠다. 공포물이구나. 그러다 점점 F는 울고 말았다지. 이런 이야기였구나. 강풀은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발상과 주제를 생각해 내었을까. 현생에서는 불가. 다음 생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이서수의 단편이 실려 있다는 『봄이 오면 녹는』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지 말자마자 하면서도 주문했다. 또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 붉은 등 아래에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봄이 오면 녹는』에 실려 있는 각기 다른 작가의 세 편의 이야기의 주제는 '손절'이었다. 와.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손절이라니.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싫은 소리 듣거나 하는 걸 못 견디는 나에게 필요한 올해의 단어가 아닐까. 2025년의 너는 칼같이 손절 좀 하라는 책으로 전달하는 신의 계시.


몸이 아플 때 보던 영상은 도시에 있는 모든 걸 버리고 산이나 섬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그들은 젊을 때 사람과 세상과 돈에 상처를 받고서 몸이 아프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모든 걸 버리고 훌훌 떠나보자.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내 인생에 휴식과 즐거움을 줘보자. 모든 관계와 세상을 손절하고 사는 사람들은 얼굴부터가 달랐다. 별거 아닌 일에도 웃었다. 그런 삶에도 걱정이 있겠지만 표면적으론 걱정이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내려놓을 수만 있어 모든 걸 내려놓으면 마음과 얼굴이 좋아지는가 보다. 고통과 상처를 얻고 난 뒤의 깨달음이라 비싼 값을 치른 후에 앎이어서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소중해지는가 보다. 『봄이 오면 녹는』을 다 읽고 나면 제목 그대로 봄이 오면 우리의 그런 관계가 눈 녹듯 과연 녹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만큼 각각의 이야기들의 결말이 파격이다. 특히 성혜령의 「나방파리」는. 아이를 읽은 종희와 일영이 영매를 찾아다니면서 밝혀지는 그들의 과거사는 현재와 만나면서 아찔함을 준다. 사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선의를 가장한 악의가 무엇인지 사유하게 한다. 


이서수의 「언강 위의 우리」는 웃기는 손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손절과 이별의 차이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손절은 일시적인 헤어짐의 상태.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의 상태. 손절은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이별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 종선과 미진과 예슬이 어감도 이상한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으면서 나누는 우정은 봄이 오면 녹는 관계여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친한 게 맞아. 


앞의 두 소설이 인간관계를 손절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전하영의 소설 『시간여행자-처음 한 여행과 다르게 여행하는 것』은 시절을 손절한다. 현재의 내가 회상하는 과거의 어느 시절을 하나씩 열거하며 수치와 나태를 버린다. 과감하게까지는 아니고 천천히 오래 감정을 만지면서 손에서 놓아버린다. 과거를 손절할 수 있다면 미래 역시 손절 가능한 대상이 아닐까 희망을 준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정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다. 정보는 과연 정보 다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무 많은 정보는 정보가 아니었음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 자주 정보 없이 무언갈 보고 듣고 사랑해 봐야겠다. 그때 내게 달려오는 이야기의 감동의 무게가 상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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