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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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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되었다. 새해가 밝으면 서서히 올라오는 다짐 내지 의지.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또는 의지. 미라병. 어느덧 유튜브 알고리즘은 청소와 정리 정돈 영상으로 점령했고 나는 그런 영상들을 누워서 보면서 나도 해야 하는데 마음으로만 몇 날 며칠째 이러고 있다. 버리는 게 아닌 남길 걸 고르면 비우기가 쉬워진다는데 물욕의 화신인 나로서는 전부 남겨야 할 것투성이다.
비우기의 최고난도는 추억의 물건이다. 10년 넘게 일기를 쓰면서 매해 모인 일기장이 있다. 서랍장 가장 위쪽에 일렬로 놓여 있다. 한 번도 꺼내 본 적은 없다. 일기라는 게 그게 좀 다시 읽으면 부끄럽고 유치하고 나중엔 수치까지 몰려온다. 50L 쓰레기봉투를 사서 한 번에 모아서 버리는 상상만을 또 몇 날 며칠째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쉬워질까. 어느 날 내가 가방 하나면 들고 떠나야 한다면?
영상도 봤으니 책을 읽어볼까. 마침 이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책 추천 마법사에 무레 요코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두둥 등장했다. 한동안 책장 비우기를 한다고 전자책을 사서 읽었는데 손에 잡히는 물성이 좋아 다시 종이책을 사 모으는 중이다. 이것도 반성해야 할까. 책은 아무래도 (도서관이 멀기에. 이것도 핑계이겠지.) 사서 책장을 넘기며 읽는 손맛이 중요한 거 아닐까. 합리화하는 게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거다.
매일 그렇지만 유난히 마음이 지친 어느 날의 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읽었다. 붉은 등 하나만을 켜놓고 책을 읽는 밤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집에 돌아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등을 켜두세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얼마 전에 《조명가게》를 봤기 때문이다.) 비움을 주제로 엮인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은 일상의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이야기이기에 몰입감이 상당하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언니 토모코와 태생이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동생 마이가 옷을 정리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진솔한 못 버리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을 시작으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는 제목 그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진을 대비해 비상식량을 딸 모르게 잔뜩 쌓아두는 엄마, 결혼을 위해서는 서로의 애장품을 버려야 하는 예비 신혼부부, 병원 검사를 위해 잠시 집을 비운 남편의 방에서 이상하고 대단한 걸 발견하는 모녀, 집을 나간 며느리의 짐을 정리하는 시아버지까지 물건에 집착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짐을 했다. 책은 다 읽고 사자. 옷은 비슷한 걸 사지 말자. 전부 실패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는데 어찌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응원의 의미로 사야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이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는데 또 어찌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산 옷 전부 옷장에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캐릭터가 있냐 없느냐의 차이만이 있다. 나 또 왜 그랬어. 머리를 쥐어 박지만 원래의 나는 이런 걸 어떡해.
대신 마구잡이 소비는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에 통장의 잔고는 작고 귀엽고 소중하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내가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에 쇼핑을 하진 않는다. 책은 다 읽으면 헌책 팔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옷은 안 입고 입을 때 불편한 건 한두 개씩 정리하고 있다.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이 아닌 나의 집착과 욕심이다. 그것들만 새해에는 조금씩 비우기로 한다. 유난 떨면서 다짐과 의지를 내보이는 마음도 비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