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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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영영 만날 수 없다.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다. 만나서 밥을 먹거나 옷을 사러 갈 수도 없다. 없다의 연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재 속에서 존재를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가 다시없음에 마음이 스산해지고 달아오른 얼굴을 쓸어내린다. 하루가 가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일로 살아가야 한다. 하루 중 비어 있는 시간이 있다면 밥을 챙겨 먹고 혀끝이 아릴 정도의 달달한 음료를 마시는 일로써.


비상금으로 모아둔 돈을 헐어 쓰고 고마운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보답하면서 겨울을 지낸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고 오래도록 아껴둔 내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무한한 애정과 신뢰로 문장을 이야기를 따라간다. 김금희의 신간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 내 마음 내 열정 내 고독을 투영한다. 책을 받아들자 무지개가 나타났다. 


비가 오고 날이 개면 저편으로 보이는 무지개를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소원을 빌어 볼까. 소원을 빈다면 어떤 게 좋을까. 자주 망설이고 자주 머뭇거리면서 살아도 되겠지. 소설은 석모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영두의 과거와 창경궁 온실의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영두의 현재가 교차한다. 학교 문제로 서울의 낙원하숙에서 살아야 했던 영두의 추웠던 겨울의 기억은 오래 내 마음을 그곳에 머물게 했다. 


한 번 부서지고 훼손된 것들을 다시 고쳐 쓸 수 있을까. 물건과 건물은 수리를 해서 쓸 수도 있겠지. 그게 맞겠지. 그게 아닌 것들 이를테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부서지고 망가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두는 내내 시리고 추웠던 낙원하숙의 시절을 건너와 어른이 되었다. 타인의 악의에 맞서지 못한 채 자신의 정의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어른이 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을 수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낙원하숙의 주인이었던 문자 할머니의 과거가 새롭게 떠오르고 온실의 바닥에 있을지 모를 어두운 진실을 차분한 어조로 밝혀 나간다. 지금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 하면서 스산한 초겨울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살아가는 일은 매번 실패하는 일인 것만 같다. 매번과 매일의 실패 속에서 살아간다. 극적인 순간에 일의 성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펼치는 구성이고 우리의 하루는 여지없이 실패와 무력감으로 점철된다. 한동안 상실감에 젖어 뉴스를 보지 않았다가 어느 밤에 기습적으로 발령된 교과서에서나 알던 그 단어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걸 보고 유실된 마음을 찾아와야 했다. 


영두와 친구 은혜의 딸 산아의 대화에서 우리는 아이인 채로 어른의 역할만을 수행하며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현명한 생각을 하는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아이는 그런 다짐들로 어른의 시간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나의 현재는. 나의 마음의 현재는. 용기를 내어 살아가기. 옳지 않은 일에 목소리를 내기. 돈에 굴복하지 않기.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는 수리되지 못한 유년을 가진 아이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자주 훼손되고 부서진 나의 마음을 수리하고 복원하면서 하루를 살고 있다. 무너진 자리에는 다시 기둥을 세우고 부품을 사서 갈아 끼운다. 내가 좋아한다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잠이 와도 밥은 먹게 하고 허리가 아프니 소파를 사서 놓아보자 한다. 비어 있는 마음과 공간에 자리를 확보해서 따뜻하고 다정한 너의 마음을 놓아둔다. 눈일까 눈이다 하는 눈을 함께 보자고 빛을 모아주는 밤의 기억으로 망가진 마음을 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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